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명하달로 요약되는 전형적인 오프라인 회의가 사라지고 있다.
정보기술(IT)혁명 이전인 20세기 후반까지만 하더라도 기업회의는 최고경영자가 기업의 주요 방침을 직원들에게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단방향의 창구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런 회의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회의문화가 급속하게 변하고 있다.
일부 기업은 아예 오프라인 회의를 없앴다. 오프라인 회의로 인한 시간과 비용의 부담을 줄일 수 있음은 물론 보다 생산적이고 효율적인 회의를 할 수 있는 대안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IT혁명이 이제는 기업의 전통적 회의문화마저 바꾸고 있는 것이다.
IT혁명은 기업의 위계 서열을 바탕으로 한 일방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수평적인 양방향 커뮤니케이션으로 변모시켰다. 엄밀히 말하면 그동안 상명하달식으로 진행됐던 전형적인 형태의 회의가 점점 발붙일 곳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인터넷 기반 원격 영상회의는 물론이고 최근에는 인터넷 벤처기업을 중심으로 메신저(일종의 채팅 회의 프로그램)를 이용한 회의가 등장할 정도다. 별도의 공간에서 모여 머리를 맞대고 하는 오프라인 회의를 인터넷이 대체하고 있다.
이처럼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영상회의와 메신저회의는 기업 업무 프로세스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최고경영자에서부터 신입직원까지 기업 구성원 전체가 인터넷을 통해 회사 경영정보를 공유하고 회사 비전에 대해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할 수 있게 됨으로써 과거에는 몇 단계 회의를 거쳐야 했던 업무를 이제는 실시간으로 해결할 수 있게 됐다.
최고경영자는 인터넷을 이용해 전체 구성원들에게 경영철학과 사업전략 등을 직접 전달해 기업경영에 대한 합의를 쉽게 이끌어 낼 수 있게 됐다. 구성원 역시 아이디어 제안, 업무 프로세스 개선사항, 발전방향 모색, 사내 현안문제, 조직문화 조성 등에 대한 참신한 아이디어와 의견을 여과없이 최고경영자에게 전달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부가가치 창출의 핵심요소인 지식과 정보의 교류도 활발해지고 있다. 상명하복의 일방적 지시와 명령만이 존재하는 오프라인 회의에서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던 일이다.
이외에도 기업정보 공유와 일체감 형성 등을 위한 대표적 의례행사인 직원 월례조회에도 변화의 조짐이 일기는 마찬가지다.
LSCNS는 지난해 5월부터 월례 직원조회를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생중계하고 있다. 인터넷을 통해 전국 각지에 흩어진 임직원들이 같은 시간에 월례조회에 참석하게 된 것이다.
이 회사 이중운 과장은 “인터넷 월례조회를 실시함으로써 직원들이 한 장소에 모이면서 발생하는 시간과 비용의 낭비를 최소화하는 효과와 함께 흩어져 있는 직원들의 소속감 및 경영진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데 한몫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IT혁명으로 인해 기업의 회의문화가 하드웨어적 측면에서 크게 변모하고 있는 가운데 최근 몇몇 기업들은 소프트웨어 측면에서 변화를 위한 새로운 실험을 진행 중이다.
시스템통합(SI) 전문업체 대우정보시스템은 최근 최고경영자와 대리 및 사원급 직원들이 인터넷을 통해 직접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대화창구인 ‘One Of Us Meeting’을 운영하고 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우리 중 하나라는 뜻의 ‘One Of Us’는 최고경영자가 직원들의 의견을 직접 접할 수 있는 기회로 최고경영자와 평사원들의 만남을 통해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자는 취지로 시작됐다”며 “향후 분기별로 한 번씩 이같은 온라인 모임을 가질 계획”이라고 밝혔다.
