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근의 정보통신 문화산책>(57)대서양 횡단 해저전선(상)

‘하느님이 만드신 것’

 전신기를 개발한 모스(Morse, Samuel Finley Breese)가 1844년 5월 워싱턴∼볼티모어간의 시험선로를 통해 그의 친구에게 송신한 내용이다. 그만큼 전기를 이용한 최초의 통신방식인 전신기는 신기하게 여겨졌고 세상의 관심을 끌었다.

 전신기가 보편적으로 이용되면서 미국과 영국 사람들은 대서양을 연결해 소식을 주고 받을 수 있기를 기대했다. 말 그대로 꿈 같은 기대였다. 1858년 8월 드디어 그 꿈이 실현되게 됐다. 대서양을 건너질러 영국과 미국간의 해저전선이 가설됐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대서양을 건너 동일한 시간에 마음을 같이 할 수 있는 또 다른 길이 열리게 됐다는 소식에 런던 시민들은 흥분의 환호성을 울렸고, 전신선의 다른 한 끝인 미국의 뉴욕에서도 도시 전체가 흥분의 도가니 속으로 빠져들었다. 곧바로 가게들은 문을 닫아걸었고 거리에는 사람들이 넘쳐흘렀다. 해저전선 가설을 성공시킨 사이러스 필드는 ‘젊은 미국과 구대륙의 결혼’을 성사시킨 위인으로 하룻밤 사이에 국민적 영웅이 됐다.

 그러나 열광이 최고조에 도달한 것은 아니었다. 그때까지 해저전선을 통해 소식이 전해지지는 않고 있었다. 도시 전체가, 나라 전체가 대서양을 건너오는 최초의 말 한마디를 진지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 첫마디는 영국 여왕이 미국의 모든 사람에게 축하 메시지를 전해주는 것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사람들은 초조하게 그 메시지를 기다렸지만 여러 날이 흐르도록 메시지는 전해지지 않았다. 우연한 사고에 의해 뉴펀들랜드로 가는 케이블이 장애를 일으켰기 때문이었다. 1858년 8월 16일. 비로소 빅토리아 여왕의 메시지가 저녁시간에 뉴욕에 도착했다. 여왕의 축하 메시지가 신문에 실리기에는 늦은 시간이었지만 곧장 소문이 퍼져나갔다. 엄청나게 많은 인파가 전신국과 신문사로 몰려들었다. 극장과 레스토랑에도 그 소식이 전해졌다. 전보가 가장 빠른 배보다도 며칠이나 더 빨리 올 수 있다는 사실을 미처 이해하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이 브루클린 항구로 몰려들었다. 이 쾌거를 이룩한 영웅적인 배 ‘나이애가라’호를 맞아들이기 위해서였다.

 다음날인 8월 17일 신문들은 주먹만큼이나 큰 제목으로 환호를 표현했다. ‘케이블, 완벽하게 작동하다’ ‘기쁨에 넘친 시민들’ ‘세계적인 축제의 시간’ 포병부대는 미합중국 대통령이 영국 여왕에게 답신을 보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백발의 축포를 쏘아올렸다. 이제는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뉴욕과 수많은 다른 도시들은 밤늦도록 수만개의 등불과 횃불로 번쩍거렸다. 창문마다 불이 밝혀졌고 그러는 중에 발생한 시청의 둥근 천장 화재사건도 그 기쁨을 손상시키지 못했다.

 이어 다음날 위대한 영웅 필드가 ‘나이애가라’호와 함께 돌아왔다. 승리감에 도취된 채로 남은 케이블을 싣고 승무원들과 시가행진을 했다. 필드에 대한 시민의 환영은 광기에 가까운 것이었고 도시 전체가 그 광기로 뒤덮여 버릴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로 그 어떤 일도 인간의 활동영역을 이토록 획기적으로 확대시킨 것은 없었다.’

 보수적인 영국의 ‘타임스’도 사설을 통해 유럽과 미국을 잇는 해저 전신선의 성공을 알렸지만 아직 본격적인 행사는 시작되지 않았고 준비중에 있었다. 필드의 성공을 위한 개선행진은 신대륙이 이제껏 본 것 중에서 가장 대단한 것으로 2주일이 걸려 준비되고 있었다.

