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경쟁력이다>(22)다국적 IT기업 CP의 허실

 “XXX씨가 제공하는 덤프(기출·예상문제)를 구합니다.”

 B씨는 최근 마이크로소프트의 시스템 및 네트워크 전문가 인증(MCSE)시험에서 낙방했다. 그래서 마이크로소프트 전문가인증(CP:Certified Professional) 관련 사이트에 ‘보다 확실한 덤프를 구한다’는 글을 올렸다. 기존에 공부한 덤프가 시험에서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판단에서다.

 B씨는 차기 시험에서 무난히 MCSE를 취득할 자신이 있다. 이번 실수는 ‘다만 덤프가 시험문제를 비껴갔을 뿐’이라고 스스로를 위안한다.

 그러나 B씨는 MCSE 기출문제의 유형별 정답을 외우고 있을지라도 현업에서 적용하는 방법을 모른다. 기업 정보시스템과 네트워크를 직접 운용해본 경험이 없을 뿐 아니라 MCSE에 대비한 실습을 해본 적도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B씨는 ‘현장에서 시스템을 잘 관리하되 장애가 발생했을 때에는 해당 시스템 구축업체에 사후관리를 요청한다’는 나름대로의 전략(?)을 세워두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오라클·선마이크로시스템스·시스코시스템스 등 다국적 IT기업이 운영하는 4대 CP를 획득함으로써 IT전문가로 거듭나려는 이들이 덤프의 함정에 스스로 빠져들고 있다.

 실무 경험이 수반되지 않은 채 암기식 시험공부가 이뤄지다보니 장애가 발생한 기업 정보시스템 앞에 자신있게 나서는 CP 취득자를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다. CP 취득 희망자들은 전문가의 능력을 배양하겠다는 의지보다는 CP를 이직이나 재취업을 위한 포트폴리오로 삼는 모습이다.

 마치 현장 영어회화능력이 취약한 토익 고득점자와 같이 CP 취득자가 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페이퍼 CP가 남발하면서 시스템 장애를 복구할 수 있는 전문가를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한 과목당 5일 수업을 받으며 평균 80만원을 다국적 IT기업 교육센터에 지급해야만 하는 고비용 전문가 교육이 단순 관리자만 양산하는 학원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고급 CP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외부 위탁교육을 서슴지 않는 국내 IT기업들과 이를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정부(정보통신부·노동부)의 노력이 ‘헛손질’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실제 정보통신부는 SW진흥원을 통해 다국적 IT교육센터들에 선별적으로 지정, 교육비의 50%를 지원한다. 노동부도 고용보험환급제도와 실지자 직업능력개발프로그램을 통해 20% 안팎의 교육비를 돌려주고 있다. 일선 IT기업들도 정보시스템 경쟁입찰의 전제조건으로 등장한 CP 보유인력 늘리기에 나서고 있다.

 이같은 정부지원과 IT기업들의 노력에 힘입어 다국적 IT기업 4대 교육센터의 연간 매출이 각각 40억∼150억원대로 올라섰다. 더구나 실무 전문가보다는 단순 관리자를 양산하는 구조가 일반화되면서 CP 취득자들이 다국적 IT기업의 제품 전도사로 등장하는 경향이다.

 관련 CP 운영기업들도 자사의 제품 라인업에 발맞춘 교육프로그램을 마련함으로써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전문가를 육성하는 데 소원한 모습이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선마이크로시스템스는 올 하반기부터 각각 닷넷·서버 관련 자격증제도를 새로 선보일 계획이다. 오라클도 9i 데이터베이스에 이은 신제품 라인업에 맞춰 새로운 CP 교육과정을 운영한다.

 기업 정보시스템의 새 흐름인 웹서비스 시대에도 CP를 통해 정보화시스템 및 솔루션 시장주도권을 놓지 않겠다는 다국적 IT기업들의 포석이 하나둘씩 새로 놓여지는 것이다.

<이은용기자 ey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