‘지도자는 경찰이 아니다.’
한국오라클 강병제 회장(61)의 인생철학이다. 그는 “경영목표에 맞춰 직원을 개조하려는 욕심(경찰 같은 지도자상)을 오래 전에 버렸다”며 “다만 상식적인 경영자로서 직원을 존중하는 자세를 견지해왔다”고 말했다.
강 회장은 또 “상식은 풍부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살아있는 지식”이라며 스스로를 ‘상식의 경영자’라고 표현했다.
상식의 경영은 외국계 정보기술(IT)기업 한국지사장으로서는 드물게 13년간이나 회사를 이끌어온 강 회장이 후배 기업인들에게 던지는 화두다. 최장수 외국계 IT기업 경영자로서 치열한 기업 생존경쟁의 한가운데를 헤쳐나온 그가 ‘지도자→경찰→상식’으로 이어지는 단어를 선택함으로써 메시지에 힘이 실린다.
강 회장은 이달 말로 한국오라클을 떠난다. 이후의 계획을 묻는 질문에는 “7월 말경에 미국 텍사스 한 구석에서 아내와 함께 망중한을 보내고 있을 것”이라며 비켜갔다.
주목할 점은 강 회장이 스스로 퇴진을 선택했다는 것. 외국계 IT기업의 한국지사장에 대한 인사권은 본사에 있기 때문에 거의 전횡에 가까운 교체(인사)가 이루어지곤 한다. 어느 기업의 경우에는 한 직원이 한국에서 본사로 보낸 e메일 한 통으로 한국지사장이 바뀐 일도 있다.
하지만 강 회장은 자신의 퇴진과 후임 지사장(윤문석)을 손수 결정했다. 이는 강 회장이 한국오라클을 출범시키고, 발전시킨 공로에서 비롯된 결과다. 그래서 강 회장은 한국지역 대리점장에 가까웠던 외국계 IT기업 한국지사장의 위상변화를 이끈 인물로 평가된다.
지난 89년 직원 5명으로 출범했던 한국오라클과 오늘의 한국오라클은 가히 상전벽해다. 연간 매출 2140억원(2000년 6월 1일∼2001년 5월 31일), 순익 242억원으로 국내 굴지의 IT기업으로 올라선 것이다. 특히 데이터베이스(DB) 분야에서는 산업계를 선도하고 있다.
강 회장은 “나는 한국기업들에게 ‘뇌’를 가져다 준 사람”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뇌’는 소프트웨어(SW)이자 데이터베이스관리시스템(DBMS)을 뜻한다. 기업전산화의 근간인 DB산업을 한국에 대중화시키고 저변을 확대시켰다는 자신감의 우회적 표현인 셈이다.
그가 89년 한국오라클을 출범시켰을 때, 한국기업들의 전산환경은 척박했다. 특히 ‘SW는 공짜’라는 인식이 만연하던 시절에 오라클을 한국으로 유인함으로써 더욱 고충이 컸다.
강 회장은 “본사로부터 특별한 지원이 없어 사재를 털고 은행문을 드나들어야 했다”고 한국오라클 설립 당시를 회고했다.
그러나 척박한 환경이 강 회장의 추진력을 꺾어놓진 못했다. 그는 100회가 넘는 무료 IT세미나를 개최하고 대학교에 DB를 기증하는 등 길고 지루한 밑거름 뿌리기를 감행했다. 때문에 한국오라클에 쏟아지는 DB 관련 SW분야의 독점적 기업이라는 비판 수위도 한풀 꺾이고 있다. 이에 대해 강 회장은 “공짜로 인식되던 SW와 시스템 유지보수의 가치를 인정받도록 노력했을 뿐”이라고 자평한다.
“삼성전자 VCR 엔지니어링 관리용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한 것과 만도에 전사적자원관리(ERP) 솔루션을 공급한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한국오라클을 경영하면서 보람을 느낀 순간을 묻는 질문에 머뭇거림 없이 되돌아온 답변이다. 삼성전자가 10여년 전에 VCR 한 대를 만들려면 2만5000여개의 부품이 필요했고, 신제품을 개발하려면 기존 부품 수의 5∼10%를 추가해야 하기 때문에 관리(수작업)가 어려웠으나 DB를 도입함으로써 자원관리능력이 높아져 생산성이 증대됐다는 것이다. 삼성전자 VCR 사례를 계기로 기업전산화의 필요성과 가치를 널리 알리는 한편 한국 IT시장에서의 성공가능성을 가늠할 수 있었다는 게 강 회장의 설명이다.
만도는 지난 98년 국제통화기금(IMF)이 불러온 경제한파로 인해 11억원 상당의 고통(ERP 대금)을 분담했다는 점에서 강 회장의 기억에 남아 있다. 당시 만도는 갑작스럽게 찾아온 재무불량으로 말미암아 ERP 도입이 어려웠지만 한국오라클의 지원사격에 힘입어 시스템 구축을 완료할 수 있었다. 이후 만도는 ERP 도입에 따른 기업회계 투명성 정도가 높이 평가돼 순조롭게 해외매각이 진행됐다는 것이다.
“윤문석 사장을 믿는다.”
강 회장은 한국오라클의 후임 지사장을 신뢰하고 있다. 그는 이미 윤 사장의 경영능력, 인간성 등을 검증했으며 자신의 기대치에 근접한 것으로 판단한 모습이었다. 실제 윤 사장은 포스코, 한화석유화학, 코오롱그룹 등 대형기업들을 오라클의 기업용 솔루션 준거(레퍼런스) 사이트로 확보하면서 한국오라클의 미래를 제시해 나가고 있다.
강 회장은 의외로 소박하다. 13년을 한국오라클에 근무하면서 별도의 사장, 회장실을 만들지 않은 채 직원들과 호흡을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의 한 구석에 책상을 가져다 놓았을 뿐이다.
그래서인지 회사 내에서 마주치는 직원들에게 던지는 농담에서 드러나는 친밀도가 예사롭지 않다. 임원과 평사원을 가리지 않고 회장이라기보다는 친구나 아버지가 쓸만한 말들을 툭, 툭, 던진다.
또 하나, 요즈음 강 회장은 왼쪽 손목을 수줍게 내밀곤 한다. 그의 손목으로 시선을 옮기면 번쩍이는 시계가 있다. 그리고는 “아들, 딸들이 환갑선물로 준 거라 간수하는데 신경이 쓰인다”며 쑥쓰러운 듯 자랑한다.
분명 강 회장의 2002년 5월은 전환점이다. 육십 갑자(甲子)를 한바퀴 돌린 데다 사재를 털어가며 애정을 쏟아온 한국오라클을 떠나기 때문이다. 과연 그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골프로 소일하는 노후”를 선택할 것인지 자못 궁금하다.
강 회장은 “한국오라클은 외국계 IT기업의 한국지사라기보다는 벤처기업이었다고 생각해달라”며 ‘안녕’이라는 말에 앞서 포옹으로 인사를 갈음했다.
<이은용기자 eylee@etnews.co.kr>
△42년 서울 출생 △67년 한양대 공과대학 졸업 △70년∼75년 I-T-E 임페리얼 코퍼레이션 엔지니어 감독 △76년∼84년 루스일렉티릭 엔지니어 매니저 △85년∼88년 컴퓨터비전 세일즈 매니저 △89년∼현재 한국오라클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