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래혁명이 시작된다 / 홍군기 외 47인 공저 / 범우사 펴냄
우리가 발을 딛고 서 있는 ‘현대’는 어디에서 출발해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는 오늘의 사회를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던져보는 물음이다. 미래에 대한 이같은 관심은 확실하고 예측 불가능한 미래가 가져올 충격에 대한 인간의 막연한 불안과 이를 다소나마 완화하고자 하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 완결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을 실행하고자 하는 인간의 야심찬 기획이 어우러진 결과다.
전문가 47명이 공동 집필한 ‘미래혁명이 시작된다’는 일반인의 관심과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미래사회의 쟁점을 긍정론과 부정론의 시각에서 대비시킨 한국판 미래예측 보고서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운 천년의 화두가 될 ‘밀레니엄 코드’는 평화·환경·인간·지식창조·역사 등 5개로 집약되며 이는 생명연장·안락사·맞춤인간·환경문제·정체성·정보복제·지적재산권·이동사회 등 21개의 명제로 구체화되고 쟁점화된다.
새천년에는 유전공학 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생명에 대한 종래의 생각에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이며 이미 도처에서 우리를 괴롭히기 시작한 환경파괴는 단순히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을 포함한 전반적인 생태계 위기의 형태로 전환될 것이다.
또 기계기술이 지식과 정보기술로 바뀌면서 이전의 산업사회와는 구분되는 새로운 정보지식사회가 출현하며 그런 만큼 지금까지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의 내면과 이면을 통찰할 수 있는 새로운 역사관이 요청될 것이다.
이 책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대목은 대부분의 논자들이 첨단 과학기술, 특히 정보통신기술과 생명공학기술이 가져올 미래사회적 파장에 주목하고 있으며 각 논자들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책 곳곳에 기술결정론의 냄새가 진하게 배어난다는 점이다.
그런데 첨단과학기술이 그려내는 정치경제적, 사회문화적 결과를 다룬 이 책을 끝까지 주의 깊게 읽어나간 독자라면 21세기 미래의 향방을 결정짓는 요소는 역설적이게도 첨단과학기술이나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가 아니라 인간적 가치와 문화적 잣대라는 결론에 도달할 것이다.
‘미래혁명이 시작된다’는 격의 없는 토론과 담론의 문화가 일천한 한국 사회에서 우리 학자들이 각계에서 논의되는 다양한 주제를 골라 직접 쟁점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 선정된 주제들이 지금의 시점에서 보면 다소 진부한 면이 있고 미래사회의 전개 방향을 낙관과 비관의 양분법으로 재단하고 있는 점은 현실의 높은 복잡성과 다양성 수준을 고려할 때 지나치게 도식적이고 작위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또 미래사회의 불확실성과 위험에 대비하기 위한 정책 대안의 제시나 실천적 합의 도출이 미흡한 것도 아쉽다.
<김종길 덕성여대 교수 way21@duksu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