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로봇에게 운동경기를 시킨다는 생각을 누가 해냈을까.
스포츠란 땀냄새를 풍기는 선수들이 온 몸으로 펼치는 각본 없는 드라마, 희로애락이 겹치는 인생의 축소판이다. 사람들이 운동경기에 열광하는 이유는 치열한 승부를 통해 승자와 패자가 교차하는 모습에서 보편적인 삶의 모습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모터로 움직이는 로봇 따위가 운동선수 흉내를 내다니 가당키나 한 발상인가. 게다가 로봇월드컵이란 근사한 명칭(비공식적)으로 불리며 세계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을 끌고 있다.
지난 23일부터 시작된 세계로봇축구대회는 월드컵을 맞아 한국의 로봇기술을 세계인에게 과시하는 행사로 다양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가장 중요한 성과는 주요 언론매체가 로봇축구를 스포츠행사의 일종으로 간주했다는 점이다. 월드컵을 앞두고 들뜬 사회분위기 탓이라 해도 일개 로봇게임이 스포츠로 인정받은 사실은 로봇산업에 중요한 의미를 준다.
실제 로봇축구를 보면 작은 로봇들이 전속력으로 부딪히며 골을 넣는 진행방식이 꽤 박진감 넘치고 재미있다. 경기장 주변에선 연신 탄성이 흘러나오고 참가국별로 경쟁의식도 뜨겁다. 어느 새 관중은 축구로봇을 단순한 오락거리가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투영하는 플레이어(선수)로 바라보게 된 것이다. 더구나 이웃 일본에선 한국식 로봇축구의 라이벌대회격인 로보컵이 매년 성황을 이루고 있다. 경기 자체의 재미와 민족적 대결구도까지, 스타선수만 제외한다면 로봇축구도 인기스포츠로서 흥행요소를 거의 갖춘 셈이다.
정말 신기한 점은 로봇산업의 뿌리가 약한 한국이 축구로봇만큼은 일본이라는 로봇강국과 대등한 국제적 위상을 유지해왔다는 사실이다. 이는 운동경기 그것도 축구만큼은 일본에 질 수 없다는 한국기술자들의 오기와 대일 경쟁의식이 빚어낸 놀라운 성과다.
그러나 한국로봇축구가 일본과 경쟁구도 속에서 성장하다 보니 부작용도 일부 눈에 띈다.
우선 로봇축구대회 전반에서 민족주의 성향이 너무 두드러진다. 한국이 축구로봇 종주국임을 지나치게 강조하거나 외국손님 불러다 놓고서 세계대회 석권을 자랑하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한국인이 규격을 만들고 발전시킨 게임리그에서 한국팀이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할 이유가 있을까.
이젠 축구로봇 종주국이란 타이틀에 안주하기보다 한국의 로봇기술을 한단계 업그레이드시킨 원동력인 일본 로봇경기대회와 경쟁구도를 건설적으로 재정립할 시기다. 우리가 자신있는 한국식 로봇축구와 함께 이족보행 로봇마라톤이나 로봇등반대회, 로봇인명구조 등 다양한 스포츠 로봇경기를 한일공동으로 개최하는 것이 어떨까. 일본전에 유독 강한 한국축구의 특성을 감안할 때 우리나라 로봇기술을 단기간내에 향상시키는데 가장 효과적인 방안이라 생각된다.
로봇축구에서도 공은 둥근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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