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꼽히는 ‘플립칩(flip-chip) 볼그리드어레이(BGA) 기판’에 대한 양산일정이 수요 불안에 휩싸인 업체들의 외면으로 연내 생산이 사실상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업계에는 이미 플립칩 BGA 기판 생산에 착수한 대만·일본 등에 차세대 인쇄회로기판(PCB)시장을 내주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감이 팽배해지고 있다.
7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심텍·LG전자·삼성전기·대덕전자 등 주요 PCB업체들은 이미 개발을 완료, 시제품까지 선보인 플립칩 BGA 기판 상용화 계획을 무기한 연기하거나 내년으로 미루는 등 양산체제 구축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심텍(대표 전세호)은 지난달 플립칩 BGA 기판을 일본CMK와 공동 개발, 시제품을 선보였으나 양산을 위한 설비투자 계획은 잠정 보류하기로 결정했다.
심텍의 한 관계자는 “당초 내년 상반기부터 양산체제에 들어갈 계획이었으나 수요가 불투명해 투자일정을 조정하는 등 숨을 고르고 있다”고 말했다.
LG전자(대표 구자홍)는 최근 경영진이 참여하는 전략회의(컨센선스 미팅)를 갖고 내실을 다지는 쪽으로 투자방향을 재설정했다. 이에 따라 인텔측의 제안으로 플립칩 BGA 기판 개발에 착수, 올해 말 본격 양산하기로 했던 설비투자 계획은 크게 늦춰지게 됐다.
인텔로부터 BGA 기판에 대한 PQS(Preferred Quality Supplier) 인증을 획득, 공급처를 확보한 삼성전기(대표 강호문)도 도금라인 등 생산라인에 대한 신규투자를 벌이고 연말께 시제품을 선보일 방침이었으나 본격적인 투자에는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대덕전자(대표 김상기)는 지난해 플립칩 BGA 기판 개발에 착수, 시제품 수준의 제품을 내놓았지만 당초 목표인 연내 사업 가시화는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이같은 업계의 소극적인 태도는 플립칩 BGA 기판의 최대 수요처인 통신장비의 시장 경기가 U자 곡선을 그림에 따라 플립칩 BGA 기판의 활성화 시기가 당초 기대했던 2003년 뒤로 미뤄질 공산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플립칩 기판을 양산하기 위해서는 수천억원대의 투자비용이 들고 세트업체에 제품을 납품하기 위해서는 최소 1년 정도의 품질인증기간이 필요하다는 점도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그러나 일본 이비덴과 대만 콤팩·난야 등 경쟁사들은 이미 플립칩 기판 양산체제를 갖추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국내 업계의 태도는 매우 소극적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투자 대 회수 비용으로 따지면 적당한 시점은 아닐지 몰라도 차세대 PCB시장을 주도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플립칩 BGA 기판 양산을 위한 투자계획을 구체화할 때”라면서 “이 시점을 놓치면 국내 업체들의 차세대 PCB시장 선점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감을 나타냈다.
플립칩 BGA 기판이란 고성능 마이크로프로세서나 워크스테이션, 고성능 서버 등의 플립칩을 패키징하는 데 사용되는 차세대 기판으로 빌드업 공법과 초미세회로 형성기술, 극미세홀 가공기술 등이 접목돼야 생산이 가능한 최첨단 고부가가치 제품이다.
<안수민기자 smah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