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경쟁력이다>(21)학교편<9.끝>좌담회

본지가 창간 20주년을 맞아 연중기획 시리즈로 게재하고 있는 ‘사람만이 경쟁력이다-학교편’은 시리즈 첫회부터 장안의 화제였다. 대학의 허술한 커리큘럼, 열악한 IT인프라, 대학원까지 번진 위기론, 총체적인 교수 경쟁력의 부재, 문패만 내걸다시피한 부설연구소, 겉도는 산학협동, 지방대·전문대의 존폐위기 등 심층적인 문제제기에 사회 각계의 관심이 쏠렸다. 시리즈가 나간 이후 쏟아진 독자의견란에는 대학의 이공계 실상을 성토한 e메일로 가득찼다. 산학 관계자들의 자조섞인 e메일도 수백통에 달했다. 총 8회에 걸친 연재를 마무리하고 산·관·학 전문가들이 모여 이공계 인력의 바람직한 육성방안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고려대 김석기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이번 좌담회에는 숭실대 이남용 교수, 인하공업전문대학 양룡 교수, 교육인적자원부 김규태 학술지원팀장, 인크루트 이광석 사장이 참석했다. 이날 토론 내용을 정리했다. 편집자

 

◇사회(김석기 고려대 교수)=이 자리는 우리나라 IT인력양성의 요람인 대학의 IT인력양성 현황과 문제점 및 발전방향에 대해 학계와 정부·업계의 의견을 들어보고, 대안은 무엇인지 알아보는 자리입니다. 현재 국내 대학들의 IT인력양성은 어떤 식으로 추진되고 있으며 그 문제점은 무엇인지 이남용 교수께서 먼저 말씀해 주실까요.

◇이남용(숭실대 교수)=교육인적자원부는 BK21 사업, 정보통신부는 IT인력양성 사업을 통해 매년 수천억원을 투입해 IT인력을 양성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미래시장에서 요구하는 IT인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그에 걸맞은 인력양성 방안을 내놓아야 할 것입니다.

◇양룡(인하공업전문대 교수)=현재 우리 대학의 이공계 교육은 우수한 IT인력을 만들어내기에는 구조적으로 문제가 있습니다. 이를 개선할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합니다. 대학은 연구기관의 성격이 강합니다. 그만큼 연구활동 부문에서 선의의 경쟁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지요. 물론 학생들에게 당장 기업에서 활용할 수 있는 실용적인 공부도 전수해야 합니다. 따라서 각종 실험실, 연구자재, 이를 마련할 수 있는 충분한 재원확보 등 현실적인 지원책이 시급합니다.

 특히 전문대학의 경우 동일한 과목명에 교수들의 교육내용은 제각각입니다. 심지어 학과 명칭은 첨단 IT로 치장했는데도 불구하고 정작 수업내용은 구태의연한 곳이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3년제 전문대학이 생기면서 전문성과 창조성을 기한 이공계 교육에 물꼬가 트였습니다. 적지 않은 이공계 학과에서 이론과 실습을 병행해 충실히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는 전문대학이 사회가 인정하는 교육과정의 운영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이광석(인크루트 사장)=민간 입장에서 보면 교육과 취업의 문제는 현실적인 접근을 요구합니다. 현재 대학에서 배출되는 인력은 일선 현업에 바로 투입하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는 무엇을 갖춰야 하고, 이를 위해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해야 합니다. 수요와 공급의 문제를 고민할 시점인거지요.

◇이남용=인력은 넘쳐나는데 인재는 없다는 말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결국 수요자 입장에서는 고급인력의 양성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됩니다. 하지만 정부나 대학 등 각급 교육기관은 인력양산 등 하드웨어적인 요소에만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다만 몇 천, 아니 몇 백명이라도 소수정예의 최첨단 기술을 보유한 고급인력이 필요한 시대라는 얘깁니다.

◇이광석=대다수 국내기업들은 채용시 경력자를 선호하는 추세입니다. 즉 시장에서 검증된 인재만을 골라 뽑겠다는 얘기지요. 이는 곧 대학교육 등 제도권 교육에 대해 불신이 팽배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러면서도 사내 내부인력양성 프로그램도 부실합니다. 결국 교육에 대한 투자없이 결과물에만 눈독을 들이고 있는 꼴입니다. 인재양성의 악순환의 골이 갈수록 깊어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사회=BK21 사업에 대해서도 한 말씀 해주십시오.

