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음악의 이클립스(eclipse)를 즐긴다.’
네트워크 전문업체인 한국쓰리콤의 이규용 이사(38)와 무선랜 전문업체인 아이피원의 박기준 연구원(30). 바쁜 하루를 마친 두 사람의 밤은 하나가 된다. 이들을 묶어내는 것은 직장인 전문밴드인 이클립스다. 우리말로 ‘일식’과 ‘월식’ 등을 일컫는 이 말은 이들의 생활을 한 눈에 보여준다. 낮에는 업무가 음악을 덮고, 밤에는 음악이 일을 어둠속으로 밀어버린다.
이클립스에는 현재 30여명의 ‘이중생활자들’이 회원으로 활동중이다. 20대에서 40대까지 20년을 넘나드는 이 모임에는 목요일을 제외하고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총 5개의 록그룹이 있다.
이규용 이사는 이클립스의 총무로 모든 궂은일을 도맡고 있다. 어려서부터 ‘아바’와 ‘스티브밀러밴드’의 골수팬이던 그는 대학 진학 후 로커의 꿈을 이루기 위해 교내 록밴드를 찾았다. 대학가요제에 심심치 않게 등장했던 국민대 록그룹 ‘마젠타’가 그가 첫 발을 내딘 꿈의 무대였다. 하지만 당시 리드기타를 맡으며 열정적인 무대 매너를 선보였던 그는 음악인의 길로 나선 들국화 선배들을 아쉬움으로 가슴에 묻고 IT업계로 발길을 돌렸다.
이클립스에서 보컬을 맡고 있는 박기준 연구원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록그룹을 결성해 문제아로서 경력을 쌓았다. 특히 고3 시절 음악활동을 심하게 반대하시던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몸져 누우신 뒤 가진 공연에서 어머니가 “아버지가 편찮으시지 않았으면 같이왔을 텐데…. 너 참 잘하는구나”라던 말에 눈시울을 붉히며 삶의 궤도를 수정한 그다.
토요일 오후 서초동의 한 지하실에 마련된 연습실. 이곳에서 그들은 다른 팀원들과 함께 넥타이를 풀고 음악에 대한 열정을 발산한다. 인디밴드인 크라잉넛의 헤드뱅잉도 그들 앞에선 맥을 못춘다.
지하 연습실이 땀으로 흠뻑 젖을 때쯤이면 그들은 봄·가을로 열리는 정기공연 준비에 들어간다. 지난 4월에는 인근에 수많은 IT업체들이 둥지를 틀고 있는 삼성동의 아셈광장에서 봄 정기공연을 가졌다.
“공연을 위해 장소섭외, 무대구성, 포스터 제작 등 모든 작업을 손수 진행하다보니 저예산을 지향하는 독립영화 제작자들이 울고 간다”며 익살스레 말하는 이규용 이사를 보면서 그들을 이끄는 음악의 마력을 상상하는 일도 즐거워진다.
그렇다고 공연이 여느 고교 축제의 그것처럼 허술하지는 않다. 연주실력은 물론 초대가수의 무대, 마술쇼, 퀴즈게임, 댄스경연 등이 꽤 짜임새 있다. 지난 봄 공연에 200여명이 함께해 나름대로 흥행에 성공했다는 박기준 연구원의 너스레가 이어진다.
요즘들어 신제품 출시 준비로 더욱 바빠진 날을 보내고 있는 이규용 이사와 박기준 연구원은 새로운 목표를 잡았다. 그들만의 앨범을 만들어내는 것. 비록 TV나 라디오의 전파는 타지 못하더라도 그들이 가진 일과 삶에 대한 사랑의 멜로디가 인터넷의 바다를 항해하는 모습을 기대해 본다.
<이정환기자 victo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