 8월 31일, 도시 전체는 필드를 축하하기 위해 부산했다. 날씨도 좋았다. 도시의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축하행렬이 행진하는 데 여섯 시간이나 걸렸다. 국기가 펄럭이는 거리를 연대들이 깃발을 앞세워 지나갔고 그 뒤로 합창대, 노래패, 소방대, 학생, 퇴역군인 등이 끝없이 열을 지으며 따랐다. 행진할 수 있는 자는 모두 행진했고 노래할 수 있는 자는 모두 노래했다. 마차에는 필드가 타고 있었고 ‘나이애가라’호의 선장이 타고 있었다. 또 다른 마차에는 미합중국 대통령이 타고 있었다. 횃불행진이 이어졌고 교회의 종소리가 울렸으며 축포도 터졌다. 두 세계를 하나로 합친 인물, 공간을 정복한 승리자. 그 순간 미국에서 가장 유명하고 가장 신격화된 사람은 사이러스 필드였다.

 수백, 수천만의 음성이 이날 소리치고 환호성을 울렸다. 그런데 단 하나의 가장 중요한 장치가 이 축하행사 동안 이상할 정도로 침묵하고 있었다. 다름 아닌 대서양 바다 밑에 늘어져 있는 해저전신선의 양쪽 끝에 연결돼있는 전신기였다.

 그 전신기는 이미 며칠 전부터 신호들이 점점 더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축하행사 직전에는 거의 읽을 수 없는 신호들만을 보내왔다. 마침내 직직 끓는 소리를 내다가 최후의 숨을 거두었다. 이러한 실패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은 아직 뉴펀들랜드의 전보 수신을 관리하는 몇 사람들뿐이었다. 그들은 주체할 길 없이 열광하고 환호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차마 이 고통스러운 소식을 전하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었다. 어쩌면 필드는 환호성 속에서 이 끔찍한 사실을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좀 더 나은 송수신을 위해 지나치게 강한 전기량을 내보내는 바람에 가뜩이나 용량이 부족하던 케이블이 완전히 망가져 버렸다는 내용이었다. 사람들은 그 고장이 곧 고쳐질 거라고 낙관했다. 그러나 신호가 점점 더 불확실해지면서 수리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더 이상은 감출 수 없었다. 축제 다음날인 9월 1일. 대서양을 건너서 오는 분명한 음이나 순수한 진동은 더 이상 들을 수 없었다.

 해저전선과 전신기가 실패작이라는 소문이 사실로 밝혀지자 환호의 파도는 이내 악의에 가득 찬 분노로 바뀌어 필드를 향했다. 그는 한 도시를, 한 나라를, 세계 전체를 속인 꼴이 되었다. 도시 사람들은 그가 전신기의 실패를 오래 전에 이미 알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도 그는 이기심에 사로잡혀 사람들이 환호하도록 내버려두고 그 사이에 자기가 가진 주식을 엄청난 이익을 남기고 처분했다고 힐책했다.

 더 나쁜 중상모략도 있었다. 그 중에서 가장 특별한 것은 대서양 전보는 아예 한 번도 기능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모든 메시지는 기만이고 사기이며, 영국 여왕의 메시지는 미리 만들어진 것으로 한 번도 해저케이블을 통해 전달된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단 하나의 소식도 실제 이해할 만한 형태로 대서양을 건너간 적이 없으며, 다만 관리자들이 추측과 잘려진 신호들을 맞추어 상상의 전보를 조합했다는 것이다.

 바로 어제 가장 시끄럽게 축하하던 패거리들이 가장 심하게 분노했다. 한 도시와 한 나라 전체가 지나치게 들떠 너무 성급한 환호성을 지른 것을 부끄럽게 여겼다. 당연히 필드는 이 분노의 희생자가 됐다. 어제만 해도 국민의 영웅이자 진정한 용사로 불렸던 필드는 이전의 친구들과 숭배자들 앞에서 범죄자로 남게 됐다. 단 하루가 모든 것을 만들어냈고 단 하루가 모든 것을 파괴했다.

 이러한 패배를 예측한 것은 아니었다. 필드는 모든 자본을 잃어버렸고, 신용은 깡그리 사라졌으며, 아무런 신호도 주고받을 수 없는 쓸모없게 된 케이블은 대서양 깊숙한 곳에서 아무 말 없이 누워있었다. 하지만 필드의 ‘우연과 광기의 역사’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작가/한국통신문화재단(KT과학관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