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경쟁력이다>(18)산학협동 문제없나

 ‘당장 상용화 가능한 실용적 연구가 필요하다.(산업계)’

 ‘학술적으로 가치 있는 연구가 우선이다.(학계)’

 산학협동은 우리 경제구조의 틀을 지식기반경제체제로 바꾸는 가속기로 평가될 만큼 중요한 활동이다. 하지만 산업사회적 관료제에 의존한 기업조직과 전통적인 학술연구를 강조하는 대학간의 현격한 의식 차이를 보이고 있다.

 기업체가 필요로 하는 것은 현재 시점에서 상용화할 수 있는 연구다. 즉 돈이 되는 연구다. 이에 반해 학계는 즉시 실용화할 수 없는 이론상의 기술이라 하더라도 차세대를 대비한 연구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인다. 이는 효율적인 산학협동을 가로막는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한다.

 대학이 학술 지향적인 대학문화에 치우쳐 산학협력 및 실용화 연구에 대한 비우호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은 대학의 교수평가체계와 무관하지 않다.

 교수들의 경우 산학협동연구에 참여함으로써 발생하게 될 강의부담 가중이나 강의 부실화 문제, 연구성과에 대한 인센티브 부족 등으로 산학협동에 자유롭게 참여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또 기업이 성공과제를 수행한 교수 개인에 대한 물적 인센티브 부여를 소홀히 하는 점도 교수들의 산학협력 참여를 저해하는 역작용을 초래하고 있다.

 산학협력 추진으로 발생하는 인력·시설의 사용에 대한 적정한 비용보전이 이뤄지지 않는 점도 또 다른 걸림돌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국내 대학이 시행중인 제도가 간접연구비 공제다.

 그동안 우리나라 대학은 연구비를 지원받으면 인문사회계열은 5%, 이공계의 경우 10%를 간접연구비로 대학본부가 공제해 학교재정에 이용할 수 있도록 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용보전에 미흡하다는 지적이 제기되자 올해부터는 공제비율을 15% 수준으로 확대했다.

 하지만 이 역시도 미국의 버클리대 49%, 시카고대 65%, 하버드대 68%, 스탠퍼드대 74%에 비하면 여전히 미흡한 수준이다.

 간접연구비 공제비율이 확대되면 연구비 단가를 상승시켜 연구건수가 줄어들 수 있다는 문제점이 있으나 대학이 조직적으로 외부연구 수주를 위해 노력하게 되며 외부연구 수요가 적은 분야에 재분배해 학문의 균형적 발전도 기대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지적재산권에 대한 배분 문제 역시 산학협력의 활성화를 가로막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정부 주도의 연구개발사업 결과 발생한 지적재산권은 국가(국립대학) 소유이고, 민간수준의 산학협력 사업의 경우 연구개발 성과가 발주자인 산업체에 귀속되는 것이 관행이다.

 핵심 신기술은 체계적인 보육을 통해서만 산업화가 가능하지만 연구개발자의 지적재산권이 인정되지 않는 현실에서는 상당수의 핵심 신기술이 이전되지 못하고 사장될 수밖에 없다. 미국의 경우 연구자가 속해 있는 대학이 특허권을 취득, 보유하며 연구비를 지급한 정부나 기업은 무상의 통상실시권을 보유한다. 일본이 발명자가 특허권을 취득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같은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지난 2000년을 기준으로 전체 이공계 박사인력 가운데 76.8%(3만2367명)가 대학에 집중된 우리나라는 산업체들이 책정한 민간 연구개발비의 6.2%만을 사용하는 등 저조한 실적을 남겼다.

 국내 산업체, 특히 대기업이 대학 및 대학원과의 산학협동을 바라보는 시각도 문제다.

 대학 및 연구소와 벌이는 산학협동에 대한 신뢰가 부족한 대기업들은 산학협동을 미덥지 않게 생각하고 있다. 2000년 기준으로 8조7000억원에 달하는 민간 연구개발비(전체 연구비의 73%) 중 대학 및 연구소에 투자된 액수는 8.4%인 7300억원에 불과하다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산학협동과 관련해 그동안 우수사례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LG반도체는 1995년부터 1998년까지 4년간 연 1회 약 10억원씩의 예산을 투입, 국내외 대학생 및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반도체 설계공모전을 실시한 바 있다.

 공모전에는 매년 200여팀이 참가했으며 이들이 제출한 연구계획서는 LG반도체의 박사급 연구원들의 1차 심사를 거쳐 50∼60팀으로 걸러지고 통과된 설계서를 바탕으로 LG반도체는 반도체패키지를 제작해줬다.

 반도체패키지를 넘겨받은 참가팀들이 이를 기반으로 연구논문을 작성하면 국내 대학교수들이 2차 심사를 벌여 우수작을 선정, 특허출원 및 상용화를 돕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LG반도체의 과거 사례는 이론에 치우쳤던 반도체 설계를 상용화하는 데 기여했다는 점에서 우수사례로 손꼽힌다. 하지만 1999년 반도체 빅딜로 LG반도체가 현대전자(현 하이닉스)에 합병된 후 맥이 끊겼다는 점에서 아쉬운 대목으로 남는다.

 지속적으로 반복되고 있는 산학협동의 문제점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정부·대학·기업 등 핵심주체들의 개선노력이 우선돼야 한다.

 우선 정부는 간접연구비 공제제도를 현실성 있게 수정해야 할 뿐만 아니라 정부부처간의 연계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과학기술부·산업자원부·정보통신부·보건복지부·해양수산부·농림부 등으로 나뉘어 추진중인 산학연협력은 정부기관 내 공식적인 협의통로 부재로 정보교류 및 관련부처의 협조가 이뤄지지 않아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이를 막고 시너지 효과를 내기 위해선 연계체계 마련이 시급하다.

 이외에도 기업은 연구성과에 대한 합리적인 배분으로 대학 및 연구소의 참여의욕을 고취시킬 필요가 있고 산학협력의 대가로 명문대학에 새 교사(校舍)를 짓도록 돈을 기부하면 된다는 사고에서 탈피해야 하며 대학은 산학협혁 연구 전담교수제를 마련하거나 산학협동 참여자에 대한 고용휴직제 등의 개선책을 마련해야만 효율적인 산학협력이 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최정훈기자 jhchoi@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