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 공기업 민영화의 후폭풍이 네트워크 장비 등 통신업계를 강타하고 있다.
KT와 파워콤의 민영화를 앞두고 통신사업자들이 자금확보에 몰두하면서 신규 투자가 대폭 축소되고 있으며 관련업계가 그 파편을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 특히 국내 통신투자를 주도하는 KT마저 자금확보 경쟁에 끼어들어 설비투자가 우선순위에서 밀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KT 경영진이 현 공기업의 임무는 제쳐두고 미래 민영기업의 이익을 위해 봉사한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비난의 화살은 궁극적으로 이러한 문제에 대책을 전혀 마련하지 못하고 쫓기듯 민영화에 몰두한 정부를 향하고 있다.
◇투자는 뒷전=양대 기간통신사업자인 KT와 SK텔레콤이 올해 계획한 시설투자 규모는 각각 3조100억원과 1조5000억원이다. 전체 통신투자의 절반 수준이다.
KT는 투자규모를 상반기와 하반기 각각 50%씩 배정했으며 예정대로 투자를 진행중이라고 밝혔다. 그렇지만 올들어 KT의 투자는 노후장비의 교체 등 꼭 필요한 투자에 집중되고 있으며 신규 투자는 거의 없다시피하다. KT가 민영화 이후에 투자계획을 재조정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SK텔레콤 역시 투자여력이 없어졌다. KT 지분매입에 거의 2조원을 쏟아부으면서 신규 투자를 대거 축소하거나 연기해야 하는 입장이다.
파워콤 입찰을 위해 자금확보에 집중하는 데이콤과 하나로통신도 마땅한 신규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있다.
◇뒷짐진 정부=이처럼 통신투자 분위기가 냉각됐는데도 정보통신부는 수수방관하고 있다. 올들어 투자가 얼마나 진행됐는지에 대해서도 파악조차 하지 않고 있다.
두달전 업무보고를 통해 통신분야 투자규모를 8조6000억원에서 10조원으로 늘리도록 하고 경기활성화를 위해 되도록 상반기에 집행하도록 유도하겠다는 양승택 장관의 말을 무색케 한다.
사실 당시에 통신업계는 양 장관의 보고 내용을 반신반의했다. 대부분 유무선 통신사업자들이 올해 투자계획을 지난해에 비해 줄인 마당에 어떻게 투자를 늘릴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다. 그래도 정부의 의지를 믿고 설비투자가 활성화하기를 기대했다.
현재로선 이러한 기대가 물거품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비상걸린 장비업계=신규투자가 감소하자 장비업체들의 위기감도 날로 고조되고 있다. 치열한 시장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꾸준히 신제품을 내놓아도 사려는 데가 없다.
상반기 장비시장에 핫이슈로 꼽힌 MSPP(Multi Service Provisional Platform)도 2분기 중반인 지금까지 구체적인 프로젝트가 발표되지 않고 있다. KT는 이 장비를 하반기에나 시범 서비스용으로 구매할 계획이고 데이콤, 두루넷 등은 아예 도입일정조차 확정짓지 못하고 있다.
광전송장비 분야도 노후장비의 교체 외에는 별다른 수요가 일어나지 않고 있다.
한 외산 장비업체의 관계자는 “전체적으로 통신사업자들의 장비구매가 축소되거나 지연되다 보니 시장 전망이 그리 밝지 않다”며 “고부가가치 솔루션 개발, 원가절감 등 장비업체 차원에서의 자구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대책은 없나=현실적으로 투자가 전적으로 민간기업에서 이뤄지는 만큼 정부가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설비투자 규모가 가장 큰 KT의 경우 아직은 공기업이어서 정부의 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 문제는 민영화 일정으로 시간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KT와 파워콤의 민영화를 추진하는 정부가 설비투자 문제를 사전에 깊이 있게 고민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면서 “정부가 이왕 시작한 민영화를 서둘러 마무리해 투자 분위기를 조성하는 게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신화수기자 hsshin@etnews.co.kr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