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행 초대형 현금자동입출금기(ATM) 도입사업을 목전에 둔 국내 ATM업계의 한숨소리가 크다. 국민은행이 대규모 물량의 ATM을 전에 없던 저가로 구매할 조짐이 보이면서 ATM시장 자체가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은행은 소매금융을 강화하기 위해 올해 ATM을 3단계(1차분 60대, 2차분 350대, 3차분 2890대)에 걸쳐 총 3300대를 순차적으로 도입한다.
업계에 따르면 최근 국민은행은 3차 물량에 대한 제안요청서를 효성, 청호컴넷, FKM, LG엔시스, 엔씨알, 닉스도르프 등 6개 업체에 보냈으며 이들 업체는 제안요청서를 작성, 지난 10일 국민은행측에 제출했다. 제안요청서를 검토한 국민은행은 20∼24일께 공급업체를 최종 선정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국내 ATM 사상 최대의 입찰을 앞두고 있는 ATM업체는 큰 입찰에 대한 기대는커녕 한숨만 내쉬고 있다.
우선 가격문제다. 효성이 2차분 공급가를 시중가에 비해 30% 이상 저렴한 대당 2150만원대에 국민은행에 제안한 이상 3차 물량도 이 가격 이하로는 내려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량도 2차보다 큰 상황에서 국민은행이 2차보다 높은 가격으로 구매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 이번 입찰에 참여하는 업체는 사실상 효성의 가격수준을 겨냥하거나 입찰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다.
업체 관계자는 “그 정도의 가격이라면 도저히 적자폭을 채울 수가 없다”며 “아니면 제품가격을 맞추기 위해 질을 낮추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문제는 ‘최저가입찰’ 방식에 따른 1개 업체의 선정이다. 이미 구 주택은행에는 청호와 FKM, 구 국민은행에는 청호, FKM, 효성 3사 제품이 들어가 있는 상태다. 국민은행측은 제안요청서에서 제품공급은 물론 시스템설치와 현금수송과 관련한 토털서비스를 원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따라서 한 업체가 선정될 경우 과연 기존에 설치된 타 업체의 제품까지 모두 커버할 수 있겠냐는 의문이다.
한 업체의 생산량 한계도 문제다. 1년 안에 2000대 이상의 물량을 공급할 수 있는 업체가 사실상 없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업계가 우려하고 있는 것은 국내 ATM업계의 경쟁력 상실이다.
이미 효성의 2차 가격이 업계에 알려지면서 벌써부터 일부 은행에서는 자신들도 낮은 가격으로 달라는 주문을 하고 있어 업계가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연간 국내 ATM시장이 5000대 정도로 이를 4개사가 나누고 있는 상황에서 최근 국내 ATM업계는 시장확대를 위해 해외시장을 적극 공략하고 있다. 그런데 이같은 출혈경쟁으로 해외시장 진출에 앞서 고사할 위기를 맞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따라서 업계에서는 국민은행의 이번 입찰이 가격위주에서 탈피해 제품성능, 납품실적, 가격 등 다양한 평가기준으로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ATM산업이 이제 막 경쟁력의 싹을 틔우고 있는 상황에서 자칫 이번 입찰로 업계 전체가 무너지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토로했다.
한편 효성측은 이와 관련, 가격문제는 아직 논의할 단계가 아니라는 입장이며 국민은행측은 이와 관해 노코멘트로 일관하고 있다.
<윤대원기자 yun1972@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