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통합(SI)시장에 대한 파상공세에 나선 외국계 솔루션 업체들과 기존 시장을 고수하려는 국내 SI업체들간 시장 마찰이 위험 수위를 넘고 있다.
4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최근 수백억원대에 달하는 주요 금융 SI프로젝트 수주전에서 한국IBM과 컴팩코리아 등 다국적 IT업체들이 저가입찰을 강행했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가운데 지난달 31일에 마감한 서울도시철도공사 신정보시스템 입찰을 둘러싸고 외국계 솔루션공급업체와 SI업체간 공정성 시비가 법정 소송으로까지 비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서울도시철도공사 신정보시스템 입찰 과정에서 SKC&C(대표 윤석경)는 한국IBM과 시스코가 공급자확인 증명서(Certification) 발급을 고의적으로 지연시키는 등 정상적인 입찰 참가를 방해했다는 이유로 공정거래위원회 제소와 함께 민·형사상 소송까지 검토중이다. 또 다른 SI업체들도 그동안 “서울도시철도공사가 이번 입찰에서 제시한 기술 심사와 서버시스템 기준은 특정 외국계 벤더업체를 염두에 둔 기준”이라며 특혜 의혹을 제기해 왔다.
이에 따라 SKC&C를 포함, 현대정보기술·LGCNS·쌍용정보통신 등 이번 도시철도공사 입찰에 참가한 주요 SI업체들은 4일 긴급 모임을 갖고 외국계 공급업체들의 사전영업 및 담합 행위로 인해 국내 SI시장이 왜곡되는 현상을 더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인식 아래 공동 대응책을 마련키로 해 상당한 파문이 예상된다.
그동안 국내 주요 정보화 프로젝트에서 서버 및 네트워크 장비 공급을 무기로 외국계 솔루션공급업체들이 사전 영업을 전개하고 있다는 의혹은 끊임없이 제기돼 왔으나 이번처럼 외국계기업 중심의 담합 행위가 표면적으로 드러난 것은 처음이다.
이번 입찰 과정에서 도시철도공사는 SKC&C가 시스코의 제품 확인서를 늦게 제출했다는 이유로 입찰 참여 자격을 박탈했으며 사업자 선정을 위한 1차 기술 심사에서도 900점(1000점 만점) 이상을 획득한 업체만을 대상으로 최저가 입찰을 실시키로 해 논란을 빚었다.
이에 따라 SKC&C는 “특정 외국계회사의 고의적 입찰참여 방해와 담합으로 공급자확인 증명서를 제한 시간내에 제출하는 것이 불가능했다”고 주장하며 이번 입찰에서 드러난 외국기업들의 담합행위에 법적 대응할 방침임을 도시철도공사측에 통보했다.
특히 SKC&C는 이번 프로젝트에서 “한국IBM이 자사 서버와 시스코의 네트워크 장비가 이미 고객(도시철도공사)과의 협의를 통해 선정됐으니 SKC&C는 경쟁업체인 HP의 서버와 리버스톤의 네트워크 장비를 제안해 IBM이 적정 가격으로 프로젝트를 수주할 수 있도록 지원해 달라”는 구체적인 담합 요청까지 해왔다고 폭로했다.
이에 대해 한국IBM 관계자는 “SKC&C측과 사업적인 협력 방안을 논의한 적은 있으나 회사차원에서 공식적인 담합을 요청한 적은 없다”고 말하며 “한국IBM이 SKC&C의 시스코 제품 확인서를 보유했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에앞서 컴팩코리아는 지난달 농협 신공제시스템 SI프로젝트 입찰에서 2순위 협상대상자인 국내의 한 SI업체가 제안했던 가격보다 60% 가량이나 낮은 69억원에 입찰, 사업자로 선정돼 빈축을 사기도 했다. 컴팩코리아는 이 프로젝트의 1차 기술·가격 심사에는 낙찰가의 2.5배인 172억원을 제시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국IBM도 지난달 기업은행 차세대 시스템 구축 프로젝트 입찰에서 2순위 협상대상자인 삼성SDS가 제안안 가격보다 60% 가량이 낮은 250억원을 써내 사업자로 선정됐다. 이에대해 한국IBM측은 “기업은행의 예가가 250억원이기 때문이 결코 덤핑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SI업계에서는 “기업은행의 예가 산정은 애당초 현실성이 없었다”며 “이번 입찰에서 400억원 이하로 제안한 곳은 한국IBM이 유일했다”고 반박했다.
SI업계의 한 관계자는 “철도와 금융 등 공공 부문 프로젝트에서 저가 입찰이 만연할 경우 프로젝트 기근 현상이 전망되는 올 하반기에는 수주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프로젝트의 부실화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업계는 SI업계의 고질적인 병폐인 저가 입찰을 원천적으로 막고 프로젝트의 내실을 다지기 위해서는 그동안 제기돼온 입찰가격 하한선 제도 등과 같은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상돈기자 sdjoo@etnews.co.kr
온기홍기자 khoh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