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정보통신 연구계를 움직이는 사람들>(21)게임

 국내 게임시장은 70년대 후반 처음 형성됐다. ‘갤러그’로 대변되는 오락실용 아케이드 게임기가 하나둘 등장하면서 국내 게임산업이 태동기를 맞았다. 80년대에는 가정용 비디오 게임이 보급되면서 게임을 즐기는 저변이 날로 확대됐다.

 그러나 국내 게임산업이 본궤도에 오르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초반 PC게임이 등장하면서부터다.

 특히 PC게임은 그동안 클로즈 아키텍처 기반으로 제작돼온 아케이드·비디오 게임과 달리 오픈 아키텍처 환경을 제공하면서 국내 개발자들이 본격적으로 게임 개발에 나설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다. 국내 게임 개발 및 연구인력이 본격적으로 쏟아지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 때부터다.

 80년대 오락실용 아케이드 게임과 가정용 비디오 게임을 접한 게임 마니아들이 90년대 PC를 기반으로 직접 게임을 개발하기 시작했고, 향후 컴퓨터그래픽·네트워크·가상현실·3D모션 등 컴퓨터 소프트웨어 기술이 게임 개발에 접목되면서 국내 게임산업은 고도 성장기를 맞았다.

 특히 90년대 중·후반 인터넷의 확산으로 온라인 게임이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하면서 국내 게임 개발력은 짧은 시간에 세계를 넘볼 만큼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게임 마니아에서 처음 게임 개발에 뛰어든 인물은 막고야 홍동휘 사장, 미리내 정재성 사장, 소프트액션 남성규 사장, 패밀리프로덕션 차승희 사장, 소프트맥스 정영희 사장 등이 대표적이다. ‘게임 1세대’로 불리는 이들은 당시 게임 개발사들의 모임인 코가(KOGA)를 결성해 국내 게임 개발 및 연구계의 첫 기반을 다져 나갔다. ‘세균전’ ‘자유의 수사’ ‘그날이 오면’ 등 지금도 마니아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국산 PC게임이 첫선을 보인 것도 이 때부터다.

 하지만 이들이 당시 개발한 PC게임들은 대개 실험작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데다 그래픽 수준도 초보적인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때문에 보다 전문적인 개발력을 확보한 개발자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다소 시행착오를 거친 90년대 중·후반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이 때도 체계적인 게임 개발교육을 받은 사람이 전무한 시절이라 대개 게임 마니아들이 개발자로 전향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그동안의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보다 양질의 국산 게임을 기획·개발함으로써 국산 게임의 전형을 하나씩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PC 패키지 게임분야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낸 사람으로는 소프트맥스 최연규 개발실장(30)과 조이온 김태곤 개발이사(31)를 꼽을 수 있다.

 최연규 실장은 국산 롤플레잉 PC게임의 대명사인 ‘창세기전’ 시리즈 기획자로 잘 알려져 있다. 광운대 재학시절 게임전문잡지 ‘게임챔프’ 필자로 활동해온 최 실장은 지난 93년부터 아마추어 게임 개발팀 ‘아트크래프트’ 맴버로 활동하다 94년 소프트맥스 핵심 개발자로 영입되면서 국내 대표적인 PC게임 개발자로서 명성을 얻었다.

 그는 95년말 선보인 ‘창세기전’ 1편부터 2001년 ‘창세기전3파트2’에 이르기까지 6편에 달하는 ‘창세기전’ 시리즈를 개발하면서 한국식 롤플레잉 게임의 스타일리스트로서 이름을 높였다.