◇김규태(교육부 학술지원팀장)=지난해부터 정부는 BK21 사업의 일환으로 6대 신기술(6T) 지원사업을 본격 추진 중입니다. 각 분야별 교수를 대폭 늘려 전문대학 300%, 4년제 대학 800%의 석·박사 교수인력을 증강했습니다. 이처럼 저변인력은 확대됐지만 이를 통한 고급인력 창출이 부족하다는 진단 하에 BK21 사업이 추진된 것입니다. 현재 분야별·수준별로 지원을 조절하겠다는 것이 교육부의 방침입니다. 정부의 정책적 지원은 늘 중요사항으로 꼽혀 왔지만, 대학 역시 자체 투자는 등한시한 채 정부지원만 바라는 태도를 버려야 합니다.

◇사회=대학의 이공계 커리큘럼에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현재 국내 대학 커리큘럼의 문제와 해결방안에 대해서도 살펴볼까요.

◇이남용=대학의 IT분야 커리큘럼은 기본적으로 순수이론에 입각해 잘 짜여져 있다고 봅니다. 다만 산업체가 요구하는 추가적인 기술분야에 대한 프로그램이 부족한 것은 사실입니다. 숭실대의 경우 지난해 미국 내셔널유니버시티와 협의해 이 학교의 커리큘럼을 도입,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이는 국내 대학이 선진 코스웨어를 개발·도입한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지요.

◇이광석=IT전공의 졸업생에 대해 기업체들은 사실 그다지 큰 기대를 갖고 있지 않는 게 현실입니다. 판에 박힌 커리큘럼을 통해 습득한 지식은 현업 투입시 재교육을 요구받기 때문이지요.

◇양룡=고급인력이란 기술뿐 아니라 창조적인 사고의 향유가 중시되는 전문인을 뜻합니다.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창조성이 상실되는 교육 전반에 대한 혁신이 요구됩니다.

◇이남용=대학 교육의 밑동부터 다시 세워야 합니다. 현행 총장 직선제는 소신있는 총장보다는 교수나 학생들에게 인기를 구걸하는 총장을 요구합니다. 이래서는 제대로 된 대학교육을 기대하기 힘듭니다. 고답적인 교재를 중심으로 한 학문연구에 국한된 상아탑의 체질개선이 절실합니다. 이를 위해 기업의 투자, 산학 인턴십, 재학시 참여한 프로젝트 성과에 따른 졸업 후 대책 등은 노화된 대학문화에 신선한 청량제 역할을 해줄 것입니다.

◇사회=전문대학의 교육이 국가 IT교육의 든든한 ‘미드필더’ 역할을 해줘야 할텐데요.

◇양룡=IT만큼 분야별로 세분화된 양성이 필요한 산업도 없습니다. 교육의 세분화를 통해 구체적인 커리큘럼의 뼈대가 완성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을 살펴보면 전문대학에서 배출한 IT인력은 상대적으로 사회적으로 빛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지요. 심지어 전문대 IT인력은 통계조차 잡히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사실 전문대를 통해 고급 IT인력을 배출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술인력의 중간계층을 두텁게 하는 작업도 중요한 과제 중 하나입니다. 지난해 교육부의 중장기 교육시장 전망을 보면 4년제 공과대학 졸업생수가 7만5000명인데 반해 전문대 졸업생은 무려 10만명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비록 전문대 졸업생이 고급인력은 아니더라도 사회적 관심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들을 고급 인력화할 수 있는 정책적 배려가 검토돼야할 때입니다.

◇이남용=IT인력의 세분화를 좀 더 짚어볼까요. 예를 들어 프로젝트 매니저·아키텍처·애널리스트·디자이너·테스터 등으로 수요자 입장을 최대한 반영한 교육 커리큘럼의 완성이 필요합니다. 현재 국내 SI수출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도 우리나라의 SI 기술력이 떨어진다기보다는 PM, 즉 프로젝트 매니저의 역량이 문제가 되기 때문입니다. IT인력의 세분화가 제대로만 이뤄지면 전문대 IT교육도 제 궤도를 찾게 됩니다. 각자의 입장과 수준에 맞는 기술을 배우고 익혀 시장의 요구에 최적화시켜야 한다는 얘기지요.

◇사회=저도 대학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한마디 하겠습니다. 제가 재직하고 있는 학교에서는 대학원 졸업 후 곧바로 산업계 투입이 가능한 인력양성에 눈을 돌리고 있습니다. 이미 대학원에서는 기업체와 연계한 프로젝트를 통해 좋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1년 동안 인턴십 등 실무과정을 거치니 현장투입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죠. 그러나 학부의 현실은 이와 다릅니다. 인턴십은커녕 자체 실험실 공간마저 부족합니다. 이는 아마도 대다수 대학의 고민거리일 겁니다. 정부 및 기업의 투자, 인턴십 등이 절실한 이유이기도 하지요.

