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인 더 뉴스>박병형 KGSF포럼

 “평생 한 우물만 파온 사람이 다른 길을 가고자 하는 순간 그 사람의 인생은 그 지점에서 종지부를 찍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최근 케미스 대표이사 직함에 ‘한국굿소프트웨어포럼(KGSF) 초대 회장’이라는 새로운 이름표를 추가하게 된 박병형(48) 사장의 인생철학은 그의 외골수 성향만큼이나 단호하다.

 지난 13년간 ‘소프트웨어 리엔지니어링 도구’라는 단일품목만을 고집해온 업계 이력 외에도 벌써 22년째 야간대학원에서 만학에 몰두하며 쌓아온 연구자적 연륜 때문일까.

 아직 지천명(知天命)의 나이에 못미친 그에게 ‘회장’이라는 자리가 그리 넘치게 느껴지지 않는다. 주변에서도 우수한 기술력으로 승부를 거는 국내 중소 SW업체들의 모임인 KGSF를 이끄는 리더역으로 박 사장만큼 제격인 인물은 찾기 어려웠다는 평가다. 회사설립 초기부터 오직 소프트웨어만으로 사업을 일궈온 그의 고집스러움이 KGSF의 성장에도 중요한 밑거름이 될 것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됐던 것.

 전사적자원관리(ERP) 업체라는 수식어가 자주 따라다니는 케미스는 사실 국내에서는 아직까지도 다소 생소한 ‘LM(Legacy to Modernization)’ 솔루션 전문업체다.

 LM은 건축으로 치면 최근 유행인 리모델링과 같은 개념. 기업에게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기반 기술과 각종 변환도구들을 제공함으로써 쉽게 새로운 시스템으로 전환시켜주는 것이다.

 “얼핏 보면 ERP업체나 SI업체로 오해받기 십상이지만 케미스의 주력 사업은 분명 LM으로 대표되는 소프트웨어 리엔지니어링”이라는 게 박 사장의 설명이다.

 90년 출시한 프로그램자동화 도구인 ‘예스맨’을 비롯해 컴퓨터공학툴(CASE Computer Aided Software Engineering)인 ‘예스윈’, 통합모델링언어(UML) 솔루션인 ‘예스 오로라’로 이어지는 케미스의 제품군들이 입증해준다. 케미스라는 회사명도 CASE와 MIS(경영정보시스템)을 합쳐 만든 이름이다.

하지만 케미스가 업계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98년 박 사장이 개발한 Y2K 솔루션인 ‘예스2000’ 덕분였다. 덕수상고 재학시 만든 학사관리 프로그램이 그의 생애 최초 개발 제품일 정도로 컴퓨터와 인연을 일찌감치 맺었지만 LM이라는 개념에 접근하게 된 것은 예스2000 개발을 하면서부터다. Y2K 솔루션 개발을 위해 소프트웨어 리엔지니어링의 기본에 대한 고민을 먼저 할 수밖에 없었던 터이다.

 예스2000은 케미스라는 이름뿐 아니라 ‘박병형 사장’이라는 작은 벤처기업의 대표를 세상에 알렸다. 그는 이 제품 개발을 계기로 케이블TV MBN의 ‘밀레니엄버그TV강좌’에 무려 2년간 앵커로 고정 출연하면서 유명세를 톡톡히 치렀다.

 그렇다고 예스2000이 일확천금을 가져다 준 것은 아니다. 박 사장은 예스2000이 “값싼 국산 제품을 공공기관 등에 널리 보급하고 케미스를 지금의 LM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는 반석으로서의 의미가 크다”고 회고했다.

 박 사장에게는 이 무렵이 인생에 있어 일대 전환기였다. 95년 예스맨을 개발해 자신있게 시장에 내놓았지만 경쟁 제품에 밀려 참패했을 때 그는 사업은 물론 인생을 포기하겠다는 모진 결심까지 한 적도 있다.

 하지만 그는 사장이라는 직함을 숨기고 LGEDS에 ‘과장’으로 재입사해 윈도 관련 기술을 습득하고 결국 예스윈을 개발하는 드라마를 연출해냄으로써 위기를 극복했다.

 현재 케미스는 지난해 74억원 매출을 올렸으며 수익률이 70%를 넘는다. 올해 140억원의 매출을 기대할 정도로 탄탄한 기업으로 성장했다. 수출 전망도 밝아 99년 설립된 미 현지법인인 ‘넥시트’를 주축으로 프랑스의 SI업체인 ‘프로픽스’, 일본 종합상사인 ‘이토추’ 등과 굵직굵직한 제품 공급을 협상중이다.

박 사장은 KGSF사장이라는 직함 외에도 ERP협의사장, SW공학기술협의회 사장 등 전문 기술 분야의 조직을 맡고 있지만 무엇보다 KGSF에 많은 애정을 쏟을 생각이다.

 “ERP 업체를 비롯한 국내 SW 업체들이 대부분 SI 업체로 전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KGSF는 회원사들간에 정보공유를 통한 신기술 개발과 실질적인 이익 창출에 힘쓸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평소 술과 담배를 멀리하고 골프장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관행도 익숙치 않다는 박 사장이지만 회원사들간에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이끌어내는 데는 누구보다 자신이 있다. 박식한 지식과 풍부한 현장 경험으로 기술 발전에 대한 새로운 화두를 끊임없이 만들어낼 것이란 평가다. 이를 통해 단순히 SW 벤치마킹 테스트의 장으로 머물고 있는 국내 IT환경 개선에도 일조할 것이란 기대도 받고 있다.

두레마을, 청계천 철거민과 땅을 일구며 사는 김진홍 목사를 존경한다는 박 사장은 KGSF를 “특정 엘리트 집단이 아닌 다수 사람들을 보듬어 안을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50세 이후에는 부사장이자 CFO인 아내와 전문경영인에게 회사를 맡기고 기술고문으로 물러앉아 차분히 SW 연구에만 전념하겠다는 박 사장은 신학과를 졸업한 독실한 기독교 신자 답게 ‘컴퓨터 기술의 세계 선교’를 향후 희망란에 적어 넣었다.

 요즘 그는 한강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테크노마트 25층의 소박한 집무실에서 자주 이같은 미래에 대한 아이디어를 구상하곤 한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영화 ‘벅시’에서 중후한 매력을 풍기던 ‘워렌비티’를 닮았다는 말을 종종 듣는 그는 시간 날 때마다 강변CGV에 내려가 영화보기를 즐기는 영화 마니아이기도 하다. 일주일에 적어도 2권 이상의 책을 읽는 지독한 독서광인데다 늘 손에 펜을 쥐고 메모하는 습관이 철저히 몸에 벤 학구파다.

 “LM, 경영학에 이어 지금은 SW품질 부문 연구를 위해 매주 한 번 호서대로 등교한다”는 그는 인터뷰를 마친 기자에게 자신이 집필한 서적이 담긴 묵직한 책 보따리를 건네주며 악수를 청했다.

  <김유경기자 yukyung@etnews.co.kr>



 약력

 △55년 전남 진도 출생 △82년 서울신학대 신학과 졸업 △75∼80년 삼성그룹 종합전산실 △80∼82년 숭실대학교 전산실 △82∼89년 유공 경영정보시스템부 △89년∼ 케미스 대표

 저서

 예스맨 케이스 툴(1990년 영중출판사)

 소프트웨어공학여행(PC월드)

 한권으로 끝내는 ERP(태영출판사, 1997년)

 밀레니엄버그(1998년 영진출판사)

웹환경시스템 구축개발에 관한연구 등 논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