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남동에 사는 김모씨는 최근 TV를 구입하려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가전매장에 TV종류는 많은데 자신이 예상한 60만원대 정도의 29인치 신제품은 찾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가장 일반적인 29인치 TV의 경우 기존에 사용하던 구형 일반 브라운관TV가 40만원선이고 구입을 원했던 29인치 완전평면TV는 90만원대부터 100만원을 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매장직원은 30만∼40만원을 더 보태 HD급 완전평면TV를 권했으나 부담스러웠다.
이처럼 시중에 유통되는 가전제품의 가격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면서 소비자들은 저가 아니면 고가제품 구입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현재 유통되는 유명 메이커 29인치 TV의 경우 혼수가전으로 인기가 높은 HD급 평면TV가 대부분 100만원 이상. 반면 일반 브라운관TV는 40만원선으로 60만∼70만원대의 TV는 사실상 찾기 어려워졌다.
과거 60만원대 가격으로 일반 브라운관과 평면TV의 중간 형태인 슈퍼플랫 브라운관TV가 판매됐으나 생산라인이 현저히 줄고 현재 판매 모델수도 3∼4개에 불과하다.
각종 첨단 디지털TV가 등장하면서 고가 제품군 모델은 다양해지고 저가 상품 역시 17만∼18만원대의 20인치 TV가 업소용·독신자용 등으로 꾸준히 인기를 얻어 지속적으로 신제품이 출시되고 있다. 하지만 이처럼 중간 가격대 상품은 갈수록 설자리를 잃고 있는 것이다.
제조 및 유통업체들은 시장 수요에 따라 발생하는 자연스런 현상이라고 말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업체들이 수익 및 매출면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상품을 소비자에게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완전평면TV의 경우 70만∼80만원대 보급형 모델이나 중소기업의 중간 가격대의 제품이 출시돼도 낮은 마진을 이유로 매장에서 외면받고 있는 실정이다. 제조업체도 보다 많은 이윤을 남기기 위해 전략적으로 고가의 대형 제품에 주력해 매장에 출시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소비자들은 제품 선택권을 박탈당하고 매장에서 권하는 고가의 상품을 사거나 아예 과거에 쓰던 저가 상품을 구입할 수밖에 없다.
냉장고와 세탁기의 경우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상황은 비슷하다.
냉장고의 경우 550L 이상 양문여닫이형 냉장고가 일반화되자 400∼550L의 50만∼70만원대 일반 냉장고 제품은 매장에 전시조차 되지 않는다. 반면 400L 이하 소형 냉장고는 업소용 등으로 꾸준히 판매되고 있다.
세탁기는 현재 10L급 40만∼60만원대 제품이 주종을 이루고 있는 가운데 최근 100만원 이상의 드럼세탁기 시장이 갈수록 커지면서 중간 가격대 상품은 설자리를 잃고 있다.
<임동식기자 dsl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