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근의 정보통신 문화산책>(56)뉴욕 증권거래소의 태극기(하)

필자는 최근 KT 2차 DR 발행에 관련된 도서출판에 관여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직접 참여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보다도 KT DR 발행에 대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책에 거론된 이상의 자료를 확보하고 파악하면서 9.11 테러 직전의 발행시점 등, 매우 조화로운 발행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누군가 보이지 않는 또다른 힘이 도움을 주었다는 느낌이었다.

 그것은 1차 DR 발행에 대한 책을 발간하면서 느낌과 연계되는 것으로, 단순히 특정한 기업의 일이 아니라 정보통신사업 자체가 우리나라 경제와 국운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 내용을 본 칼럼에서 다루기 위해서는 특정 기업의 명칭과 인물이 등장할 수밖에 없었고, 특정사업에 대한 실적이 강하게 부각될 수밖에 없었다. 양해를 부탁드린다. IT관련 기업의 종사자들에게 자부심을 줄 수 있고, 많은 기업들에 뉴욕 증권거래소에 태극기를 휘날리는 꿈을 갖게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1998년 말, IMF사태 직전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은 30억달러 수준이었다. 곧 IMF사태로 빠져들었고, 우리나라의 국가 신인도는 곤두박질쳤다. 이 상황에서 국가 신인도를 높일 호재가 절실히 필요했고, 그때 KT 1차 DR 발행이 이루어졌다. 25억달러. 국내기업은 물론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최대 물량으로 20.4%의 프리미엄 발행이었다. 당시 뉴욕 증권거래소에 펄럭이는 태극기가 IMF 상황의 한국경제를 세계경제 시장에 복귀시키는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2차 DR 발행 당시 세계경제는 침체국면에 있었다. 특히 미국경기가 하강국면에 빠져들었다. 나스닥지수 2000선이 무너졌고, IT 및 통신업종은 상대적으로 더욱 큰 폭의 하락세를 보였다. 전세계적인 경제불황과 증시침체가 지속되고 통신주를 포함한 IT분야의 관련주식의 환상이 사라진 시점에서 DR 발행이 이루어졌다. 22억달러, 0.35% 할증된 프리미엄 발행이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IT 대한민국이라는 사실을 세계가 인정했다는 사실이다. 정보통신사업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던 외국 투자자들은 IT 대한민국에 그 가치에 대한 확신을 보여주었다. 이를 통해 정부와 KT, 정보통신 관련기업에서는 자부심을 갖고 더 노력할 수 있는 계기로 작용했다.

 때문에 KT의 DR 발행은 특정 기업의 일이 아니라 우리나라 경제의 한 흐름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단순히 KT에 국한된 DR가 아니라 세계경제, 우리나라 경제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경제질서 차원에서 KT DR가 갖는 의미를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1차 DR 발행 당시 어쩌면 KT는 자신들의 한계를 실감하고 실의에 빠져버릴 수도 있었다. 그만큼 유선사업자들에 대한 위기의식이 팽배해 있었다. 유선사업을 주력사업으로 하던 KT는 모든 조건이 불리하고, 무조건적이고 무한대의 구조조정이 필요한 형편이었다.

 1차 DR 발행당시 해외투자자들에게 KT가 제시하고 자랑할 수 있었던 것은 안타깝게도 수많은 직원들을 명예롭게 퇴직시킨 구조조정에 대한 내용이다. 그에 따른 분석 데이터들이 성공적인 DR 발행의 도구로 활용되었다. 인력에 대한 구조조정은 가장 어려운 일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가장 쉬운 일이기도 하다. 불행히도 같이 근무하던 사람들 밥줄을 잘라버린 일을 세계 경제인들에게 자랑했고, 세계의 투자자들은 그 사실에 박수를 쳐주었다. 필요한 일이긴 했다. 또한 그 일을 담당한 사람들의 고뇌도 이해할 수 있다. 다만 안타깝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2차 DR의 경우에는 명확한 비전과 실적을 제시할 수 있었고, 그 실증을 객관적으로 보여줄 수 있었다. 세계 최강의 초고속인터넷 기업 등 세계 경제인들이 예사롭지 않은 눈으로 IT 대한민국을 바라보게 했다. 중요한 것은 정부와 KT가 추진한 사업모델들은 외국의 통신사업자들한테서 벤치마킹 한 것이 아니었다. 세계 어느 기업도 이러한 사업모델을 제시조차 못했다. 이러한 사실 때문에 세계 경제인들은 투자에 인색하지 않았고, 프리미엄 발행에도 IT 대한민국에 투자를 망설이지 않았던 것이다.

 투자자는 돈만을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되는 사업과 되지 않는 사업만을 생각하고, 어떻게 해야 돈을 벌 수 있는지 만을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프리미엄 발행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은 이미 그들이 원하는 기업으로 변해있었다는 결과가 된다. 그렇다면 KT는 어떻게 그들이 원하는 기업으로 변화할 수 있었던 것인가.

 DR 발행을 위해서는 세계 각국을 방문하여 투자 설명회를 개최한다. 한 사람 한 사람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룹을 지어 설명회를 개최하기도 한다. KT의 경우 2차 DR 발행을 위한 로드쇼를 12개국 26개 주요 금융도시를 20일 동안 순회하면서 시행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투자자들을 만나야 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많은 투자자들의 힐책과 격려를 받아야 했다. 1차 DR 발행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돈을 투자하기 위해서는 투자기업에 확신을 가져야 하는 것이고, 그 확신을 위해 투자자들은 많은 질문을 했다. 그들이 던지는 말 한마디, 질문 하나하나를 모아보면 그들이 원하는 기업의 전형이 되었다. 세계경제에 능통한 사람들의 시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겪는 여러가지 상황은 정부와 KT 핵심요원들에게 정보통신 사업에 대한 시야를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KT 이상철 사장은 2001년 직원들과 함께 한 ‘희망대토론회’에서 DR 발행에 대한 소감을 다음과 같이 피력했다.

 “해외 투자자들이 보는 KT는 좋은 점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브로드밴드다, 초고속인터넷의 강자다, ADSL 가격이 세계 최저다 등을 굉장히 높이 삽니다. 브로드밴드는 우리가 400만명을 넘어서는 가입자 수로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다는 사실은 이번 2차 DR 발행성공의 수훈 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거기다가 유선과 무선을 같이하고 있다는 것도 큰 관심사였습니다. 그리고 ADSL 다음에는 무엇을 할 것인가. 유선 다음에는 무엇을 할 것인가. 수익의 실체는 무엇이냐. 여러가지 질문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것들을 대답하면서도 저는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CEO로서 꼭 필요한 생생한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중략)

 그러면서 이번 기회에 민간기업을 넘어선 선진기업다운 투자비와 투자수익률, 영업이익, 매출 등을 재검토하고 경영을 좀더 내실화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전면적으로 한 번 재검토를 하면서, KT가 거듭나는 계기를 만들어야 할 때입니다.”

 전세계에서 초대형 기관투자가들과 부딪치고 대화하면서 변화의 바람을 직접 느꼈고, 경영의 새 패러다임을 깨닫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이러한 시각의 확대는 1차 DR 발행 때도 마차가지였을 것이고, 2차 DR 성공의 중요한 바탕이 되었을 것이며, DR 발행을 계획하고 있는 다른 기업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많은 IT관련 기업들이 뉴욕 증권거래소에 태극기를 게양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작가/한국통신문화재단(KT과학관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