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부 중국 현지업체가 국내 주요 전자업체의 주력상품 디자인은 물론 상표까지 도용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이 때문에 1년 이상의 연구를 통해 개발한 국산 유망상품이 중국 현지업체의 모방제품으로 인해 차별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심지어 제값받기도 차질을 빚을 것이란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22일 LG전자·삼성전자 등 주요 가전업체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이래 최근까지 중국업체들이 한국산 냉장고, 에어컨, 세탁기, 전자레인지 등의 신제품 디자인을 고스란히 베낀 신상품을 잇따라 출시하거나 선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중국에서 최고 인기를 얻고 있는 삼성전자의 이동전화단말기용 배터리팩은 삼성전자의 회사로고를 단 모조품이 버젓이 유통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LG전자는 중국 최대 가전업체인 하이얼이 지난 2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전시회에 출품한 제품이 자사의 디오스냉장고 디자인을 100% 모방한 것으로 판단하고 하이얼이 이 모델을 양산할 경우 법적대응에 나서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도 지난해말 광저우에서 자사 로고와 디자인을 도용한 이동전화단말기용 배터리팩 모방품의 유통사실을 확인하고 중국에 진출한 단속전문회사인 팅크폰을 통해 단속을 요청해놓고 있다. 이 회사 특허담당 김용욱 차장은 “모조품 배터리가 유통되면서 중국에서 세계 최고의 명품으로 인기가 높은 삼성전자 이동전화단말기의 이미지 실추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손진방 LG전자 톈진법인 부사장은 중국지역법인의 회의 결과를 종합, 본사에 보낸 전문에서 “중국내에서 LG의 에어컨, 냉장고, 세탁기 등의 디자인 모방제품이 너무 많아 대책마련이 시급하다”고 호소했다.
이와 함께 중국업체들이 국내제품의 디자인을 모방해 제작한 제품이 소형가전을 중심으로 국내 유통가에도 소리소문없이 나돌고 있어 우려감을 더해주고 있다.
정국현 삼성전자 디자인경영센터 소장은 “지난해말 국내 S백화점에서 경품으로 삼성의 디자인을 베낀 LCD 전화기를 제공한다는 광고안을 확인, 즉각 수거조치했지만 디자인을 모방한 원 공급자를 찾지 못했다”며 “이같은 사례가 발생할 가능성이 최근 더욱 높아졌다”고 말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특히 한국업체들이 최근 선진국과 제품 디자인 갭을 크게 줄이는 등 급속한 디자인 수준 향상을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에 일부 중국업체들의 디자인 베끼기가 백색가전에 이어 디지털TV 등 고가 정보가전으로까지 확대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보고 있다.
김철호 LG전자 디자인연구소장은 “일본 소니 디자인 관계자도 중국 현지업체들과의 협력관계, 진출확대 등을 고려할 때 이같은 행위에 법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실토할 정도”라면서 “한국도 뚜렷한 현실적 대응책이 없다”고 말했다.
정부 역시 피해사례 파악은 물론 뚜렷한 대책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김동수 산자부 디자인과장은 “아직 구체적 사례가 조사되지 않았다”며 “관계당국과 함께 국내 의장권을 침해하는 기업에 대한 수입을 제한하는 방안 등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구기자 jk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