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전자상거래 과세안` 확정 파장

 유럽연합(EU)의 전자상거래 과세가 사실상 확정되면서 이를 둘러싼 유럽과 각국, 특히 미국과의 대립은 그 각이 한층 날카로워질 전망이다. 지난 2월 총괄적 합의에 이어 EU 각국 재무장관에 의해 사실상 확정된 이 법에 따라 내년 7월부터 역내 15개국으로 판매되는 게임·소프트웨어에 대해 역외 기업의 부가가치세(VAT) 납부는 불가피해졌다. 이 법에는 단순한 온라인 과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역내 IT산업을 보호해야 한다’는 EU의 절박한 외침이 담겨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자상거래 무관세를 주장해온 미국의 반발에 부딪혀 제정과정에서부터 논란의 소지가 다분했고 부문별로 게임분야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는 일본 등과의 마찰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특히 최근 전개되고 있는 미·유럽간 철강문제와 맞물려 미국과 유럽간 오프라인·온라인을 막론한 무역분쟁으로 비화될 가능성마저 내포하고 있다.

 ◇법 내용=EU는 소프트웨어·게임 등 무형의 디지털 콘텐츠 제품에 VAT를 부과키로 했다. 이에 따르면 역외 기업이 인터넷을 이용해 EU 소비자에게 게임·소프트웨어를 팔 경우 세금이 부과되는 반면 EU 기업이 역외 소비자에게 판매할 경우에는 면제된다. 역내 기업은 본국의 세만 부담하면 되지만 비EU기업들은 고객이 거주하는 국가에서 정한 세율에 따라 세금을 내야 하는 것이다. 현재 세율은 룩셈부르크 15%, 스웨덴 25% 등으로 국가간 차이가 존재한다.

 ◇제정 배경=EU의 이번 조치는 눈덩이처럼 불고 있는 대미 전자상거래 무역역조를 좁히기 위한 ‘고육지책’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 지난 2000년 미국은 유럽시장에 7억달러에 달하는 상품과 서비스를 인터넷을 통해 판매했다. 반면 유럽업체의 대미 수출액은 7000만달러에 그쳤다. 무역역조는 갈수록 악화될 전망이어서 EU의 이번 결정은 인터넷을 통해 몰려들고 있는 미국 제품으로부터 유럽내 업체들을 보호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미국의 반발=EU의 법은 소프트웨어·음악 등의 부문에서 전자상거래가 활성화돼 있는 미국으로부터 큰 반발을 살 전망이다. 미국은 오래 전부터 소프트웨어 거래 과세를 반대해왔으며 EU의 과세가 역내 기업과 외부 기업을 차별하는 수단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해왔다. 따라서 이 문제에 대한 세계적 합의가 나올 때까지 과세조치를 유보해달라고 요구해왔고 EU가 실제로 과세할 경우 WTO에 제소할 수도 있다는 으름장까지 놓아왔다. 미국은 그동안 적극적인 설득작업 끝에 비EU기업이 EU 전체 회원국 대신 1개국에만 등록돼 있어도 과세조치의 적용을 받지 않기로 하는 내용을 법안 초안에 삽입했다. 그러나 이 안을 따르더라도 EU기업이 미국의 경쟁업체들보다 세금을 적게 부담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미국정부내에서 제기되고 있다.

 ◇국내 영향=EU의 이번 결정은 부가세에 대한 OECD의 ‘소비지 과세원칙’을 그대로 수용한 결과다. 우리나라 조세원칙도 실은 마찬가지다. 국내에 수입되는 해외물품(재화)에 대해 일정한 부가세를 부과해왔고 국내 업체의 수출품도 역시 수입국의 과세 대상이었던 것이다. 이번 EU의 합의에 따라 지난 수십년간 기본틀을 유지해왔던 국내 조세 관련법의 개정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최근 재정경제부가 디지털경제시대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기존 부가가치세법 개정방침을 밝힌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전문가들은 세계 전자상거래 시장의 절대적 생산국 위치에 있는 미국외에는 비과세 움직임이 없는 만큼 우리나라도 EU의 정책방향과 같이해야 한다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다만 국내 업계의 대EU 수출영향은 좀 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영화·음악·게임 등 다양한 콘텐츠 산업 가운데 EU권에 전자전송방식으로 수출되고 있는 품목과 규모는 어느 정도인지 우선 파악한 뒤 적절한 대응전략을 도출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한국조세연구원 홍범교 박사는 “이번 EU의 결정은 그동안 부가세 부과대상으로 모호했던 디지털콘텐츠를 재화로 최종 분류했다는 뜻”이며 “무엇보다 콘텐츠 업계의 현황과 EU권 수출동향부터 면밀히 분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그동안 국가간에 논란을 빚어왔던 부가세에 대해 EU권의 최종 입장이 나오면서 OECD가 주도하는 전자상거래 소득세 부과 논의에도 관심이 쏠린다. OECD는 지난해 이중과세금지·고정사업장과세 등 핵심적인 원칙에 합의한 바 있으며 산하 기술위원회(TAG)를 통해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마련중이다. 한편 전자상거래 관세문제는 WTO 차원에서 당분간 비과세한다는 원칙에 대다수 국가들이 동참하고 있다.  

 <허의원기자 ewheo@etnews.co.kr

 서한기자 hse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