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케이블TV 도입 왜 늦어지나

 우리나라가 디지털케이블TV 국가 단일표준으로 검토중인 미국 주도의 오픈케이블 방식이 현재까지 세부규격 작업이 미비한데다 상용화장비 출시까지는 상당한 시간을 필요로 하고 있어 하반기 이후 예정됐던 국내 케이블TV서비스의 디지털전환이 암초에 걸리게 됐다.

 이에 따라 국가표준 제정작업에서 오픈케이블 방식 도입을 전제로 하되 하위규격인 미들웨어 표준인 OCAP(Open Cable Application Platform)규격의 적용이나 수신제한장치를 내장한 POD(Point Of Deployment)의 분리 의무화규정을 일정기간 유예하는 등 국가단일표준 확정문제에 유연하게 대처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정부가 오픈케이블 방식을 확정하면서 하위규격의 적용을 강제로 밀어붙일 경우 국내 케이블TV사업자의 디지털전환 작업이 장비부재로 인해 한없이 뒤로 밀릴 가능성이 높아 국제표준화 작업과 국내사업자의 디지털전환 일정을 종합검토한 국가표준 적용 검토가 요구되고 있다.

 ◇장비가 없다=디지털케이블TV의 주역인 디지털케이블 SO연합체인 디지털케이블미디어센터(DMC)나 MSO업체들은 디지털케이블TV 국제표준화동향 및 NCTA2002 현황을 언급하며 우려의 목소리를 던지고 있다.

 지난 8일(현지시각)까지 미국 뉴올리언스에서 열린 NCTA2002를 참관했던 MSO 관계자들은 한결 같이 “현재 상태라면 국내 디지털케이블TV 표준이 오픈케이블로 확정된다 할지라도 하위규격을 충족하는 장비가 국내외 어디에도 없게 돼 디지털전환을 추진할 수 없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NCTA를 참관했던 한 MSO 대표는 “표준화를 주도하는 케이블랩스로부터 규격인증을 받은 장비업체가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POD나 OCAP라는 하위규격이 명문화된 오픈케이블 방식이 확정되고 강제된다면 디지털전환은 하고 싶어도 못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또다른 MSO업체의 대표는 “국내 케이블TV사업자들이 현재 상태에서 도입할 수 있는 유일한 장비는 SA나 모토로라의 디지털케이블TV장비라는 점을 감안하면 오픈케이블 규격이 상용화하기 이전까지 한정적으로 비표준장비를 도입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진행현황=오픈케이블 방식은 미국내 케이블사업자들이 출자해 설립한 케이블랩스의 디지털케이블TV 표준 프로젝트로 소매(retail)용 케이블 셋톱박스 규격제정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FCC는 오는 2005년부터 이의 도입을 의무화한다고 밝힌 바 있다.

 미국 디지털케이블TV시장은 현재 사이언티픽애틀랜타(SA)와 모토로라가 자사의 개별표준을 기반으로 1500만대 이상의 셋톱박스를 보급한 상태로, 오픈케이블 규격도입은 소비자가 시장에서 셋톱박스를 구입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비롯됐다.

 오픈케이블 방식은 POD를 중심으로 한 하드웨어 규격과 OCAP를 바탕으로 한 소프트웨어 규격으로 나뉘고 있으나 규격작업이 ITU 국제표준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는데다 필수절차인 케이블랩스의 인증을 받고 있는 장비업체가 하나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오픈케이블의 하드웨어 규격은 기본적으로 미국내 케이블방송장비업체인 SA와 모토로라의 제품규격을 따르고 있으나 핵심사안인 셋톱박스에서의 POD 분리문제에 대해서는 FCC, 케이블랩스, MSO, 장비업체간 의견조정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소프트웨어 규격 역시 케이블랩스가 지난달 버전 2.0을 제시했으나 ITU 표준으로까지는 이어지지 못했다. SA나 모토로라 등 미국내 디지털케이블TV장비업체까지도 미국 케이블시장이 사업자 구매를 기본으로 한 렌털 형태로 이뤄짐에 따라 POD나 OCAP를 포함한 오픈케이블 인증을 추진하지 않고 있으며 NCTA2000에서도 관련제품의 출시는 없었다.

 ◇우리나라의 오픈케이블 도입작업=현재 정보통신부, 삼성전자 등 장비업체,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정보통신기술협회(TTA), 케이블TV협회 관계자들이 참여한 디지털유선방송표준화 전담반은 디지털케이블TV 국가표준을 유럽방식(DVB-C)이 아닌 미국 주도의 오픈케이블 방식 도입을 잠정적으로 확정했다. 정통부의 규격제정 작업은 현재 오픈케이블 방식의 하드웨어 하위규격에 대해 ‘수신제한장치를 포함한 POD를 교환 또는 분리해야 한다’고 확정했으며 소프트웨어 하위규격인 OCAP 규격에 대해서는 하반기중 세부작업을 확정한다는 방침이다. 셋톱박스의 호환을 전제로 한 정통부의 이같은 오픈케이블 규격도입작업은 108개 케이블TV사업자들의 디지털 전환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상이 규격장비의 남발, 외국 장비업체의 국내시장 독점방지와 함께 국내케이블 장비산업의 육성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덴버(미국)=조시룡기자 srch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