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한국` 대만에 추월당하나>(하)반도체 한국, 대만에 추월당하나?

 “연간 최고 17%의 수출비중을 차지하는 D램사업을 포기한다는 것은 경제논리로 봐도 어불성설이다. 경제정책을 입안하는 정부가 수출주력산업에 대한 밑그림을 확고히 그려야 한다. D램은 아직도 한국 경제의 쌀이고 고부가가치 제품이다.” (서울대 경제학부 이동기 교수)

 “D램 제조 위주의 투자는 한계가 있다. 대만처럼 비메모리 반도체 수탁생산(파운드리) 및 설계에 집중 투자하고, 한국이 강점을 지닌 반도체 장비·재료 등 유관산업을 육성해 중국시장을 개척해야 한다.” (정정 ASIC설계사협회장)

 “64KD램 개발과 같은 대형 프로젝트가 필요하다. 분산된 정책자금으로 ‘선택과 집중’을 통해 차세대 시장을 선도할 시스템온칩(SoC)을 개발하는 것도 시급하다. 부실·영세기업 100개보다 대형의 전문화된 기업 2∼3개가 더 절실한 것도 같은 이유다.” (유회준 KAIST 교수)

 대만의 급부상에 따른 대응방안을 놓고 반도체업계 관계자들간에 벌어진 설전이다. 그러나 공통적으로 논란의 중심 축에는 D램과 파운드리, 비메모리 설계산업에 관한 주제가 빠지지 않는다. 

 많은 반도체업계 관계자들은 대만을 이기기 위해서는 D램사업을 고도화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한다. 물론 D램산업에 대한 방향설정에는 하이닉스 처리문제가 걸려 있어 이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추후 반도체산업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대안을 만들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하이닉스를 매각하려는 데 대해서는 산업 인프라와 산업 고도화에도 도움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대체로 우세한 것 같다.

 무엇보다도 D램사업이 필요한 것은 20년 동안 이룩해 온 특장점 즉, D램 설계와 제조, 마케팅, 그리고 글로벌 경쟁력을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점 때문이다.

 512M DDR SD램, 90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급 SoC 공정, 70㎚급 공정용 고유전 물질, 블루칩·프라임칩 등 세계적인 신기술에 대한 가치는 대만업체들이 쉽게 넘보기 어려운 우리만의 고지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의 협력업체로 참여하고 있는 70여개 장비·재료업체와 100여개 반도체설계업체들의 가치와 미래를 위해서라도 D램을 기반으로 한 규모의 시장이 형성돼야 한다는 주장도 바로 이 때문에 제기되는 것이다.

 반면 일각에서는 D램에 집중하는 것이 향후 반도체시장에서 뒤처지는 패인(敗因)이 될 수 있다며 이같은 주장에 대해 경계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대단위 설비투자가 필요한 D램사업을 지속하다보면 설계기술이나 인력, 해외업체와의 네트워크 등이 필요한 비메모리사업을 등한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삼성전자가 비메모리사업에 집중적인 투자를 단행하지 못하는 것은 대표적인 사례라고 이들은 꼬집는다.

 오히려 대만처럼 성장성이 높은 파운드리사업이나 비메모리 설계사업에 자원과 인력을 집중해 우리가 경쟁력을 갖고 있는 코드분할다중접속(CDMA)·디지털TV·셋톱박스 등의 시스템 및 부품 경쟁력을 제고하자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일각에서는 또 국내 시스템업체와 반도체업체, 대학·연구소의 공동 프로젝트를 활성화하고, 해외 시스템업체들과의 유기적인 네트워크가 가능한 인프라 구축방안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아남반도체·동부전자 등 파운드리업체의 생산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투자와 세제 혜택 등을 지원하고 퀄컴·비아와 같은 전문 스타벤처가 나올 수 있도록 동종업체들간 인수합병(M&A)을 유도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서울대반도체공동연구소·반도체설계교육센터(IDEC)·반도체설계자산연구센터(SIPAC)·ITSoC캠퍼스 등 인력과 기술력을 높일 수 있는 인프라 시설에 정책자금을 집중, 투입해야 한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그러나 한국의 경쟁자는 비단 대만뿐만이 아니다. 쇠락하는 일본의 반도체업체들이 시장 회복세에 다시 가동률을 높이고 있다는 소리도 들려오고, 인텔·AMD·마이크론을 위시한 미국업체들이 무선통신기기용 메모리시장을 지배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또 아직은 먼 것 같은 중국이 언제 코앞에 다가올 지도 모를 일이다. 

 분명한 것은 현재 한국의 반도체산업은 새로운 전환기를 맞고 있고, 자칫 잘못하면 전체 정보기술(IT) 경쟁력 약화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빠르게, 그리고 정확하게 차세대 비전을 만들어야 할 시점에 서 있다는 사실이다.

 <정지연기자 jyj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