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관우에게 ‘늪’이나 ‘영원’ 같은 신곡 히트작도 있지만 그는 동시에 ‘리메이크 잘하는 가수’로도 대중의 뇌리에 박혀 있다. 일례로 지난해 MBC 드라마 ‘그 여자네 집’의 마지막 장면에 깔려 호응을 얻었던 ‘진정 난 몰랐네’도 70년대 여가수 임희숙의 노래를 그만의 ‘간드러진’ 터치로 풀이한 것이었다.
95년 그의 2집이 200만장의 판매선풍을 일으켰던 것도 대부분 옛노래를 다시 부른 리메이크라서 일반인의 복고감성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그 앨범에서는 정훈희 오리지널 ‘꽃밭에서’, 김추자 원곡인 ‘님은 먼 곳에’ 등이 히트했다. 그는 음색도 워낙 잘 다져진 데다 여성의 음역도 불사하는 고음의 가성을 구사한다. 그것을 바탕으로 ‘성과 장르’의 경계를 무너뜨려 남자가수면서 유독 여자가수의 노래를 많이 불렀고 트로트·발라드·포크·록 등 장르 또한 가리지 않았다.
조관우가 7년 만에 다시 리메이크라는 비장의 무기를 꺼내든 앨범으로 가요계에 돌아왔다. 스스로도 신보를 ‘뒤늦게 내놓는 2집의 속편’이라고 설명한다. 그 앨범과 같은 성공을 재현하려는 의욕이 잔뜩 배어 있다.
과연 신작은 어떤 곡을 불렀을까 궁금하다. 스타일은 별 달라진 게 없지만 이번은 성과 장르만 가로지른 게 아니라 시대를 넘나들기에도 도전했다. 선곡에 있어서 특정 시점의 노래를 피해 70년대에서 90년대까지 대상을 널리 포진시킨 것이다. 윤연선 오리지널 ‘얼굴’은 71년, 최진희의 ‘우린 너무 쉽게 헤어졌어요’는 84년, 최연제가 불렀던 ‘너의 마음을 내게 준다면’은 93년을 장식한 곡들이다. 여전히 여자가수 노래들이 많다.
트로트나 솔은 물론이고 송창식의 ‘비의 나그네’와 조덕배의 ‘나의 옛날 이야기’와 같은 포크, 패티김의 ‘못 잊어’와 윤연선의 ‘얼굴’ 등 가곡 풍의 노래도 소화해 장르 깨기를 더욱 본격화했다. ‘얼굴’과 77년 대학가요제에서 서울대트리오가 부른 ‘젊은 연인들’은 선곡 감각이 돋보인다. 익히 알려진 곡들이지만 독특한 가공법 덕분에 맛이 달라졌다.
하지만 신작의 진정한 성과는 톤의 조절에 성공했다는 점이다. 조관우처럼 높은 음에 가성을 구사하는 가수의 경우 곡조와 잘 맞아떨어지면 고감도 청취의 충격을 제공하지만 소리가 과할 경우에는 듣는 사람에게 부담을 줄 수도 있다. 아주 미묘하고 작은 지점에서 그 느낌이 갈리는데 솔직히 근래 노래 중에는 후자쪽이 더러 있다.
이번 ‘젊은 연인들’ ‘너의 마음을 내게 준다면’ ‘우린 너무 쉽게 헤어졌어요’, 그리고 ‘진정 난 몰랐네’는 팬들이 좋아 할 적정선을 찾은 노래들이다. ‘듣기 편한 노래들’이라는 조관우의 트레이드마크로 손색이 없다. 극심한 음반불황과 월드컵 판을 피하지 않고 대담하게 승부수를 띄운 조관우에게 대중이 어떤 심판을 내릴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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