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만한 공공정보화 프로젝트는 제안서 분량이 수백페이지에 달하고 참여업체들은 한권도 아닌 3∼4권의 제안서를 발주기관에 제출한다.
프로젝트 수행업체를 선정하기 위한 중요한 평가 자료인 제안서는 대개 프로젝트 영업을 진행하는 팀이 자체 제작하지만 대형 시스템통합(SI) 업체들은 보다 효율적인 제안서 작성과 검토를 위해 별도의 전담팀을 운영할 정도로 제안서 작성에 공을 들인다.
◇지나친 물량공세=프로젝트 규모나 경쟁 상황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SI업체들이 제출하는 제안서 두께는 갈수록 두꺼워지고 있다. SI업계의 한 관계자는 “프로젝트 규모가 수백억원대를 넘으면 완성된 제안서를 발주기관으로 옮기는데 트럭이 동원되고 심지어 전자문서시스템이나 전자조달시스템 구축 입찰에서도 종이 제안서를 앞세운 물량 공세는 여전하다”고 말한다.
그러다 보니 다른 곳에 이미 사용했던 제안서의 내용을 그대로 베끼기 일쑤라는 것이 SI업체들의 공공연한 비밀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프로젝트 입찰결과에 따라 SI업체는 울고 웃지만 대형 SI업체들이 제안서를 만들하기 위해 단골로 이용하는 종이 인쇄소는 “프로젝트만 발주돼도 웃는다”는 우스갯소리까지 있다. 입찰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프로젝트 참가 업체는 늘어나고 제언서 두께도 두꺼워져 종인 인쇄소는 더욱 문전성시를 이룬다.
◇성의없는 제안서 검토=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 수백 페이지 분량의 제안서를 제출해도 발주기관의 평가는 단 몇십분으로 끝나버리는 것이 보통이다. “제안서 설명회 자리에서 심사위원들이 제안서를 꼼꼼히 읽어보기는커녕 제대로 펼쳐 보지도 않고 뒤적거리기만 하는 모습을 보면 가끔씩 화가 날 때도 있다”고 프로젝트 실무자들은 말하고 있다. 오히려 건설이나 엔지니어링 부문이 많이 포함된 지능형교통시스템 프로젝트는 심사위원들이 며칠씩 합숙을 하며 추가적인 질문사항을 해당업체에 팩스로 보내고 이를 답변받는 과정이 있어 몸은 힘들지만 보람은 있다는 게 이들의 고백이다.
심사 기준도 애매하지만 별도의 심사위원단을 구성하고 이들을 호텔에 합숙시키는 등 평가 공정성을 갖추기 위한 발주기관들의 노력도 너무나 형식적이라는 지적이다. 비밀에 부친 심사위원 명단이 사전에 유출되는가 하면 제안서의 업체이름을 가려 평가 공정성을 높이겠다는 조치도 대부분 눈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다.
◇공든 탑도 무너진다=아무리 공을 들여 제안서를 작성해도 수주전에서 탈락하면 보상받을 길이 전혀 없다.
“건설업의 경우에도 대형공사 설계비 보상기준에 따라 1.5% 수준의 제안서 보상제도가 실시되고 있지만 정보시스템 입찰은 민간 부문의 특수한 사례를 제외하고는 아무런 보상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게 SI업계의 불만이다.
그렇다고 제안서 보상에 관한 법률적인 규정이 없는 것도 아니다.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 제21조는 ‘제안서 평가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은 자에 대해 예산의 범위 안에서 제안서 작성비의 일부를 보상할 수 있다’고 분명히 명시해 놓고 있다.
그러나 정보통신부는 “내부인식 부족 및 예산확보 문제 등으로 기준 고시 및 시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답변만 계속하고 있다.
<주상돈기자 sdjo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