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물등급위원회(위원장 김수용)가 최근 발표한 온라인 등급분류 기준안 가운데 가장 논란의 여지가 많은 부분이 언어와 대화에 관한 대목이다. 실제 온라인 게임에서 언어폭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익명성이 보장되다보니 욕설과 상소리가 거침없이 쏟아진다. 제법 점잖은 사람도 온라인 게임을 1시간만 하면 ‘X새끼’ ‘죽인다’ 등의 욕설을 거리낌없이 한다. 무엇보다 언어는 하나의 습관이기 때문에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언어폭력이 비단 사이버공간에만 머물지 않고 현실세계로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등위가 언어부분을 등급분류 기준안에 포함시킨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많다. 우선 채팅 등 대화기능이 과연 게임 고유 영역에 포함되느냐 하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채팅이나 e메일 서비스를 게임과 분리시키더라도 게임을 얼마든지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온라인 게임의 경우 가장 중요한 게임 요소 가운데 유저들의 상호작용성을 꼽을 수 있다. 또 유저간 자유로운 대화를 통해 커뮤니티도 형성할 수 있는 것을 감안하면 분명 대화기능은 온라인 게임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기능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굳이 대화를 하지 않고도 충분히 게임을 즐길 수 있기 때문에 채팅이나 e메일 서비스를 필수가 아닌 부가기능으로도 볼 수 있다.
두번째로 개인간 사적 대화를 문제삼아 심의하는 것은 명백하게 사생활 침해일 뿐만 아니라 통신비밀보호법에서도 영장 없이 개인간 서신을 검열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사적인 대화는 게임 프로그램의 사전심의에서도 거를 수 없다는 점이다. 대화를 사전심의에 포함시키는 것은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만으로 게임 프로그램을 심의하는 꼴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폭력 등 게임의 본질적인 문제와는 달리 대화기능을 게임 심의대상 범주에 넣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신중하게 생각해야 할 문제다.
영등위는 언어폭력을 막는다는 취지로 최근 공청회에서 등급분류 기준안에서 대화기능이 포함된 온라인게임의 경우 언어 필터링 프로그램을 필히 도입할 것을 제안했다. 만약 그렇지 않을 때에는 18세이용가로 등급을 분류하는 등 강력한 제재를 가하겠다는 의지까지 보였다.
그러나 문제는 대화기능 프로그램 자체가 좋고 싫음을 판단할 수 없는 가치중립적인 속성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대화만으로 ‘피가 난무한 그래픽’이나 ‘무차별적인 살인이 허용되는 PK(Player Killing)’ 등과 같이 바로 윤리기준을 적용할 수 없다. 따라서 필터링 프로그램의 유무를 가지고 게임 프로그램을 심의하겠다는 발상은 분명 무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필터링 프로그램의 순기능을 무시할 수는 없다. 영등위의 자체 조사에 따르면 필터링 기능을 탑재한 게임과 그렇지 않은 게임을 비교하면 필터링 기능을 도입한 게임에서 언어폭력이 현저하게 줄어든 것으로 분석된 바도 있다. 또한 게임업체들도 건전한 게임문화를 정립시키기 위해서라도 이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무분별하게 이뤄지는 폭력적인 대화를 막을 필요는 있다.
전문가들은 영등위가 언어폭력을 막아보자는 취지에서 대화기능에 대해 공론화시킨 만큼 정부가 공익적 차원에서 필터링 프로그램을 개발, 업체들에 무상으로 나눠주는 방법도 고려해봐야 한다고 말한다. 언어 필터링 프로그램은 개발비가 그렇게 많이 들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미 공개된 소스도 많기 때문이다.
영등위의 한관계자도 “최근 언어 필터링 프로그램의 강제화에 대해 전문가들의 부정적인 입장들을 고려해 ‘언어 필터링 기능’을 권고사항으로 하는 방향을 신중히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장지영기자 jyaj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