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멸이 아닌 공생으로.’
한국네트워크연구조합이 추진하고 있는 ‘네트워크 기술경쟁력 강화 대책위원회(가칭)’는 지난 수년간 국내 네트워크장비 시장의 고질병으로 지적되던 저가 입찰, 기술정보 독점 등의 폐해를 고치기 위해 업체들이 힘을 모으는 자리라는 점에서 기대효과가 크다.
그동안 국내 장비업체들은 제품성능보다 공급가격을 우선시하는 최저가 입찰제도에 의한 출혈경쟁, 대형 외산 장비업체들의 대대적인 공세로 인한 입지축소, 업체간 기술·시장 정보공유 외면에 따른 국가 기술경쟁력 악화 등으로 골병을 앓아왔다.
특히 올들어 침체된 네트워크장비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되던 VDSL 및 무선LAN 같은 신기술 장비마저도 도입 초기부터 공급가격이 원가 수준으로 급속히 떨어지면서 업체들이 느끼는 위기감은 날로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이대로 가다가는 3년내에 국내 장비업계가 공멸할 것이라는 ‘위기설’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장비업체들이 함께 모여 위기탈출 방안을 논의할 수 있는 이번 협의체 구성은 다소 때늦은 감이 있을 정도로 시급했던 사안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반응이다.
이번 협의체에 참여할 예정인 콤텍시스템의 우경일 기술연구소장은 “현재 국내 네트워크장비 업계는 예상보다 심각한 수준의 위기에 빠져있다”며 “기술력을 앞세운 미국계 대형 외산업체는 물론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시장을 확대해나가고 있는 대만, 중국산 업체들과도 경쟁해야 하는 국내 업체로서는 자구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이번 협의체를 통해 본격적으로 논의될 부분은 수익성 개선을 위한 저가 경쟁 지양, 가격경쟁력 확보를 위한 부품 공동구매, 기술경쟁력 강화를 위한 공동개발, 국산업체 활성화를 위한 정부차원의 대책마련 등이다.
특히 장비성능시험(BMT)의 성적은 무시한 채 가장 낮은 가격을 제시한 업체에 공급권이 부여되는 현 최저가 입찰제도를 BMT 성적과 가격 부분을 합산해 평가하는 혼합평가제도로 전환할 것을 요구하는 업체들의 목소리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
또 갈수록 원가절감의 필요성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부품 공동구매에 대한 논의도 본격적으로 전개될 전망이다. 그간 국내 업체는 부품 공동구매를 위한 업체간 협력이 미비해 부품을 공동으로 대량 구매하는 대만업체들에 비해 번번이 가격경쟁력에서 뒤진 게 사실이다. 실제로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무선LAN 시장에서도 각종 부품을 대량 구매해 원가를 낮춘 대만산 제품의 유입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소규모 벤처기업의 기술개발 협력을 통한 기술경쟁력 강화도 이번 협의체의 주요 논의 대상이다. 개발인력 부족으로 해당 장비 개발에 필요한 전체적인 기술확보에 힘들어하는 업체끼리 손을 잡는다면 단순한 내수용 제품이 아닌 세계 시장에 내놔도 손색없는 ‘명품’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밖에 협의체가 단일화된 창구를 통해 업계의 목소리를 모은다면 최근 일부 통신사업자들이 장비를 구매하면서 외산 장비만이 수용할 수 있는 규격을 공시해 국산 업체를 역차별하는 관행을 없애는 데도 일조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일부에서는 과거 이러한 문제점에 대해 여러차례 개선 노력이 있었지만 번번이 업체간 이기주의로 인해 무산됐던 점을 들어 이번 협의체만은 공염불이 되지 않도록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내놓고 있다.
인티의 이종일 사장은 “이번 협의체 구성을 통해 당장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기를 기대하기는 힘들다”고 지적하고 “해당 업체끼리 머리를 맞대고 다양한 아이디어를 도출해내려는 노력이 선행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