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스 윈드 앤드 파이어(Earth, Wind&Fire)’ 하면 70∼80년대 가장 잘 나가는 흑인 펑키그룹이다. 당연히 작곡자 입장에서 그들에게 곡을 준다는 것은 영광이었다. 79년 어느 날 신예 작곡가인 데이비드 포스터가 그룹의 간판인 모리스 화이트에게 자신이 만든 곡 ‘After the love has gone’을 들려줬다.
모리스 화이트는 “노래가 너무 맘에 든다. 취입하고 싶다”며 만족을 표시했다. 데이비드 포스터는 흥분해서 “언제요” 했더니 모리스 화이트의 답은 “오늘밤 당장”이었다. 이 곡은 곧 전미 차트 2위에 오르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고 지금도 어스 윈드 앤드 파이어를 대표하는 노래로 남아 있다.
그런데 이 곡은 늘 펑키사운드를 구사하던 그룹으로서는 특이하다고 할 만한 팝발라드였다. 이 일화는 종류가 다른 음악을 하던 사람마저 사로잡을 만큼 데이비드 포스터의 선율이 뛰어나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는 이후로 작곡자·편곡자를 넘어 스튜디오를 총괄하는 프로듀서로 무수한 히트곡을 양산하는 ‘히트제조기’로 성공가도를 질주했다.
시카고의 ‘You`re the inspiration’, 셀린 디온의 ‘Power of love’, 토니 브랙스턴의 ‘Un-break my heart’ 등 손대는 곡마다 빅히트를 쳐 차트를 공략하려는 가수들은 무조건 데이비드 포스터를 기웃거려야 했다. 그러면서 베이비 페이스와 함께 90년대 프로듀서 분야를 양분했다. 그간 3번의 ‘올해의 프로듀서상’을 포함해 그래미상을 수상한 것도 무려 14차례나 된다.
또한 지금까지 ‘성엘모의 불’ ‘보디가드’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등 무수한 영화에 사운드 트랙을 제공해 영화음악에서도 일가를 이뤘다. 이런 공적을 인정받아 그는 94년 굴지의 레코드사 애틀랜틱의 부사장으로 발탁됐고, 이후에는 타임워너와 공동출자 형식으로 ‘143레코드’를 설립, 제작에도 솜씨를 보였다. 아일랜드 출신의 그룹 코어스와 최근 차트에 등장한 유망신인 조시 그로반을 발굴한 것도 그다.
그의 음악은 한번 들어도 귀에 꽂힐 만큼 친근하고 부드러운 선율을 특징으로 한다. 이것으로 이미 승부는 난다. 하지만 그는 그 곡을 웅대하게 편곡하고 치장해 확실하게 성공을 위한 다듬기를 한다. 대중을 상대로 하는 팝에서 ‘웅장미’는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그가 ‘미다스 터치’라 불리는 비결이 바로 이것이다.
물론 그가 주조해낸 음악들이 너무 흡사하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게다가 지나치게 상업적이라는 지적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이 팝인 걸 어찌하랴. 막 그의 음악을 집대성한 앨범 ‘The best of me’가 나왔다. 그의 활동 궤적은 물론 90년대 팝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음반이다. 첫곡부터 마지막까지 쭉 듣게 되는 앨범이 흔한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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