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튤립 그 아름아움과 투기의 역사/마이크 대시 지음/정주연 옮김/지호출판사 펴냄
현대의 메가트렌드인 산업혁명, 인터넷혁명, 그리고 디지털혁명으로 인해 현대인은 더 빨리 이동할 수 있고, 더 많이 생산할 수 있고, 더 빨리 정보를 찾을 수 있고, 더 많은 정보와 사람을 접할 수 있음으로 말미암아 짧은 시간에 좀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현대 문명 추종론자들의 공통된 약속은 기술이 진보할수록 인류는 더 많은 여유를 찾고 더 윤택한 삶을 누리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축복받은 메가트렌드는 때로는 정보의 홍수 속에 넋을 잃게 만들고, 휴대폰 덕분에 잠시도 타인으로부터 단절된 시간을 갖기가 힘들다. 이런 때면 정말로 문명이 발전할수록 인류는 여유 있는 삶을 얻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돌이켜 보면 지난 반 년 동안 가장 여유 있었던 시간은 어느 봄 휴일, 아내와 돌이 막 지난 딸아이를 안고 모 놀이공원의 튤립축제에 가서 느꼈던 반나절의 시간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 튤립에는 재미있는 역사가 숨어 있다.
원래 튤립은 오스만 투르크인이 즐겼던 꽃이라고 한다. 이는 투르크인에게는 ‘신 앞에서의 겸손’이라는 의미로 사랑을 받았던 꽃인데 1562년 벨기에에 전파된 이 꽃을 식물학자 클루시우스가 재배에 성공했고 1593년 네덜란드에 처음으로 소개됐다. 그 이후 400여년의 세월 후 네덜란드는 ‘튤립의 나라’라는 별칭을 얻게 된다. 17세기 초 셀루시우스가 만들어낸 다양한 종의 튤립은 그 아름다움과 희귀함으로 인해 네덜란드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게 된다. 저축성과 도박성이 강한 국민성, 그리고 신흥 시민 부유층의 득세로 인해 튤립은 투자(또는 투기)의 대상이 되기 시작하고, 유동자금이 풍부했던 네덜란드에서 튤립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값이 올랐다. 처음 부유층에서 불붙기 시작한 마니아는 곧 중산층으로 옮겨가 네덜란드 전역이 튤립 마니아의 열병에 휩싸이게 되고 곧 아직 재배중인 튤립까지 사고 파는 ‘튤립선물시장’까지 탄생하게 됐다. 이런 열풍 속에 ‘셈퍼 오거스투스’라고 불린 튤립은 1623년에 1000길더(약 1만달러)에 처음 팔리기 시작, 1627년에는 5000길더까지 올랐다고 전해진다. 이 당시 네덜란드인의 연평균 수입은 150길더였다고 한다. 이런 튤립 마니아는 치솟는 가격의 불안감 때문에 1637년 한순간에 무너져 10분의 1 이하로 떨어지고 1739년께는 최고치의 200분의 1 이하로 떨어졌다. 이 사건이 유명한 ‘튤립마니아’다. 이런 사건을 보면 1, 2년 전 우리를 휩쓸고 갔던 인터넷 광풍을 떠올리며 ‘역사의 반복성’을 느끼게 한다. 아마도 인간의 탐욕이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기 때문이 아닐까. 인류의 행복을 위해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기술에 대한 ‘광신’과 끝없는 탐욕이 아니다. 더 빨리, 더 많이를 외치는 현대의 메가트렌드 속에서 진정 필요한 것은 튤립의 아름다움을 조용히 관조할 수 있는 여유가 그립다.
<연세대 김영용 교수 y2k@yonsei.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