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스포츠] 여자스타크래프트 대회

 박진감! 그것은 남자 경기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가뭄에 콩 나듯 오랜만에 여자 게이머들을 볼 수 있는 대회가 열렸고 여자 게임머들은 공격적인 전법으로 무장해 팬들에게 다시 나타났다.

 지난 3월부터 시작된 ‘겜TV 스타리그 여자부’ 리그를 준비한 이학평 PD는 스타리그 여자부 경기를 프로그램에 편성한 것은 ‘모험 또는 모범’이었다고 말한다.

 “작년 한국인터넷게임리그를 비롯 각종 대회들이 줄줄이 취소되면서 여자 게이머들이 설 땅이 점점 척박해졌어요. 특히 여자 게이머들의 수동적 전략 구사는 관전 수준을 따라오지 못해 방송사들도 기피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계속 외면한다면 여자 게이머들은 사라질 것 아닙니까.”

 프로그램 기획 당시 태산처럼 높았던 제작진들의 걱정이 기우로 판명난 것은 여성 프로게이머의 실력을 보고 난 뒤였다. 1∼2년전 선방어 후공격의 수동적인 공격 형태는 사라지고 과감한 베팅과 화려한 전술, 반격과 역습을 오가는 치열한 지략전이 선보였기 때문이다.

 ‘더 이상 방어는 없다. 공격만이 살 길이다.’

 경기에 임하는 여자 프로게이머들의 각오를 제작진은 그렇게 읽었다. 

 이번 ‘겜TV 스타리그 여자부’에는 이미 그 이름을 드날렸던 강호 김가을 선수(삼성전자 칸)를 비롯 박승인(IS프로팀), 이혜영(GO팀), 이은경(삼성전자 칸), 김경진(GO팀), 김영미(GO팀), 서순애(무소속), 서지수(소울팀) 등이 8강에 진출해 저마다의 숨은 기량을 펼쳤다. 특히, 경험 부족으로 4강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테란의 신데렐라’로 불릴 만큼 대성의 가능성을 보여준 신예 서지수 선수의 발견은 이번 대회의 성과 중 하나로 꼽혔다.

 그러나 무엇보다 김가을 선수의 독주는 보는 이의 혀를 내두르게 했다. 김가을 선수는 단 한 경기도 지지 않고 전경기 연승의 성적으로 결승에 진출했다. ‘역시 가을이 형이다’라는 말이 절로 튀어 나올 정도다. 그는 남녀를 불문하고 프로게이머들 사이에 ‘가을이 형’이라고 불린다. 그녀가 이번 리그에서 휘두른 전술은 모두 ‘모 아니면 도’의 리스크가 큰 전법들이었다.

 좋은 경기를 펼친 뒤에는 팬들의 입담이 끊이지 않는 법. 제작진은 여자 경기가 끝나고 게시판에 이렇게 많은 글들이 올라 온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물론 여자 경기에서만 볼 수 있는 특유의 긴장감이 이번 리그전에도 없을 리가 없었다. 보통 남자 선수들은 경기 전에는 가벼운 농담을, 경기 후에는 어깨를 툭 치는 격려가 있다.

 “여자 선수들은 절대 질 수 없다는 승부욕과 긴장감 때문에 경기 전에 인사조차 못나눠요. 게다가 경기가 끝나면 조명을 끄기가 두려워질 때가 있어요. 어디선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거든요. 아깝게 져 분을 삭이는 모습인데 괜히 옆에 있으면 미안해진다니까요.”

 이 PD가 이번 리그전에서 여자 게이머들의 공격적인 경기 스타일에 놀랐다고 흥분하면서도 빠뜨리지 않는 대목이다.

 김가을 선수가 일찌감치 결승전 상대를 기다릴 무렵 이은경, 이혜영, 김영미 세 선수가 1승 2패 동률을 기록해 4강 진출을 위한 치열한 재경기를 펼쳤다. 재경기를 통해 극적으로 4강에 진출한 이혜영 선수가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박승인 선수를 꺾고 결승전에 진출한 것은 이번 리그의 최대 이변으로 꼽힌다.

 “결승에서 이길 자신이요? 약간의 ‘거만 모드’를 추가해 자신감있게 경기에 임하려구요”라며 집념을 보인 이혜영 선수와 경기 결과 예측을 애써 피하면서도 “우승상금은 2학기 등록금으로 사용될 것 같네요”라며 자신감의 내비친 김가을 선수의 결승전, 게임 진행을 맡은 전용준 캐스터도 쉽사리 경기결과를 예측하지 못했다.

 승자의 미소는 결국 김가을 선수가 차지했다. 김가을 선수는 이번 리그 첫 패를 기록했지만 3대1로 이혜영 선수의 가파른 상승세를 꺾었다.

 이 PD는 “경기 결과도 결과지만 이번 리그의 내용과 의미에 크게 만족한다”며 ‘다음 학기’에도 여자부 리그전을 계속 편성할 뜻을 내비쳤다.

 선수들의 인터뷰와 결승전 경기는 스카이 겜TV를 통해 오늘(31일) 방송될 예정이다.

 <류현정기자 dreamshot@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