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시스템 입찰제안서 관행 이대로 안된다>(상)분명한 기준이 없다

 축구 경기에서 아무리 완벽한 골인 기회를 잡아도 오프사이드로 판정되면 공격권은 곧바로 상대편에게 넘어간다. 정보시스템 입찰 과정도 마찬가지다. 제안서 규칙이나 입찰 기준을 어기면 아무리 훌륭한 아이디어라도 평가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입찰 과정에서 제안서 관련 분쟁이 발생해도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분명한 규칙이나 기준이 없다. 제안서 평가는 물론이고 발주처가 제시하는 제안서 작성 기준 또한 너무나 형식적이고 소모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공 프로젝트 등에 제출되는 제안서 분량은 수백페이지를 넘고 이를 작성하는 데만도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의 비용이 들어간다.

 이같은 정보시스템 입찰 과정의 잘못된 제안서 관행을 개선하지 않고서는 성공적인 정보화사업 수행도 불가능하다. SI 분야의 잘못된 제안서 관행을 점검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제안 문화를 정착시키는 대안을 3회에 걸쳐 모색해 본다. 편집자

 최근 실시된 서울도시철도공사 신정보시스템 입찰에서 한 SI업체가 공급자확인 증명서(Certification)를 누락, 입찰 참가 자격을 박탈당한 사례가 발생하자 사업제안서를 둘러싼 그동안의 입찰 관행에 업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그러나 제안서 제출과 평가를 둘러싼 분쟁의 대부분은 정확한 기준이나 원칙 없이 입찰 당사자들간의 암묵적인 합의로 결론난다. 실제로 입찰 참가업체들 가운데 강력한 이의를 제기하거나 항의하는 곳이 없으면 그냥 넘어가기 일쑤다. 프로젝트 입찰 과정에서 발주자와 참가 업체들이 마찰을 빚고 특혜 의혹이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제안 서류와 내용=서울도시철도공사의 경우처럼 SI업체가 사업제안서에 중요한 문서나 내용을 누락해 입찰 참여 자격을 박탈당한 사례는 극히 드물다. 프로젝트 참가를 준비한 SI업체라면 적어도 사업제안서 작성에 사활을 걸기 때문. 수십명의 전문가들이 밤을 새워서라도 마감 시간내에 제안서 내용을 완성하는 것이 SI업계의 관례다.

 간혹 일부 내용을 누락했을 경우에도 특정 품목의 안정적인 공급을 약속하는 공급자확인 증명서와 같은 형식적인 서류는 제안 업체가 이행각서를 쓰거나 팩스서류로 대체한 후 나중에 원본을 접수하는 것이 허용된다. 지난해 한 국방 프로젝트에서는 전체 사업제안서가 원본과 복사본의 내용이 서로 달랐지만 입찰 참여가 허용된 사례도 있다.

 ◇제안서 마감과 평가 기간=사업제안요청서(RFP)를 공고한 후 며칠내에 제안서를 마감하고 평가하느냐도 정확한 기준이 없다. 발주기관 마음대로다.

 대부분의 공공 정보화 프로젝트에서 업체들에 주어지는 제안서 작성기간은 길어야 2∼3주 정도. 사전 정보가 없는 상황이라면 발주자의 요구사항을 이해하는 데만도 꼬박 3, 4일이 걸리는데 2∼3주만에 제안서를 작성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같은 현실은 “사전영업을 전개한 업체들에 특혜를 주자는 것 아니냐”는 의혹으로 이어진다. 실제로 사전 정보를 입수해 상당기간 준비해온 대기업들도 제안서 마감 시한을 맞추기 어려운 마당에 중소 업체들로서는 아예 엄두도 못낼 형편이다.

 ◇제출 마감 시간=제안서와 관련해 자주 문제가 발생하는 부분이 마감 시간이다. 제안서 제출을 앞두고 치열한 눈치작전을 벌이는 상황에서 경쟁회사의 최종 전략을 파악할 수 있는 1∼2분의 시간은 소중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쟁 업체의 전략에 대응해 여러 형태의 제안서를 만들고 중요한 대목은 공란으로 비워둔 채 접수 창구로 향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러다 보니 지난해의 국가공동백업센터 입찰때처럼 특정 업체가 마감시간을 넘겨 제안서를 제출했다는 주장과 함께 다른 경쟁사들이 항의하는 소동이 일어나기 일쑤다. 이 사건을 통해 확인됐듯 통상적으로 제안서 마감은 담당 공무원에게 제안서를 제출한 시간이 아니라 발주기관의 출입문을 통과한 시간이 기준이 된다. 이유는 건물내 엘리베이터가 고장나거나 담당자가 잠시 자리를 비울 수도 있기 때문이라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주상돈기자 sdjo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