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이건희 회장이 KT 지분(28.37%) 매각과 관련, 입찰불참 의사를 밝힘에 따라 관련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KT가 여의도 국민일보 8층에서 기관투자자들을 대상으로 매각설명회를 갖고 있는 가운데 같은 시각 이 회장은 신라호텔에서 KT 지분인수에 미련이 없음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업계에서는 이같은 이 회장의 ‘느닷없는’ 발언을 두고 진위여부 분석과 함께 앞으로 KT 민영화의 앞날에 미칠 영향을 파악하느라 부산한 모습이다.
◇삼성그룹측 입장=삼성은 그동안 KT 지분참여 여부에 대해 이렇다할 의사표현을 하지 않았는데 언론이 앞서나가는 바람에 참여하는 것처럼 비쳤을 뿐이라는 설명이다. 이 회장의 입장표명은 그동안 삼성그룹이 정리한 내용을 확인해준 데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반도체산업 설비투자만으로 급한데 그럴 여유가 있겠느냐는 반응을 보였다. 삼성은 공식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있으나 최근 난무하는 특혜설에 적잖은 부담을 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관련업계 반응=한마디로 어이없다는 반응이다. 전략적 투자자로 수천억원대의 자금을 동원할 수 있는 유일한 그룹으로 지목돼온 삼성그룹이 KT 지분매각 입찰에 불참하겠다고 공식 선언했기 때문이다. 당장 SK는 삼성이 불참한다면 무리해서 참여할 명분이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LG 역시 삼성의 불참선언으로 참여논리가 없어졌다는 입장이다. LG는 장비공급건을 들어 얼마간의 지분매입은 있을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었다. 그러나 삼성의 불참선언으로 급할 게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효성·롯데·대림 등 중견기업 역시 참여할 가능성이 적어졌다는 분위기다.
◇증권가 분위기=증권가의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그만큼 상황판단이 어렵다는 얘기다. 현대증권 관계자는 삼성의 불참선언이 사실이라면 지분매각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삼성의 불참은 곧 경쟁관계에 있는 SK·LG의 불참으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설명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딜 자체가 무산될 가능성까지 있는 것으로 파악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LG증권 관계자는 “지금까지 불참입장을 고수해온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며 “삼성은 결국 더 많은 유리한 조건을 이끌어낸 다음 지분매각에 자연스럽게 참여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정통부·KT 입장=상당히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정통부 한 관계자는 내심 삼성측의 입장에 당황스러워 하면서도 KT 지분매각 입찰일정에는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 관계자는 교환사채(EB) 발행조건 등 특혜라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조건을 제시했기 때문에 다른 전략적 투자자들과 기관투자자들을 동원하면 무리없이 매각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그러나 ‘갑작스럽다’는 표현과 함께 정통부 내 관계자 회의를 거쳐 공식적인 반응을 내놓겠다며 상황을 정리했다. KT 역시 당혹스러워하기는 마찬가지다. KT는 이날 일체의 공식적인 입장표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어쨌든 정부는 민영화 일정에 쫓겨 충분한 여론수렴 과정없이 5조원에 이르는 대규모 물량을 한꺼번에 처리하려다 이같은 결과를 자초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하게 됐다.
◇매각 제대로 될까=최대 관심사다. 정부는 지분매각을 자신하고 있으나 사실상 힘들다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따라서 6월 말까지 예정한 KT 완전 민영화 자체도 난관에 부딪친 것으로 보고 있다.
이같은 전망은 정부가 삼성이 이번 지분매각에서 최대 전략적 투자자로 나서고 이를 견제하려는 LG·SK 등 재벌그룹들이 참여할 것으로 봤으나 이 예상 자체가 어긋났기 때문이다.
LG전자의 김종은 정보통신사업 총괄사장은 지난 8일 기자간담회에서 “삼성이 KT 지분을 아예 매입하지 않는다면 우리도 사들일 이유가 없다”고 언급했으며 SK텔레콤도 정부의 매각안이 발표된 직후 일관되게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혀왔다.
매각할 KT 지분 가운데 전략적 투자자에 배정된 15%는 금액으로는 3조원 정도로 이들 대기업들이 참여하지 않으면 기관투자자나 일반투자자가 소화하기는 벅차다. 특히 일부 기관투자자들은 민영화 차질로 수익성 악화가 예상될 경우 입찰에 불참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삼성의 불참이 SK나 LG가 되레 적극적으로 돌아서게 만들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또 효성·대림·롯데 등 참여 여부를 검토중인 중견 재벌들도 가세할 경우 지분매각이 상당수 이뤄질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하지만 소수의견이다.
<박승정기자 sjpark@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