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부가 추진중인 이동전화단말기의 한글입력방식 표준화에 관련업계 및 전문가들이 당위성과 추진방식, 실효성에 이견을 보이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9일 관련업계와 전문가들은 정통부의 추진방식이 이해당사자인 단말기업계가 배제된 상태에서 통신사업자 위주로 진행되고 있고 일부 한글입력방식 개발업체들마저 동참하지 않는 등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표준규격 확산이라는 당초 목적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쳐 추진방식에 대한 재고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이와 함께 일부에서는 다양성과 신속한 발전을 요구하는 단말기 특성상 한글입력방식을 과연 지금 시점에서 표준화해야 하는지에 대한 당위성에도 의문을 표시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통부는 지난달 30일 무선인터넷표준화포럼을 열어 오는 15일까지 표준 제안서를 접수받고 이를 바탕으로 기술검토 및 평가를 거쳐 7월 15일까지 표준안을 확정짓기로 했다. 정통부는 한글입력방식의 표준안을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TTA)의 단체표준으로 채택한 후 국가표준(KICS)으로 제정한다는 방침이다.
업계와 전문가들은 기술료 없이 한글입력방식을 제공하려는 업체들에만 제안서를 받는 것은 우수한 기술보다는 기술료 없는 방식만을 대상으로 표준안이 채택될 우려가 크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도상 언어과학 사장은 “기술료를 부과하지 않으면 업체들의 참여가 소극적일 것”이라며 “업체들의 참여가 저조할 경우 수준이 떨어지는 한글입력방식이 표준으로 선정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통부와 포럼측은 이에 대해 “산업발전과 표준확산을 고려할 때 한글입력방식을 무료로 공유하는 게 효과적이며 국가규격 지침상 기술료를 제공할 수 없어 업체에 협력을 요청했고 업체들도 이에 동의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응모한 곳은 개인과 법인을 합쳐 7군데며 삼성전자 애니콜에 채용돼 가장 많은 사용자층을 보유하고 있는 ‘천지인’ 등은 아직 응하지 않고 있다.
단말기업계는 공개적으로 입장을 밝히지 못하고 있지만 정통부의 이번 표준화작업이 관련성이 없는 통신사업자들의 주도로 이뤄지고 있는 점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한글입력방식 표준화는 단말기업계가 주도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통신사업자들이 주도하는 이상한 형국”이라며 “이번 표준화작업은 단말기간 특성을 없앰으로써 단말기업계를 종속시키려는 통신사업자의 의도로 보인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일부에서는 한글입력방식의 표준화에 대한 당위성에도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정통부와 포럼측은 사용자들이 단말기를 바꿀 때마다 서로다른 한글 입력방식 때문에 불편을 겪고 있으며 콘텐츠 사업자들도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업계와 전문가들 사이에는 이동전화의 키 수는 3×4로 12개 밖에 되지 않아 한글을 효율적으로 입력하는 방식에 계속 개선이 이뤄지고 있는 실정이라며 지금 단계에서 표준화를 하면 개선에 장애를 줄 우려가 크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또한 콘텐츠이용에 관련된 호환성은 한글코드와 무선플랫폼의 문제이지 한글입력방식과는 전혀 관계가 없어 이번 표준화 추진주체들이 철저한 사전준비도 부족했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번 표준화는 시장에서 표준화를 유도확산하기보다 오히려 혼란을 부추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실정이다.
정통부가 이번에 채택된 한글입력방식을 TTA 단체표준으로 삼는다고 하더라도 이미 독자적인 한글입력방식을 채택해 고정 이용자층을 보유하고 있는 단말기업계가 단체표준을 채용할지 의문이다.
LG전자가 채택하고 있는 ‘나랏글2000’의 경우에는 제안서를 제출했지만 다른 방식이 표준으로 채택됐을 경우 한글입력방식을 바꿀지는 아직 미지수다. 특히 국내 단말기이용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삼성전자의 애니콜에 채택된 ‘천지인’ 방식은 아직까지 제안서 제출이 이뤄지지 않았으며 마감일인 15일까지 제출될 가능성이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유성호기자 shyu@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