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튼 존’ 하면 팝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히트곡 몇 곡은 꿰고 있는 월드슈퍼스타다. 클래식 터치의 피아노에 바탕을 둔 그의 선율 제조 능력은 비틀스에도 밀리지 않을 정도의 수준과 마르지 않은 샘처럼 줄기 찬 생산력을 과시하면서 경이로운 성공을 창출해왔다.
‘Your song’ ‘Goodbye yellow brick road’ ‘Don`t go breaking my heart’ ‘Sacrifice’, 그리고 97년 음악시장을 평정한 ‘Candle in the wind’ 등 그가 남긴 팝의 명곡은 일일이 열거하기 벅찰 정도다. 아마도 그의 음악을 ‘팝의 교과서’라 해도 부인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가 슈퍼스타로 올라서는 데 원동력이 된 것은 무엇보다 출중한 음악능력이지만 장외에서 줄기차게 뿌려댄 화제도 큰 몫을 차지했다. 그 중 가지각색의 안경, 높은 구두 굽, 그리고 동성연애자라는 사실, 기자들과의 불편한 관계 등은 이제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요즘 에이지 퇴치를 위한 자선사업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도 유명하지만 엘튼 존에게서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음악 외적 이미지가 있다. 바로 축구다. 축구 관람을 좋아하기도 하고, 직접 그라운드에서 뛰기도 좋아한다. 전성기 때도 심심찮게 축구화로 갈아 신고 로드 스튜어트 등 동료 가수들과 그라운드를 누비기도 했다.
어린시절을 영국 노스우드에서 보낸 그는 지역 클럽축구팀인 왓퍼드의 열렬한 팬이었다. 그는 나중에 자신이 출세하면 꼭 그 팀을 도와주리라 마음먹었다. 지구촌을 뒤흔드는 절정의 스타덤에 올라서자 그는 주저없이 어릴적 꿈을 실현했다. 76년 왓퍼드를 사들여 구단주가 된 것이다.
그가 왓퍼드와 축구에 얼마나 빠져 있었는가 하면 왓퍼드가 중요한 경기를 하는 날이면 외국 공연 스케줄도 중단하고 전용기로 경기장으로 날아가 관람했을 정도다. 심지어 “만약 내게 5년간 인기차트 정상에 오르는 것과 왓퍼드 구단주가 되는 것 중에 하나를 고르라 한다면 난 무조건 왓퍼드를 택하겠다”고 말했다.
많은 영국민의 희망사항과 마찬가지로 그의 꿈도 영국이 지구촌 축구의 잔치인 월드컵에서 우승하는 것이다. 과거 “왓퍼드가 내겐 전부지만 만약 내 팀이 월드컵 팀이라면 그거야말로 최고의 영광”이라고 외친 바 있다. 그는 우여곡절 속에서도 왓퍼드를 무려 15년이나 성공적으로 운영했다.
영국이 팝스타의 메카이자 축구 종가인 만큼 영국의 팝가수들은 축구와 축구선수에 열광한다. 영국의 축구 영웅 베컴의 아내가 여성그룹 스파이스 걸스 출신의 빅토리아라는 점이 그 열기를 말해준다. 모든 영국인의 염원은 말할 것도 없이 영국이 2002 한일 월드컵에서 우승하는 것이다. 만약 영국이 선전에 선전을 거듭한다면 어쩌면 엘튼 존이 전용기를 타고 와 관람석에서 응원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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