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삼성의 금융 계열사 사장단 회의에서 이건희 회장의 이례적 주문이 눈길을 끌었다. 이 회장은 “오는 7월 제조물 배상책임(PL:Product Liability)법이 도입되면 기업 경영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며 “각별히 신경 쓰라”고 신신당부했다.
PL법 시행이 불과 한달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기업들의 움직임도 한층 바빠지고 있다. 각 기업 총수·임원진은 물론 법조 담당자는 PL법 시행을 앞두고 매일 뜬 눈으로 밤을 지새고 있다. 이미 거액 손해 보험에 가입, 소송 사태에 대비하고 있으며 품질 개선 노력도 한층 강화하고 있다.
◇PL 준비 상황은=‘전사PL 사무국’을 둘 정도로 PL 분야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 LG전자는 최근 TV·냉장고를 불에 타지 않는 소재로 바꾸고 콘덴서·소형모터 등 화재 가능성이 있는 부품을 고급품으로 교체했다.
삼성전자도 최근 제품 결함으로 소비자에게 배상해 주었을 경우 50억원까지 보험금을 지급받을 수 있는 보험에 가입했다. 또 국내시장용 제품 품질도 PL법을 시행중인 미국 수출 제품 수준으로 개선했다.
유통업체도 마찬가지다. LG홈쇼핑과 우리홈쇼핑은 PL법 시행 전까지 연일 각 부서를 대상으로 세미나를 열고 있다. 관련부서뿐 아니라 PL에 대한 최소한의 공감대가 있어야 한다는 판단 때문이다. 품질 관리와 관련해서는 별도팀을 구성하고 엄격한 기준을 통해 TV에 방영되는 제품을 하나에서 열까지 일일이 체크하고 있다.
한솔CSN이나 인터파크 등 인터넷 쇼핑몰도 외산가전 자체브랜드(PB) 상품에 신중을 기하는 등 책임 소재가 불분명한 사업을 유보하는 상황이다. 정부에서도 산자부·재경부·중소기업청 등이 주도해 전자·화학·유통·식품 등 분야별로 PL팀과 분쟁조정위원회 등을 구성하고 산업계의 요구에 대응하고 있다.
◇PL 사각지대는 있다=중소기업은 아직도 PL법의 대표적 사각지대가 되고 있어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지난 5월 벤처기업 109개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법 시행시기와 내용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업체는 25.2%에 불과했다. 또 PL법 대책을 실행중인 업체는 조사대상의 10분의 1도 안되는 6.3%였고 아예 계획조차 없는 업체가 절반을 넘는 53.7%에 달했다.
실제로 다수의 중소업체가 포진돼 있는 전자분야에서 PL의 체감지수는 절대적으로 낮은 상황이다. 모니터를 생산하고 있는 K업체의 한 관계자는 “PL법 시행은 알고 있지만 그렇게 크게 신경쓰고 있지 않다”며 “시행 이후의 사태를 예의주시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기업을 대상으로 컨설팅해 보면 운이 나빠 걸리는 소송만 피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기업이 많다”며 “PL법 시행 한달을 앞두고 기업들은 품질개선을 통한 안전한 제품개발에 노력하는 일은 기본이고 외국 사례 등을 면밀히 분석하는 등 다각적인 대책이 있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