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트워크 장비 시장에 국산 업체의 돌풍이 거세게 몰아치고 있다.
그동안 시스코시스템스, 루슨트테크놀로지스, 노텔네트웍스 등 대형 외국계 업체들이 장악해온 국내 네트워크 장비 시장에서 토종 업체들의 활약이 눈부시다. 특히 이들 국산 업체의 활약은 최근 네트워크 신기술의 변화 속도가 갈수록 빨라지고 있는 상황에서 두드러져 더욱 값진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과거 해외에서 신기술이 소개되면 뒤늦게 이에 대한 개발에 착수해 항상 ‘뒷북’을 치는데 머물렀던 국산 업체들의 행보가 이제는 외산 업체들을 앞서고 있기 때문이다.
국산 업체들의 활약이 가장 돋보이는 분야는 초고속 인터넷 솔루션이다.
지난 90년대 말 ADSL 시장 초기, 알카텔을 비롯한 루슨트, 노텔 등의 공세에 밀려 고전을 거듭하던 국산 업체들은 불과 2년만에 분위기를 반전, 현재는 시장 점유율을 90% 수준까지 끌어올린 상황이다.
이처럼 ADSL 장비 시장을 놓고 벌어진 외산 업체들과의 격전을 역전승으로 마무리지은 국산 업체들의 경쟁력은 올들어 급부상하고 있는 VDSL 장비 분야에서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ADSL 분야에서 갈고 닦은 기술력과 외산 업체와의 맞대결을 통해 내공을 쌓은 국산 업체들은 외산 업체보다 한발 빠른 제품 출시를 통해 국내 VDSL 시장을 선점하고 있다. 외산 업체들이 기술 표준화 문제로 시장 진출에 어려움을 겪고있는 동안 국산 업체들은 이보다 앞선 대응을 통해 시장의 주도권을 확보한 것이다.
국산 업체들은 올들어 주요 통신사업자들이 차세대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 기반 마련을 위해 실시한 VDSL 장비 입찰을 싹쓸이했다.
국산 업체들의 활약상은 역시 올들어 급성장하고 있는 무선 랜 시장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지난해 무선 랜 시장이 개화할 때만해도 국내 무선 랜 시장은 국산 및 외산업체간 치열한 경쟁이 벌여졌으며 실제 시장 점유율면에서도 50 대 50의 박빙세가 이어졌다.
하지만 올들어 그동안 기술개발에 전념해오던 국내 벤처기업들이 제품 출시와 함께 영업을 강화하면서 시장의 주도권은 국산 업체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국산 무선 랜 업체들의 활약은 특히 올해 가장 큰 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기대되는 공중망 무선 랜 시장에서 돋보였다.
올해 무선 랜 시장의 최대 규모 입찰로 주목받았던 KT의 무선 랜 장비공급자 선정에서는 총 3개 부문의 공급권을 모두 국산업체가 차지했다. 이 과정에서 몇몇 외산업체들은 장비성능테스트(BMT)조차 통과하지 못했으며 가격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한 업체들은 아예 제안서도 제출하지 못하고 입맛만 다시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국산업체의 우세는 차세대 네트워크 시장의 핫이슈로 떠오른 NGN(Next Generation Network)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KT가 세계에서 처음으로 NGN 구축을 위해 최근 실시한 액세스게이트웨이 입찰에서는 LG전자가 외산업체를 제치고 공급권을 따냈다.
LG전자는 BMT 결과도 루슨트나 알카텔 등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함으로써 기술력 측면에서도 국산의 우위를 입증했다.
이밖에 초고속 국가망 사업을 비롯해 메트로이더넷 액세스 장비 분야에서도 국산업체들의 선전이 이어지며 21세기 네트워크 시장을 국산 업체들의 독무대로 만들어가고 있다.
◆`메이드인 코리아`지구촌 휩쓴다
국산 업체들의 활약은 해외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기가링크, 다산인터네트, 코어세스 등 국내 네트워크 장비산업의 1세대 주자들을 중심으로 초고속 인터넷 장비 시장에서의 승전보가 잇따르고 있다.
기가링크(대표 김철환 http://www.gigalink.co.kr)는 지난 4월 중국 선전·칭화 둥팡구분유한공사와 초고속인터넷 장비 생산 판매를 위한 사업협력 조인식을 가졌다. 이를 통해 기가링크는 독자 개발한 TDSL 장비를 중국에 공급케 됐으며 초기 1만회선 장비를 비롯해 올해에만 3000만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릴 것으로 보인다.
