럼스펠드 미국 국방장관은 향후 미군이 사용할 차세대 무기체계와 관련해 지난 8일 의미심장한 결정을 내렸다. 총 110억달러를 들여 미 육군의 노후한 155㎜ 대포를 교체하는 ‘크루세이더 포’ 개발계획을 일거에 중단한 것이다. 군수업계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재래식 포병부대를 유지하는 것보다 아프간 전장에서 위력을 발휘한 정밀유도무기(로봇병기) 개발이 우선이라며 한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아프간 전쟁의 승리 이후 미국은 21세기 전장을 무인화하는데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사람이 타지 않는 무인전투기, 무장탱크, 헬리콥터, 정찰차량 등 미 군당국이 고대하는 로봇병기는 늦어도 2020년까지 실전배치돼 병사를 대신해 최전선의 위험한 전투임무에 투입될 전망이다.
로봇전투시스템이 완성될 경우 각개 병사가 목숨 걸고 전투임무를 수행할 상황은 크게 줄어든다. 로봇병사는 먹지도 쉬지도 않기 때문에 언제라도 작전투입이 가능하며 적군이 파괴해도 또 만들면 그만이다. 작전상황이 발생하면 먼저 로봇수색대를 파견한다. 적의 은신처가 발견되는 즉시 무인전투기들이 각종 미사일과 폭탄을 퍼붓고 다시 한번 지상로봇이 정찰한 이후에야 병사들이 접근한다.
이론적으로 향후 미국이 특별한 보복수단을 갖지 못한 약체국가와 대결할 경우 미군은 거의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전자오락게임을 하듯이 상대국가의 사단병력을 궤멸시킬 수 있다.
미국은 로봇기술을 이용해 역사상 어떤 군사강국도 갖지 못했던 전쟁수행의 무한자유를 추구하는 듯하다. 그러나 무인화된 로봇병기의 대량보급은 국제정세에 매우 위험한 상황을 야기할 가능성이 크다. 사람 대신 로봇이 싸우는 전쟁터에선 인류가 나름대로 지켜온 게임(전쟁)의 법칙이 통하지 않는다. 치열한 전투중에 제네바협약을 지키고 대량살상 무기 사용을 자제하는 이유는 적군도 사람이기 때문이다. 반면 로봇병기가 전쟁터의 주역이 될 경우 군수뇌부는 적의 무인탱크사단을 소형 핵무기로 날려버리는 문제에 대해 별로 고심하지 않을 것이다.
또 인간은 그렇게 멍청한 존재가 아니다. 무인화된 전장에서 로봇병사와 싸우는 것이 무의미한 상황이 닥칠 경우 일부 무장조직은 자신들의 정치적 목표를 위해 적대국에 대해 전혀 다른 형태의 전쟁수행방식(테러)을 생각할 가능성도 있다.
결국 전투에선 이기더라도 자국 민간인의 생명은 보호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막대한 돈으로 개발한 로봇병기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앞으로 로봇이 군대를 대신 가는 세상이 온다 하더라도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평화로운 세상이 지켜지는 상황은 유감스럽게도 절대 오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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