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온칩 시대>반도체시장 `교체선수`달려온다

‘반도체시장에 신인류(Neo Generation)가 온다.’

 메모리와 비메모리로 나뉘었던 반도체시장에 시스템온칩(SoC)이라는 신개념의 반도체가 등장했다. 시스템 구성에 필요한 핵심적인 기능을 하나의 칩 위에 구현하는 SoC는 더이상 메모리, 비메모리라는 낡은 영역구분을 허용하지 않는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통합되고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결합돼 ‘반도체=시스템’이 되는, 말그대로 ‘디지털 컨버전스(융합)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인텔의 창시자 고든 무어는 18개월마다 반도체에 집적하는 트랜지스터의 개수가 2배가 되는, 이른바 ‘무어의 법칙’을 주창하면서 21세기는 초고집적 SoC시대가 될 것임을 예고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71년 세계 최초의 마이크로프로세서 ‘4004’는 4비트, 108㎑ 속도에 2300개의 트랜지스터가 집적된 간단한 연산기능에 머물렀으나 30년이 지난 현재 2㎓급 ‘펜티엄4’는 2억개가 넘는 트랜지스터가 집적돼 초당 명령어처리를 200억회나 수행하는 초고성능 컴퓨터로 변모했다.

 미세회로공정 기술도 곱절씩 발전해 왔다. 30년전 ‘4004’는 10미크론(㎛, 1㎛는 100만분의 1m)급 공정으로 만들어졌지만 현재 반도체업계는 100분의 1 수준인 0.11∼0.13㎛급 미세회로공정을 상용화했다. 기존 0.18㎛ 공정과 비교한다면 2배 이상의 생산증대 효과를 가져온다. 또 내년부터 본격화될 90나노미터(㎚, 1㎚=10억분의 1m) 공정은 0.13㎛ 공정과 비교하면 트랜지스터 집적수를 50% 이상 더 늘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다.

 더 빠른 반도체를 만들기 위한 지난 30년간의 반도체 기술혁신 노력은 이제 SoC로 결집되고 있다.

 인터넷과 무선데이터통신의 보급으로 등장한 ‘정보 유목민’들이 각 산업계로 퍼지면서 초소형·저전력소모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고 각종 정보기기가 컨버전스되면서 시스템 기반의 통합된 IT솔루션이 필요하게 됐기 때문이다. 국경을 넘는 경쟁이 확대되면서 타임투마켓(적시출시)을 실현하고 원가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부품의 통합화와 단순화를 지원하는 통합솔루션이 필수적이다.

 SoC는 이같은 시대적 요구와 반도체 기술발전이 접목돼 등장한 신세대 반도체다. 메모리, 비메모리는 물론 아날로그 디스크리트와 주변 블록을 통합해 단일칩

에서 시스템의 기능을 실현할 수 있다.

 이미 인텔·TI·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삼성전자 등 세계 리딩 업체들은 제품 개발에 들어가 하반기부터는 속속 상용제품을 내놓을 예정이다. TSMC·UMC 등 파운드리업체들도 초고집적 SoC 개발을 위한 90㎚급 공정기술을 개발하고 내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양산에 적용한다는 계획이다. 65㎚급과 30㎚급의 공정기술 개발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물론 집적도가 낮은 특정 기능의 SoC는 이미 시장에 다수가 선보였다.

 퀄컴의 모바일스테이션모뎀(MSM)을 필두로 TI의 이동전화단말기 솔루션 OMAP, 필립스·LSI로직·시러스로직 등이 내놓은 DVD플레이어 및 리코더용 SoC 등 DSP와 인터페이스, 주변 블록을 통합한 SoC들은 제품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국내 업체들의 개발상황도 상당히 앞서 있다. 삼성전자는 이동전화단말기·PDA 등에 적용할 모바일 SoC를 최근 내놓았고 에이디칩스·다믈멀티미디어·MCS로직·TLi 등 벤처기업들은 디지털 멀티미디어에 탑재할 SoC를 이미 양산중이다.

 그러나 엄격한 의미에서 SoC는 CPU와 DSP, 메모리 등 시스템 구성에 필요한 기본 요소들을 모두 탑재, 초소형·고집적화해야 한다는 점에서 시장은 이제 막 개화단계다. 인텔이 하반기 내놓겠다는 3세대 휴대폰·PDA 등 휴대형 데이터통신기기용 SoC가 그 첫 물꼬를 틀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하지만 SoC는 단지 기술적·시장적 이슈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반도체업체들에 위기감을 던져준다. 메모리, 비메모리, 파운드리 등으로 시장을 나누면서 거대한 진영을 이루고 있던 반도체산업이 영역을 허물고 본격적인 융합과 도전의 기회가 될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미국·일본·유럽의 선두 업체들은 새로운 시장의 출현으로 기존에 다져놓은 주도권을 잃게 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하고 있고 후발업체들은 위기를 기회로 삼겠다고 벼르고 있다.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되는 약육강식의 처절한 법칙이 SoC 시장에서도 재현될 것이라는 예상이다.

 반도체업계는 SoC가 기존의 시장질서를 무너뜨릴 수도 있다는 점에서 정치적이라고 보고 있다. 새로운 방식의 접근과 투자, 기술개발이 이뤄져야만 향후 SoC시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수십억달러의 투자가 수반되는 반도체일관생산라인(fab·팹)과 조립공장이 없어도 아이디어와 디자인 기술, 그리고 특화된 반도체 지적재산(IP)으로 세계적인 스타가 된 영국 임베디드 마이크로프로세서(CPU) IP업체 ARM는 SoC가 낳은 첫 성공작이다.

 하지만 SoC를 구현하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유관 산업의 인프라가 구축돼 있지 않아 가격이 비싸고 수율이 낮으며 복잡한 지적재산권 문제로 반도체산업계가 공통의 애로를 겪고 있다.

 수십나노미터급의 미세회로공정 기술도 필요하고 수천만 게이트의 회로설계가 가능한 반도체설계자동화(EDA) 툴도 필요하다. 초미세 리소그래피 기술과 반도체 회로간 열전도나 간섭을 막을 수 있는 저유전(low-k) 층간물질 등 반도체 장비·소재·재료분야의 기술개발도 동반돼야 한다. 또 설계시간을 줄이고 효과적인 접근을 위해서는 타 개발자들이 미리 만들어놓은 설계자산(IP)를 재활용하는 노하우도 갖춰야 한다.

 결국 SoC는 새로운 사고구조와 비즈니스 형태가 뒷받침돼야 성공할 수 있다.

 미국이나 일본 등 반도체 및 IT시장에 초기 진입, 주도하고 있는 국가들은 대`부분 개별 기업에서 스스로 SoC 분야에 대한 투자와 연구, 전략적 제휴를 추진하고 후발 진입한 국가에서는 정부 및 산하기관, 대학 등이 나서 SoC 분야를 국책과제로 집중 육성하는 추세다.

 D램 개발 및 생산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나라 반도체산업계에도 SoC는 절호의 기회고 재도약의 발판이 될 수 있다. 우리 반도체업체들의 SoC 기술력과 준비현황, 산업인프라를 시급히 재점검해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바로 여기서 출발한다.

 SoC는 반도체업계의 비전이다. 트랜지스터에서 집적회로(IC), 대형집적반도체(LSI)로 발전해온 반도체 기술과 시장은 이제 SoC로 패러다임을 전환, 새시대를 맞고 있다.

<정지연기자 jyj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