온라인게임 전문업체 제이씨엔터테인먼트는 ‘위클리 CEO(Weekly CEO)’라는 이색적인 제도를 도입했다. 매주 한 명의 직원을 임시 CEO로 선정해 최고경영자와 함께 주요 안건을 논의함은 물론 임원회의와 결재까지 직접하도록 했다. 활동이 끝난 후에는 업무현황 및 소감을 사내 게시판에 올려 개별 직원들의 경험과 지식을 전체 직원들이 공유하도록 했다.
이현정 홍보팀장은 “2개월째 시행 중인 이 제도는 직원들의 회사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사내 커뮤니케이션을 원활히 하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IT혁명으로 비롯된 신개념 회의문화의 핵심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어 언제 어디서나 누구든지 참여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활성화로 요약된다. 이는 각 구성원들의 역량을 기업의 경쟁력으로 이끌어내기 위한 선결조건임과 동시에 기존 지식 및 정보의 공유와 교류, 재생산은 물론 새로운 지식창출을 위한 필수조건이기 때문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여전히 비효율적이고 생산성이 낮은 회의를 고수하는 기업들은 세계 유수 기업의 경쟁력은 커뮤니케이션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다시 한번 곰곰이 새겨봐야 할 때다.
<김원배기자 adolfkim@etnews.co.kr>
◆新회의문화 선도업체-알카텔
세계적인 통신장비 업체인 알카텔에는 영상회의가 정착됐다. 알카텔은 중국 상하이에 아·태지역 본부를 설립하면서 호주·뉴질랜드·일본 등지의 현지법인을 영상회의 시스템으로 연결했다.
이를 통해 각 국가별 주요 임원들은 온라인 회의에 참여해 의견 및 정보를 교류하고 있다. 영상회의 시스템을 도입하기 이전에 아·태지역 본부 총괄 사장의 경우 전체 업무 시간의 70% 정도를 출장에 할애해야 했다. 하지만 영상회의 시스템을 도입한 이후에는 출장에 소비하는 시간이 30% 이하로 축소됐다.
알카텔은 한 달에 한 번씩 아·태지역 각 국가 사장단 및 각 사업 부문의 아·태지역 본부 최고 책임자들이 상하이에 모여 이틀간의 일정으로 경영회의를 갖는다. 이때 알카텔의 영상회의 시스템인 ‘e매니지먼트(e-management)’가 활용된다.
각 국가의 사장들이 한자리에 모여 각 나라별 비즈니스 현황을 논의할 때 해당 국가의 임원 및 부서장들은 자국 사무실에서 실시간으로 영상회의에 참여한다.
한국 비즈니스에 대해 논의하는 시간이 되면 중국과 한국간 영상회의가 시작된다. 해당 국가별 책임자가 상하이 현지에서 비즈니스 상황에 대해 보고하고 이를 주요 담당자들이 공유한다. 베이징 현지에서 특정 프로젝트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필요한 경우에는 국가별 담당자에게 발언을 요청, 담당자로부터 직접 설명을 듣는다. 이런 과정에서 회의 참석자는 물론 아·태지역 각 사업 부문 책임자 및 아·태지역 사장들은 중요한 사항을 결정하기 전에 짧은 시간에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수렴해 신속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다.
이외에도 아·태지역 본부에서 사용하고 있는 자료는 ‘넷미팅’이라는 별도의 시스템을 통해 각 국가에서 실시간으로 공유하도록 했다.
알카텔은 이런 시스템을 통해 불필요한 출장을 대폭 줄임으로써 비용절감 효과를 거둠은 물론 실시간 정보교류 및 특정 사안에 대한 다각도의 검토가 한자리에서 이뤄질 수 있는 효율적인 경영시스템 운용이 가능해졌다.
알카텔은 아·태지역에서의 성공적인 운용 결과에 고무돼 ‘e매니지먼트’를 전세계로 확산했다. 이미 지역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유럽·아시아·미국 등지의 전세계 현지법인 및 지사를 연결해 실시간으로 교육 및 회의를 자유롭게 진행 중이다.
<김원배기자 adolf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