◇양룡=전문대의 경우 열악한 환경과 더불어 질의 고급화라는 숙제를 지니고 있습니다. 사실 전문대 IT인력의 고급화는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러나 국가적으로 이공계 인력양성의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는 비록 40∼50점짜리 인력이라도 80∼90점으로 끌어올려 저변을 확대해야할 것입니다. 위에서 말했듯이 4년제 대학의 이공계 인력이 7만5000명, 전문대는 10만명에 달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IT시장에서 전문대 인력이 비록 고급인력은 아니지만 양적인 측면에서는 4년제 대학을 능가합니다.

◇이광석=최근 가시화되고 있는 이공계 기피현상은 취업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기업들은 오히려 IT인력은 넘쳐나지만 뽑을 사람은 없다고 성토합니다. 수년간의 전문교육이 현장에서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이공계 취업전선을 얼어붙게 하는 빌미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신입 대신 경력을 뽑는다’는 기업이 갈수록 늘어나는 형편입니다. 상황이 이러니 대학·대학원, 심지어 박사과정까지 마친 우수 연구인력들이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남용=사람은 넘쳐나지만 쓸만한 사람은 없다는 것이 기업 관계자들의 항변입니다. 현재 국내에서는 연간 20만명의 이공계 인력이 배출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인력들이 과연 기업이 원하는 인력인지에 대해서는 학교에 있는 저 역시도 의문을 갖고 있습니다. 수요자 입장에서는 고급인력의 필요성이 절실하다고 할 수 있지요.

◇이광석=각국 정부가 집계한 바에 따르면 미국은 110만명, 중국 60만명, 일본 30만명 등의 이공계 인력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연간 수십만의 이공계 인력을 배출하고 있는 우리나라로서는 저변확대 시기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고도의 숙련된 인력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산학이 공동으로 고민해야 합니다. 현재 기업들은 대졸 인력에 대한 불신을 갖고 경력자들만 뽑고 있는 실정입니다. 시장에서 검증된 사람만 채택하겠다는 발상인 것이죠. 심지어 LG·삼성 등 대기업은 해외인력 소싱에 눈을 돌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발상은 사내 인력양성의 허술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회=지금까지 이공계 교육의 난맥상을 짚어봤습니다. 대학 이공계 교육의 바람직한 발전방안으로 화제를 돌려볼까요.

◇양룡=‘고급인력=기술’이라는 고정관념을 떨쳐버려야 합니다. 다소 거칠더라도 창조적인 사고가 가능한 인력양성에 산학이 힘을 모아야 할 것입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이면 이미 창조성이 상실돼버리는 우리 교육의 현실은 학교만이 나서서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수요자 측면의 사회 분위기도 개선돼야 합니다. 현재 산학 연계의 공동작업이 절대 부족합니다. 산학이 함께 고등·대학교육의 협업과정을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IT인력을 좀더 세분화해 교육할 필요도 있습니다. 이공계 인력은 하드웨어·소프트웨어마다 각각 다른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는 이를 IT로 일원화하고 있는 경향이 짙다고 봅니다. 따라서 구체적으로 필요한 파트를 분야별로 세분해서 육성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김규태=정통부의 IT지원사업을 보면 한 학과의 정원을 20명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컴퓨터학과 정원이 16명이면 지원이 안되고 있다는 얘깁니다. 대학의 자정능력에도 문제가 있지만 정부차원의 수요공급체계에도 개선점이 필요합니다. 또 활발한 해외교류를 통해 신기술을 습득하고 커리큘럼을 선진화해야 합니다.

◇이남용=학원·기업 등 비제도권의 인력 공급체계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습니다. 미국의 경우 대기업들이 대규모의 교육센터를 가지고 인력을 양성하고 있습니다. 독일은 연구원을 고용하는 19200여개 중소기업에 세제를 지원합니다. 석·박사 고급인력이 중소기업에도 갈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지원해야 합니다. 반면 우리기업은 일시적으로 대학교수 등을 초빙하는 등 형식적인 교육에 치우쳐 있습니다. 학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시스템엔지니어링, 아키텍트 등과 같은 고급 IT인력을 양성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회=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최근의 헛도는 이공계 교육에는 학교당국·정부·교수·학부형·학생 등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교육부는 과거의 방식을 유지하려고 하고 교수들은 프로젝트 따내기에 급급해 학생들을 이론과 실험 양쪽에서 지치게 합니다. 이공계 위기론이 부각되자 학과를 잘못 선택했다는 하소연이 나오는 것도 교육의 병패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지요. 아무쪼록 이 자리에서 논의된 사항들이 우리나라 교육발전을 위한 ‘고언’이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정리=명승욱기자 swmay@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