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개봉하는 영화 ‘취화선’ 홈페이지(http://www.chihwaseon.com) 게시판에는 무려 2000여건에 달하는 글이 올라와 있다. 극장 개봉 이전에 이렇게 폭발적인 관객반응이 올라온 것은 드문 경우. 더욱 특이한 점은 이 가운데 80% 가량은 홈페이지에 관한 내용이라는 것. ‘멋진 홈피네요’에서부터 ‘장승업이 홈페이지를 만들었나봐’ ‘영화 수준을 보여주는 홈피’ ‘영화개봉이 끝나도 홈은 끝까지 남아주길…’ 등 대부분 홈페이지의 높은 수준을 극찬하는 내용들이다.
‘취화선’ 영화만큼이나 홈페이지가 주요 관심사로 등장한 것은 장승업의 붓놀림을 형상화해 화면을 구성한 독특함과 예술성 때문. 그러나 영화 홍보 홈페이지가 단순히 영화홍보를 위한 보조수단이 아니라 독자적인 커뮤니티, 제3의 영상 미디어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추세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영화 홍보 홈페이지의 인기와 위상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처음에는 영화홍보를 위해 한시적으로 등장한 영화홍보 웹사이트가 최근에는 영화가 끝나도 관련 동호인들이 모이는 커뮤니티로 발전하는가 하면 영화는 흥행에 실패하더라도 홈페이지는 지속적인 인기를 누리는 사례가 늘고 있다.
분야별 인기 웹사이트 순위를 매기는 랭키닷컴(http://www.rankey.com)의 영화홍보 홈페이지 순위에서도 재미있는 현상이 발견된다. 1위와 2위는 ‘취화선’과 ‘집으로...’가 각각 차지했지만 3위는 ‘공각기동대, 4위는 ‘재밌는 영화’였다. ‘공각기동대’는 극장 흥행에는 참패했지만 웹사이트 인기순위는 3월 15일 오픈 이후 수십에서 수백단계씩 계속 오르고 있다.
‘재밌는 영화’도 관객동원이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데 반해 웹사이트 순위는 100단계 이상 뛰어올랐으며 지금 극장 간판을 내린 ‘몽중인’ ‘정글쥬스’ ‘배틀로얄’ 등의 영화 역시 홍보 웹사이트 인기는 식을줄 모르고 있다. ‘봄날은 간다’는 홈페이지를 유지하기 위해 아예 게시판을 클럽 성격으로 바꿔 아이디를 통해 로그인할 정도다.
영화 홍보 홈페이지는 출연진에 대한 소개, 시놉시스, 포토 갤러리, 예고편 동영상 등 기본 내용은 대부분 엇비슷하지만 얼마나 영화의 분위기를 잘 살리느냐에 따라 영화 흥행에까지도 영향을 준다.
혹자는 영화는 망해도 온라인 영화홍보 페이지는 뜬다고 말할 정도로 영화 홈페이지의 영향력은 커지고 있다. 또 한국영화의 힘이 홍보 홈페이지에서 나온다는 다소 과장된 얘기도 있다. ‘취화선’의 경우 “홈페이지를 보니 영화도 훌륭할 것 같다”며 영화를 꼭 보겠다는 사람이 상당수에 이르고 있는 것도 이를 반영한다. 물론 영화의 작품성이나 재미가 일차적인 흥행 기준이겠지만 홈페이지로부터 얻은 이미지 역시 관객을 극장으로 이끄느냐, 아니냐를 결정하는 요소가 되고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게시판에 올려진 관객의 영화평. 아무래도 영화에 대한 관객평은 영화개봉이 끝날때까지 그 영화의 해당 홈페이지에 가장 많이 모이는 만큼 추가관객 유치에 홈페이지가 큰 역할을 하는 것이다. 반대로 영화 홍보페이지 이미지만으로 극장에 갔다가 실망한 경우도 많이 생기고 있으며 게시판에는 주최측의 계획적인(?) 관객평으로 인해 잘못된 여론이 형성되기도 하지만 이것 모두 영화 홍보 홈페이지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또 다른 현상인 셈이다.
때문에 리노다임·카인드인포 등 영화 홍보 홈페이지 전문업체의 주가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카인드인포는 첫 작품인 ‘봄날은 간다’ 홈페이지를 만든 이후 ‘공공의 적’ ‘피도 눈물도 없이’ ‘재밌는 영화’ 등 영화만을 위한 전문 웹에이전시로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으며 리노다임 역시 ‘정글쥬스’ 등 다양한 영화홍보 홈페이지 제작은 물론 이를 디지털 콘텐츠와 연계시키는 비즈니스로 주가를 높이고 있는 경우다.
전문업체들의 활동으로 최근에는 현란한 플래시, 주인공의 캐릭터화, 게임, 만화 기법, 콘텐츠 다양화, 온오프라인 이벤트 연계에 이르기까지 영화 홈페이지의 볼거리가 더욱 많아지고 있다.
‘와니와 준하’ 홈페이지의 경우 와니·준하의 방이 큰 인기를 끌었는데 네티즌들이 영화 배경이 된 두 주인공의 방을 마치 실제로 둘러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잘 만들었다는 반응을 얻었다. ‘정글쥬스’의 경우 양아치에 대한 거리 인터뷰를 촬영해 페이지에 올렸으며 여기서 얻은 아이디어를 통해 양아치 생존게임이라는 플래시 게임으로까지 연결되는 등 쓰임새가 점점 커지고 있는 상황.
영화 ‘버스, 정류장’ ‘피도 눈물도 없이’ ‘공공의 적’ 홍보 페이지도 눈여겨 볼 만하다. ‘버스, 정류장’은 포스터·스틸·동영상·OST 등이 알차고 ‘피도 눈물도 없이’는 주인공 캐릭터를 개발해 유명 포털사이트에 아바타로 제공했으며 ‘공공의 적’은 배역간 갈등 구도를 플래시 인터페이스로 풀어냈다.
‘봄날은 간다’의 경우 필름2.0이 3월말 선정한 최고의 영화 홍보 홈페이지로 선정될 정도로 인기를 끈 케이스. 강렬한 플래시나 영화의 과대 포장과는 거리가 멀지만 오픈 당시 푸른빛 감도는 새벽녘, 둘의 가슴 벅찬 만남을 보여주는 화면 상단의 애틋한 플래시 무비 위에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는 대사와 상우의 흐느낌이 포개지면서 영화의 맛을 한층 살리는 역할을 했다. 특히 유명한 영화장면인 대숲의 바람 소리와 파도 소리 등 상우와 은수가 채집하러 다니던 영화 속 자연의 소리들을 그대로 들을 수 있게 한 사운드 트립이 압권이다.
영화 홍보 홈페이지 제작사인 리노다임의 한 관계자는 “현재 영화 마니아들의 실시간 채팅, 친밀도 높은 커뮤니티가 영화홍보 홈페이지 안에서 흡수되고 있으며 앞으로는 다수 개발되는 디지털 콘텐츠의 전송 및 다운로딩 서비스까지 추가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인혜기자 ihch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