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이 인간처럼 자아를 갖게 된다면 제일 먼저 추구할 것이 무엇일까. 돈, 명예, 권력 아니면 가정의 행복. 아마도 섹스문제가 로봇철학의 최대 화두로 떠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로봇이 색을 밝힌다는 의미가 아니다. 모든 생명체가 그렇듯이 섹스(생식과정)를 통한 종의 연속성 보장은 가장 근원적인 삶의 목적, 그 자체기 때문이다.
로봇이 자신의 정체성을 인식할 정도로 머리가 굵어진다면 유기적 생명체만이 지닌 번식능력을 확보하기 위해 어떤 형태로든 움직일 것이다. 과학자들은 기술적으로 실현가능성은 낮지만 향후 로봇이 생물처럼 자기복제 능력을 가질 경우 인류의 안위에 중대한 위협을 가져올 것이라고 경계한다. 인간의 손길을 벗어난 로봇들이 제멋대로 번식해 급기야 지구를 뒤덮어 버리는 얘기는 암울한 미래를 그린 공상과학소설에 단골 메뉴로 등장해왔다.
인간을 비롯한 고등생물체는 암수의 양성생식을 통해 유전자를 교환하고 새로운 후손을 만들어낸다. 양성생식은 매우 다양하고 복잡한 종을 출현시켜 상황변화에 적응하는 우수한 생명체의 선택을 가능하게 만든다. 적어도 50억 인류는 유전자적 측면에서 볼 때 모두 유일하고도 독특한 존재다. 향후 로봇이 자기복제 능력을 갖는다 해도 아직 수억년의 진화과정을 지닌 생명체의 생식체계에 근접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로봇의 섹스(자기복제)과정에는 종의 다양성이 없기 때문이다. 비록 로봇의 하드웨어는 무한히 카피할 수 있지만 외부상황에 따라 자신의 존재 형태를 바꿔가는 생명체 고유의 생존 능력까지 복사하진 못한다.
사이버펑크 문화의 원조로 추앙받는 일본 오시이 마모루의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를 보면 로봇이 섹스를 통해 자기복제를 추구하는 과정이 잘 나타난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 캐릭터 구사나기는 공각기동대라는 특수부대에서 테러단체와 맞서 싸우는 사이보그로 나온다. 그 과정에서 ‘정보의 바다에서 태어난 생명체’를 자처하는 인공지능체를 만난다. 인공지능체는 구사나기에게 자신의 한계, 즉 다양한 카피가 가능하지만 생명체의 유기적 진화능력을 갖지 못함을 한탄한다. 결국 쿠사나기는 인공지능체와 네트워크를 통해 궁극적인 결합을 시도하고 새로운 디지털 생명체로서 진화의 단계에 접어든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로봇과 인공지능체들의 자기복제가 물리적인 레벨이 아니라 소프트웨어 단계에서 수행된다는 것이다.
이는 향후 로봇의 자기복제가 단순히 자신과 똑같은 기계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네트워크를 통한 로봇끼리 정보 공유와 인공지능의 변이방향으로 나아갈 것임을 시사한다.
만약 냅스터, 소리바다 같은 P2P 형태의 네트워크망을 통해 전세계 로봇이 정보를 공유하게 된다면 사실상 로봇의 자기복제의 필요성은 사라진다. 인간의 육체는 계속 늙지만 로봇은 새로운 정보와 신형 보디로 업그레이드되면서 종을 유지할 수 있다. 이미 로봇의 섹스는 시작된 것이다.
<배일한기자 bail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