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요. 학원에서 배우는 것이 더 나아요.”
경기도 A전문대학 정보통신과 2학년 김모씨(여·22)는 강의에 대해 묻자 쏘아대듯 말문을 열었다. 그녀는 이제 한학기만 지나면 졸업인데 떠오르는 건 거금 100만원을 들여 학원에서 배운 ‘웹마스터’ 과정 밖에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전문대 공부는 거의 독학이나 마찬가지예요. 학원에서 6개월 정도 걸리는 프로그래밍 과정을 일주일에 3시간씩, 그것도 3개월에 끝내니 그야말로 수박 겉핥기죠. 교수들이 구체적인 실무를 잘 모르는 경우도 있고요. 결국 학원을 가지 않으면 죽도 밥도 안되요.”
인천 B전문대학 전자과 복학생 손모씨(23). 그는 잦은 휴강 때문에 속에서 불덩이가 치밀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정원 80명에 전임교수가 3명 밖에 안되다 보니 강의의 절반 이상을 산업체 현장인력이 맡기 때문이다. 이들은 걸핏하면 회사일로 수업을 빼먹는다.
취업률 90% 이상을 자랑하는 전문대 IT학과가 ‘외화내빈’에 몸살을 앓고 있다.
높은 취업률에도 불구하고 정작 교육 프로그램은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먹구구식 커리큘럼에 턱없이 모자란 교수인력으로 학생들은 하나같이 “학교에서는 배울 것이 없다”며 아우성이다.
IT학과 학생들 가운데 학원에서 ‘과외수업’을 받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 2년이라는 짧은 수업연한 동안 자격증 하나 따지 못하면 취업은 꿈도 못꾸기 때문이다.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비싼 학원비를 내고 부족한 공부를 보충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전문대 IT학과 교육이 겉돌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교수인력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 전문대는 159개에 달한다. 특히 159개대는 대부분 소프트웨어·전자·정보통신·전산·멀티미디어·컴퓨터·게임·애니메이션 등 IT관련 학과를 두고 있다.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이하 전문대협의회)에 따르면 지난해 IT관련 학과는 1000개를 헤아릴 정도다. 특히 IT붐을 타고 IT학과는 최근 2∼3년 사이 200∼300개가 새로 생겼다.
하지만 문제는 급속히 늘어나는 학과에 비해 전문 교수인력의 공급이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전문대협의회 집계에 따르면 전국 전문대 교수 1인당 학생수는 평균 25명 수준이다. 그러나 IT학과의 경우 학교마다 편차는 있지만 교수 1명이 담당해야 할 학생이 50명을 넘는 경우도 허다하다.
게임이나 애니메이션 등 신생학과의 경우 정원 160명에 전임교수는 고작 2∼3명만 보유한 경우도 있다. 실제 경기도 C전문대학 게임과는 정원이 160명에 달하지만 전임교수는 겨우 3명이다. 그것도 올초 1명을 충원하지 않았다면 교수 1명이 80명의 학생을 감당해야 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IT학과 교수들은 강의 말고는 다른 건 생각조차 못한다. 전문대협의회의 2000년 계열별 교수 1인당 연구실적 보고서는 이같은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다. IT계열 교수 1인당 연구실적은 1.79편으로 해양(4.03편)·농업(1.96편)·체육(1.92편) 등 다른 계열보다 크게 밑돌고 있다. 급변하는 IT분야의 특성상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한데 현실은 정반대로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대개 IT학과는 산업현장의 인력을 겸임교수로 채용, 실습과목을 맡긴다. 하지만 겸임교수들은 회사일과 함께 강의를 준비하다 보니 강의에 다소 소홀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갑자기 중요한 업무가 생겨 휴강하는 경우도 잦다.
주먹구구식 커리큘럼과 짧은 수업연한도 교육 부실의 주원인이다.
IT학과는 보다 전문적이고 집중적인 교육이 필요하지만 4년제 대학과 비슷한 백화점식 교육이 그대로 진행되고 있다. 실례로 소프트웨어과의 경우 △알고리듬 △프로그램 언어 △운용체계 △ERP △C++ 개발툴 △자바 툴 등 무려 30여개에 달하는 전문과목을 2년 동안 소화한다. 보통 학원에서 6개월 정도 집중적으로 배워야 하는 과목을 그야말로 ‘맛보기’만 하는 셈이다.
과는 달라도 배우는 것이 거의 비슷비슷한 것도 문제다. 정보통신과·전자정보과·전산과·멀티미디어과 등 각각 명칭은 달라도 소프트웨어과와 거의 똑같은 강의를 배운다. 적은 교수인력에 학과수만 늘리다 보니 학과별 특성이 전혀 살려지지 않고 있다.
이같은 부실을 부추긴 데는 정부의 무신경한 정책도 한몫하고 있다. IT학과 장비지원사업 등 IT학과 개설을 장려하는 정책을 대대적으로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재정이 빈약한 사립대학들은 쥐꼬리만한 지원금이라도 얻기 위해 기준 이하의 IT학과를 양산하고 있다. 심지어 ‘비서과’를 ‘여성정보행정과’로 개명, 지원금을 확보하려는 대학까지 생겨날 정도다. 학생수만 늘리는 이런 현상은 가뜩이나 열악한 교육환경을 갈수록 하향 평준화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
이런 총체적 부실은 비단 대학에서 끝나지 않는다. IT학과 출신 90% 이상이 취업 관문을 뚫지만 불과 1년도 안돼 첫 직장을 그만두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이 가운데는 상당수가 부실한 교육으로 산업현장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최근 전문대 출신도 경력자 위주로 채용하는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다.
인하공업전문대학 컴퓨터정보과 양룡 교수는 “우리나라 전문대 IT학과가 부실해진 것은 근본적으로 전문대의 92% 이상이 사립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며 “교수나 급변하는 실습환경을 제공하지 못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열악한 사립학교 재정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일본이나 미국의 경우 전문 기술인력 양성을 위해 국가차원에서 IT관련 전문대를 운영 중인 데 반해 유독 우리나라만 전문대 교육을 사교육에 의존하고 있다”며 “IT학과 지원사업 등 정부의 지원책도 내막을 들여다 보면 예산의 70% 이상이 4년제 대학에 집중되는 등 전문대 지원은 생색내기용에 그치고 있다”고 꼬집었다.
<장지영기자 jyaj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