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과학의 폭탄/폴 비릴리오 지음/배영달 옮김/울력 발행
‘방사능 에너지로 물질을 파괴하는 최초의 폭탄-핵폭탄이 나온 이후로 이 밀레니엄의 끝에 두번째 폭탄의 유령이 다가온다. 그것은 바로 정보의 상호 작용을 이용해 국가간의 평화를 파괴시킬 수 있는 정보과학의 폭탄이다.’
출판사 울력이 발행한 정보과학의 폭탄은 어지러울 정도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정보시대에서 정보과학은 사회발전의 가장 강력한 도구이자 동시에 사회를 가장 황폐하게 만들 수 있는 폭탄이라고 규정한다.
사이버 세계의 탁월한 비평가인 저자 폴 비릴리오는 이 책에서 테크노 과학과 사이버 전쟁의 지배, 정보과학이 우리의 일상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보여준다.
일련의 경제공황들, 되풀이되는 핵실험, 정치적, 사회적 해체, 바벨탑의 비극을 되풀이 하는 듯한 세계의 불안스러운 징조들…. 폴 비릴리오의 눈에는 대재난의 연쇄작용을 야기할 수 있는 상호작용 체계가 사이버 폭탄을 무기로 하는 정보전쟁으로 비춰진다.
영국의 역사가 홈스봄은 20세기를 극단의 시대라고 말했다. 인류가 거쳐온 20세기를 돌이켜보면 그 뜻이 이해된다. 비릴리오 역시 이 책에서 그 극단에 대해 언급한다. 더 엄밀하게 말하면 극단화된 과학, 극단화된 예술 등이다. 이제 과학은 더 이상 진리와 관련된 것이 아니다. 가령 안락사를 돕기 위해 개발된 컴퓨터 시스템, 인간을 복제하는 생명공학, 인간을 대체할 로봇 개발 등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과학기술이 아니다. 과학자는 윤리적 한계까지 나아가는 가운 입은 모험가, 즉 인류의 죽음에 승부를 거는 모험가가 되었다.
비릴리오는 또한 푸코가 폭로한 감금의 시대에 뒤이어 들뢰즈가 예고한 통제의 시대가 오고 있다고 경고한다. 프랑스에서는 감금자들이 전자 팔찌를 찬다. 그것은 언제든지 그들의 위치를 감지할 수 있는 자동 응답기다. 가까운 미래에 이러한 전자 팔찌는 사회의 일탈자들에게까지 확대될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 기업들은 휴대 전화에 열광한다. 왜인가. 회사는 필요하면 휴대 전화를 걸면 되고 달려오는 노동자는 손쉽게 통제되는 존재가 된다.
비릴리오의 비판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사람들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세계화에 대해 열광하고 있지만 이는 수송과 전달의 시간적 압축에서 생겨나는 극단적인 거리단축과 일반화된 원격 감시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그는 또 인터넷과 사이버라는 화두가 지난 세기 세계를 지배했던 미국의 입지를 더욱 강화하기 위한 노골적인 수단이며 새로운 식민지를 개척, 확대하는 지배자의 수법과 유사하다고 강조한다. 네트워크의 네트워크인 인터넷이 바로 미국의 군사 네트워크인 아르파넷에서 비롯된 것도 이를 방증한다. 인간의 소외 역시 정보과학의 폭탄이 가져오는 심각한 부작용이라고 지적한다.
정보과학의 폭탄은 이처럼 정보사회의 현실과 미래에 대한 냉철한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의 진면목은 정보과학의 폭탄이 단지 미래의 위험성을 예고하는 것 뿐만 아니라 인류가 그것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우리의 미래가 결정된다는 것을 심각하게 주지시키는 데 있다.
<조인혜기자 ihch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