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류하는 바이오벤처>(중)CEO 마인드 부재 `위기 자초`

 지난 4년간 바이오 시장을 개척해온 벤처기업들이 자금난과 연구방향 상실로 위기를 맞고 있다. 새로운 벤처 신화의 기대주로 주목받던 바이오기업들이 왜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됐을까.

 바이오기업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게 하는 내적 요인으로는 인기에 편승해 특정연구 분야로 몰리는 개발 형태와 시장을 고려하지 않은 연구방향 설정, CEO의 경영마인드 부재 등을 들 수 있다.

 여기에 수익성을 앞세운 벤처캐피털들의 빠른 투자 회수와 컨소시엄형 투자 방식, 매출 중심의 코스닥 등록 요건 등 외적 요인들도 바이오기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

 바이오벤처기업 관계자들은 많은 문제 가운데 CEO의 경영마인드 부재를 가장 심각한 문제로 꼽는다. 국내 바이오벤처의 90% 이상이 학교나 연구실, 병원 내 연구실에서 설립된 랩벤처다. 이에 따라 벤처 경영진은 교수와 의사들로 ‘망하면 돌아갈 곳’이 있는 겸직자들이다.

 이렇다 보니 CEO들은 1주일에 2∼3번 벤처에 근무하고 기업의 생존보다는 과학적 발견에 매달리기 일쑤다. 시장분석을 통해 시장에서 원하는 상품을 만들기보다는 세계적인 발견만 하면 시장이 제품을 만들고 수용할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다음으로 많은 바이오벤처가 개발하고 있는 DNA칩의 경우 이미 미국의 바이오벤처인 애피매트릭스와 캘리퍼가 90%에 가까운 특허를 보유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로 인해 우리 벤처들이 DNA칩을 생산해 본격적으로 시판하는 시점이 되면 거대 기업들은 특허권을 내세워 또 다른 퀄컴의 전례를 남기게 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또 바이오벤처들은 게놈이 주목받으면 모두 게놈 정보를 분석하는 회사로, 프로테옴이 뜨면 프로테옴을 연구하는 회사로 한 우물을 파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냄비근성’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이로 인해 경쟁력 있는 기술을 개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약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바이오기업의 내적 요소와 맞물려 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이 빈약한 것도 바이오벤처들에는 치명적이다. 장기 프로젝트 중심 바이오산업의 특성을 무시하는 벤처캐피털의 투자 행태와 매출 위주의 코스닥 등록 규정이 바이오업체들의 돈줄을 막고 있다.

 랩온어칩 전문회사의 한 사장은 “국내 벤처캐피털은 도박을 하면서 언제나 잭폿만 생각한다”며 “BT산업은 수익률이 높음과 동시에 위험성도 높은 산업인데 손실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 캐피털들은 위험을 분산하기 위해 컨소시엄을 구성, 수십개 회사에 1∼2억원씩 나눠 투자하는 관행을 만들어내기까지 했다. 투자 정보가 새어나갈까 입단속에 정신이 없던 캐피털들이 서로에게 보험을 드는 형태로 세력을 형성한 것이다. 이런 투자 행태로 유수의 캐피털들이 많게는 40개가 넘는 바이오벤처에 분산투자해 투자회사 경영에 대한 조언은커녕 주총에 참석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최근 들어 벤처캐피털들은 아예 투자는 중단하고 경영자금을 대출하는 ‘고리대금업자’로 전락하고 있다는 게 바이오업체들의 얘기다.

 매출액을 기준으로 코스닥에 등록하는 국내 정책도 바이오기업을 고사시키는 데 일조하고 있다. 매출이 없는 신약 개발이나 바이오인프라 회사라도 주목받는 나스닥과 달리 코스닥에서는 매출이 없으며 명함도 내밀 수 없다. 이로 인해 바이오벤처들에 공개적으로 자금을 끌어모을 수 있는 코스닥은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다.

 <김인순기자 insoo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