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에디슨’으로 불리는 하야카와씨에 의해 지난 1912년 창립된 샤프(대표 가치히코 마쓰다 http://www.sharp.co.jp)는 ‘액정표시장치=샤프’라는 등식을 성립시키며 IT시대를 이끄는 대표적 기업으로 우뚝 서 있다.
이 시장에서 샤프의 위력은 지난해 전세계 TV용 LCD시장에서 62%, LCD TV시장에서 79%의 점유율을 차지하면서 1위를 기록하고 있는 데서 잘 나타난다.
“동쪽에 소니가 있다면 서쪽에는 샤프가 있다”는 말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정도로 샤프의 상품개발력은 일본내에서도 으뜸으로 인정받고 있고 이것이 샤프의 저력이 되고 있다.
특히 샤프는 지난 91년 액정표시장치(LCD)가 대형 디스플레이용 제품으로 발전하지 못할 것이라는 업계의 예상을 깨고 이를 TV 생산에 접목시키는 데 성공했고 올초 30인치 LCD TV 완제품 생산을 시작하면서 전세계 LCD산업에서 또 다른 신화를 만들고 있다.
‘다른 사람들이 흉내내고 싶어하는 상품을 만들어라’ ‘가능성이 있는 한 도전한다’ ‘선수(先手)필승이라고 하는 시대의 선취정신’으로 요약되는 이른바 ‘하야카와이즘’의 결실이다.
실제 샤프는 라디오 전성시대에 그림이 나오는 라디오를 생각했고 CRT 브라운관이 주류였던 시절에는 LCD 개발에 착수, 오늘날 액정산업의 꽃을 피우는 데 성공했다.
LCD는 지난 69년 미국 RCA에서 세계 최초로 개발된 뒤 웨스팅하우스, 벨연구소, 텍사스인스트루먼츠 등 미국의 유력기업이 앞다퉈 제품개발에 뛰어든 품목이었다. 하지만 이들 기업은 개발을 시작한 지 불과 몇 년새 모두 철수해 버렸다. 그러나 샤프는 무주공산이 된 액정산업이 차세대 디스플레이 기기로 떠오를 것을 예견하고 70년대초 중앙연구소팀을 신설, 꾸준히 제품개발을 해왔다.
이 때부터 LCD와 인연을 맺은 샤프는 이후 초대형 액정표시장치 개발이라는 결승점을 향해 뛰는 고독한 마라토너로 변신, 고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출발이 그리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70년대 최초의 계산기 전쟁에서 카시오-미니에 패하는 수모를 겪었다. 카시오와의 제품개발 경쟁에서 첫 고배를 마신 샤프는 4년간 와신상담, 액정디스플레이를 사용한 최초의 상품인 액정계산기(모델명 EL805) 개발에 성공한다. 카시오에 추월당한 뼈아픈 경험이 이후 샤프가 액정부문에 대한 투자와 노력을 쏟아붓도록 한 보약이 됐다. 이후 대화면 LCD를 개발하려는 샤프의 연구작업은 85년부터 1년사이 엔달러 환율이 63%나 상승하는 초엔고 현상에 직면, 또 한차례 어려움을 겪게 된다.
당시 수출비중이 60%에 달했던 샤프의 쓰지 사장은 기업의 사활이 걸린 이같은 환율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긴급 엔고대책을 마련하는 한편 디스플레이사업부의 한 조그만 부문에 지나지 않았던 LCD사업부 체제로 격상시켜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집중 육성한다.
최근 샤프는 지난해 3분기까지 세계시장에서 87.5%를 차지했던 점유율의 일부를 맹추격중인 삼성전자 등 일부 후발업체들에 넘겨주면서 4분기 시장점유율이 62%로까지 떨어지는 등 또 한차례 위기를 맞고 있다. 하지만 샤프는 오는 2005년까지 일본내 TV 전체를 LCD화하려는 ‘LCD빅뱅작전’을 마련, 2005년 500만대로 예상되는 세계 LCD TV시장에서 40%에 달하는 200만대를 공급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제3차 위기에 대비한 세계 일류 자리를 유지하는 포석에 들어갔다.
<김원석기자 stone201@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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