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의 영화는 한국영화에서 매우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것은 리얼리즘과 진정성이 한국영화의 대표적 미덕으로 여전히 효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장진 영화가 갖는 의외성 때문이다. 장진 영화는 엉뚱하고 천연덕스러우면서 따뜻하고 정감있다. 치기도 넘치지만 기발하고, 장난스럽지만 그 나름의 진정성도 잃지 않는다. ‘기막힌 사내들’ ‘간첩 리철진’, 그리고 ‘킬러들의 수다’에서 장진은 자기만의 독특한 감각을 견지해왔다. 이른바 ‘장진식 유머감각’이다.
영화의 제목마저 이색적인 ‘묻지마 패밀리’는 장진의 영화인 동시에 장진의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의 감독은 장진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러나 장진이 대표로 있는 ‘필름있수다’가 제작하고 각본·각색·프로듀서로 장진이 들어가 있다는 점에서 이 모순된 말은 성립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장진사단 또는 ‘수다맨’으로 불릴 만한 장진 영화의 연기자들이 이 영화를 빼곡하게 채우면서 황당하고, 때론 썰렁하고, 때론 훈훈한 장진 영화의 분위기를 재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묻지마 패밀리’는 장진과 분리해서 생각하기 어렵다.
‘묻지마 패밀리’는 ‘내 나이키’ ‘사방에 적’ ‘교회누나’ 등 3개의 단편으로 구성된 옴니버스 영화다.
‘내 나이키(박광현 감독)’는 나이키를 갖는 것이 소원인 중학생과 그 가족의 이야기다. 이 영화는 소망 또는 욕망에 관한 것으로 그들은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자신의 소망을 이룬다. 예컨대 돈 때문에 나이키를 가질 수 없는 우리의 주인공은 물에 지워지지 않는 물감으로 나이키 상표를 본떠 신발은 물론 식구들의 티셔츠에까지 나이키 로고를 새긴다. 1등이 소원이던 공부벌레 장남은 엄청난 노력에도 불구하고 따라주지 않는 머리에 대한 좌절감을 운전면허 필기시험 1등으로 상쇄한다. 죽는 것이 소원이던 할머니가 소원을 이루는 것도 물론이다.
‘교회누나(이현종 감독)’는 교회누나를 연모하던 청년이 누나의 결혼으로 실망해 군에 입대한 뒤 휴가나와 누나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위의 두 작품에서 ‘장진식 유머’의 신랄함은 찾기 어렵지만 우연의 개입과 엉뚱하고 황당한 사건과 조우하면서 빚어지는 허무개그와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각이 공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장진 영화와 흡사하다.
‘사방에 적’은 장진의 ‘기막힌 사내들’이 총출동한 듯한 영화. 한 호텔에 투숙한 다양한 군상들이 서로 얽혀가는 과정을 빠른 템포감으로 몰아가는 이 영화는 탄탄한 구성으로 시선을 끈다.
그러나 각 편의 배우들이 다시 역할을 달리해 계속 등장하고 급기야 라스트에 집단으로 등장하는 것은 농담치고는 좀 심했다. 그 순간 영화가 갑자기 과다한 퍼포먼스로 보였다.
<영화평론가, 수원대 교수 chohyej@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