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소재 A대학 조교수 김성은씨는 최근 서울 소재 대학의 전임강사로 자리를 옮겼다. 부교수 승진을 앞둔 김씨가 직급을 낮추면서까지 서울로 자리를 옮긴 것은 지방대의 열악한 교육여건 때문이다. 지방대의 교육여건과 연구비 수준이 형편없어 학자로서의 앞길이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 김씨의 변이다. 게다가 지방대를 얕잡아보는 사회풍토로 스트레스를 받아 잠을 이루지 못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고 토로하고 있다.
전남 소재 A대학 전자공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인 김수정씨는 내년 2월이 졸업이지만 벌써부터 취직문제로 애간장을 태우고 있다. 지금쯤이면 대충 진로를 결정하고 직장을 알아봐야 하지만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지방대라는 꼬리표가 생각 이상으로 큰 걸림돌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몇 군데 중견기업 연구직에 원서를 냈지만 2개월이 지난 지금도 감감 무소식이다. 선배가 이야기한 이력서 쓰기가 겁난다는 말이 피부로 와닿고 있다.
지방대가 무너지고 있다. 교수와 학생 등 고급두뇌가 외면하고 졸업생 취업난이 겹치면서 지방대의 위기는 더이상 방치할 수 없을 정도가 된 지 오래다. 70년대만 해도 몇몇 지방 대학은 사회적 평판이 높았지만 지금은 과거의 위상을 찾아볼 수 없다. 전체 대학생 정원의 66%를 차지하는 지방대의 위기는 지방대 차원의 문제만이 아니라 지역경제의 몰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지방대학의 어려움은 학생 수에서 그대로 나타난다. 지난해 전국의 대학은 1만3000명의 학생을 충원하지 못했다. 이중 87%가 지방대에서 비롯됐다. 95년 개교한 전남 H대는 3년 전 학생 부족 등으로 교육부의 폐쇄 계고를 받은 뒤 신입생 정원을 18개과 1640명에서 12개과 640명으로 줄였다. 지난해에는 두 차례나 추가모집을 했지만 여전히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 경북 A대는 지난해 모집정원 1627명의 절반에 가까운 834명, 전남 B대는 모집정원 2234명 중 1004명을 채우지 못했다.
내년부터는 더욱 심각하다. 대학 모집정원보다 고교 졸업 예정자가 적어 대학이 학생을 찾아나서야 할 형편이다. 지방대는 삼중고를 겪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학생 부족은 대학 경영난과 교육여건 악화로 이어져 지방대학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이런 까닭에 지방 군소 사립대학과 전문대학은 신입생을 한사람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 등록금 감면은 물론이고 기숙사 및 관리비 무료 제공, 통학버스 무료 운행, 주말 서울행 셔틀버스 무료 제공, 졸업보장(?) 등 가히 파격적이라고 할 수 있는 각종 혜택을 입학조건으로 내걸고 있지만 성과는 아직 미지수다.
지방대학의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지방 사립대학 가운데는 전체 정원에 비해 실제 등록하는 학생이 적을 뿐만 아니라 재학생 가운데도 수도권 대학으로 편입학하는 비율이 매우 높다. 그 결과 만성 적자로 인해 부도 위기에까지 몰리는 사립대학이 적지 않다. 2000학년도 입시에서 지방대학에 합격하고도 등록하지 않은 신입생수가 7000명을 넘는 등 지방대의 위기가 아닐 수 없다. 재정 수입의 대부분을 등록금에 의존하는 지방대학으로서는 휴학생이 50%를 넘는 상황에서는 경영난이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100억원 이상의 부채를 짊어진 대학만도 17개나 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교수의 처우개선이나 산학협력 등은 꿈도 못 꾸고 있다. 일부에서 이야기하는 특성화 대학 등은 서울 일부 대학 ‘그들만의 이야기’일뿐이다. 취업문제 역시 이미 사회적인 이슈로까지 등장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무너지는 지방대는 지역경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인재가 서울로 몰리면 창업도 서울에 집중되고 일자리를 찾아 인재들이 서울로 다시 몰려드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결국 지방대는 지역출신 우수 고교생의 진학률 감소→지방대 대학원 진학률 감소→대학연구능력 저하→지방대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 확산→지역경제 피폐라는 악순환의 고리에 묶여 있다.
문제가 이 지경까지 오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정부의 수도권 집중화 정책 때문이다. 국가 공공기관의 84%와 30대 그룹 주력 기업 본사의 88%가 서울에 집중돼 있고 주요 대기업의 직원 중 수도권 대학 출신 비율이 82.5%을 넘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대졸 구직자 93%가 지방대 출신이라고 차별을 받았다는 통계가 나오는 것을 보면 지방의 고3 수험생들이 무조건 수도권 대학으로 가겠다는 욕심을 무조건 탓하고 나무랄 수만도 없는 게 현실이다.
전문가들은 지방대 육성을 위해 별도의 정책을 개발하고 산학협력 강화 차원에서 기업체가 대학에 필요학과를 설치하거나 실험실습 기자재와 장학금을 지원하는 제도도 도입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