이 회사는 이어 일본 NTT그룹의 자회사인 NTT-Me사에 VDSL 장비를 납품하기로 하는 등 아시아 최대 시장인 중국과 일본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다산네트웍스(대표 남민우 http://www.da-san.com)도 지난해 12월 중국 선전의 화륜그룹과 20억원 규모의 VDSL 장비 공급 계약을 체결한 후 중국시장 진출을 가속화하고 있으며 코어세스(대표 하정율 http://www.corecess.com)도 중국과 일본 시장에 잇따라 초고속인터넷 장비를 수출하며 기세를 높이고 있다.
대기업도 이러한 순수 네트워크장비업체들의 선전에 가세해 ‘메이드인코리아(Made In KOREA)’ 확산에 일조하고 있다.
ADSL 장비를 주력 사업중의 하나로 강화해온 삼성전자는 지난 2월 대만 통신사업자 중화텔레콤이 실시한 ADSL 장비 입찰에서 알카텔, 루슨트, 노키아, NEC 등 쟁쟁한 외산업체들을 제치고 116만회선 규모의 공급권을 따냈다.
이처럼 장비업체들이 해외 시장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자 최근에는 네트워크통합(NI) 업체들도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에스넷시스템(대표 박효대 http://www.snetsystems.co.kr)이 올초 국내 NI 업체로서는 처음으로 중국 현지에 합작법인을 설립한데 이어 콤텍시스템(대표 남석우 http://www.comtec.co.kr)도 KT와 공동으로 중국 사이버아파트용 네트워크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국산업체, 이것만은 바꿔야 한다
최근 국산 네트워크 장비업체들의 시장 점유율이 높아지고 있지만 보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는 고쳐야 할 부분도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특히 아직 백본급 대형 장비 시장에서는 외산 업체의 우위가 지속되는 만큼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더 큰 시장으로 나가야 한다는 지적이다.
◇출혈 경쟁은 이제 그만=장비업체의 가장 큰 고객인 통신사업자가 예산 절감을 위해 최저가 입찰 방식을 고수함에 따라 업체의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다. 물론 이 부분은 장비 성능보다는 가격을 우선시하는 통신사업자의 책임도 크지만 우선 싼 가격에라도 제품을 공급하고 보자는 업체들 스스로도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따라서 업체들 스스로 출혈 경쟁을 자제하고 가격보다는 제품 성능으로 승부를 거는 공정 경쟁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
◇공동 구매로 원가절감을=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무선 랜 시장에서 대만 업체들은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세확산을 하고 있다. 대만 업체들의 가장 큰 강점은 엄청난 규모의 부품 공동구매를 통한 원가절감이다. 대만업체들은 이를 통해 타 업체들에 비해 싼 가격에 제품을 공급함으로써 전세계 무선 랜 시장의 로엔드급 부분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이고 있다. 국내 업체들도 업체간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부품 공동구매를 통해 원가 절감을 꾀해야 한다.
◇공동 개발 통한 명품 탄생=시스코나 루슨트 같은 대형 외산업체들의 경우 1000명이 넘는 연구개발인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국산업체들은 기껏해야 100명 수준이며 심지어는 10명 안팎의 인원으로 개발 부문을 꾸려나가는 업체도 비일비재하다. 연구개발 비용측면에서도 이러한 격차는 마찬가지다.
이에 따라 다수의 업체들이 각자 역할을 분담해 공동으로 제품을 개발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를 통해 단순한 내수용 제품이 아닌 세계 시장에 내놔도 손색이 없는 ‘명품’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지적이다.
◇M&A는 윈-윈 전략=우리나라는 정서상 업체간 인수합병(M&A)에 인색한 게 사실이다. M&A가 업체간 시너지를 내기 위한 행위라기보다는 작은 업체가 덩치 큰 업체에 흡수당한다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전세계 라우터 시장의 최강자로 군림하고 있는 시스코의 오늘날 영광 뒤에는 수십여개에 달하는 개발업체와의 M&A가 있었다.
국산 업체들도 더 이상 M&A에 대한 그릇된 편견을 없애고 업체간에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가는 윈윈 전략으로 M&A를 활용해야 한다.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