 그가 기획한 창세기전 시리즈는 국내에서만 80만여장이 팔리는 등 상업적 성공을 거둔 것은 물론 10만여명의 골수팬을 확보할 만큼 큰 반향을 일으켰다. 탄탄한 스토리 구조를 핵심 키워드로 삼은 ‘창세기전’ 시리즈는 그동안 일본이나 미국 롤플레잉 게임에서 볼 수 없던 한국식 시나리오와 그래픽을 적극 도입, 국내 유저들의 정서를 잘 반영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소프트맥스 최연규 실장이 한국식 롤플레잉 게임을 만들어냈다면 조이온 김태곤 개발이사는 한국식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의 전형을 창출한 인물이다. 국산 전략 시뮬레이션 PC게임의 진수로 불리는 ‘임진록’ 시리즈가 그의 손에 의해 탄생됐다.

 홍익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김 이사는 지난 96년 친구 3명과 H.Q팀이라는 게임 개발사를 설립하면서 게임 개발자로 입문했다. 그는 96년 데뷔작으로 이순신 장군을 모델로 한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충무공전’을 선보였으며, 이 게임은 우리나라 역사를 소재로 한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의 효시다.

 이듬해 선보인 ‘임진록’ 시리즈 첫편은 당시 국산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으로는 드물게 리얼타임(실시간) 전투를 도입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특히 김 이사는 지난해 출시된 ‘임진록2+’까지 4편의 PC패키지 시리즈를 선보이는 등 외산 게임에서 시도되지 않은 ‘임진록’만의 독특한 게임요소를 매번 첨가, ‘임진록’ 특유의 스타일을 만들어냈다.

 ‘임진왜란’이라는 우리나라 역사를 게임의 소재로 도입하고 영웅 캐릭터 등 롤플레잉 게임에서 주로 사용된 게임요소를 전략게임에 가미함으로써 국산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90년대 중·후반 PC게임의 비약적인 발전과 함께 온라인 게임의 등장 역시 국내 게임 개발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이다. 인터넷의 확산은 다수의 유저가 실시간 그래픽으로 게임을 즐길 수 있는 ‘머그(MUG)게임’을 탄생시켰다. 그동안 PC통신을 통해 텍스트로 즐기던 ‘머드(MUD)게임’이 그래픽으로 옷을 갈아입는 순간이었다.

 이를 가장 먼저 현실화한 인물은 현재 모바일핸즈 김정주 사장(35)과 엔씨소프트 송재경 부사장(36)이다. 이들은 95년 온라인 게임업체 넥슨을 공동 창업하고 국내 최초의 온라인 머그게임 ‘바람의 나라’를 개발했다.

 특히 KAIST 공학박사 과정을 밟은 엔씨소프트 송재경 부사장은 97년 엔씨소프트로 회사를 옮긴 뒤 국내 대표 온라인 게임 ‘리니지’를 손수 기획하고 개발한 주역이다. ‘리니지’는 ‘바람의 나라’에서 처음 시도된 머그게임의 그래픽을 PC게임 수준으로 업그레이드시킨 수작이다. 특히 ‘리니지’는 대단위 유저가 온라인으로 접속해 즐기는 멀티 매시브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MMORPG:Multi Massive Online Role Playing Game)이 전세계 게임시장에서 주류 장르로 자리잡도록 한 주역이다. 현재 국산 MMORPG가 100여종에 이를 만큼 봇물을 이룬 것도 ‘리니지’를 벤치마킹한 결과다.

 온라인 게임의 종가격인 넥슨의 서민 개발이사(31)는 MMORPG 등 온라인 게임이 구동될 수 있는 서버 운영기술을 처음 개발한 주인공이다. 그는 동시접속자가 수백명에 불과하던 온라인 게임 태동기에 넥슨에 합류, 유저수와 관계없이 안정적인 게임을 서비스할 수 있는 ‘분산서버시스템’을 개발했다. 현재 대부분의 온라인 게임업체들이 그가 개발한 분산서버시스템을 벤치마킹해 운영할 정도로 이 분야에 관한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국내 온라인 게임시장은 ‘리니지’에 이어 ‘한게임’ ‘포트리스’ 등 대중적인 온라인 게임이 등장하면서 더욱 활기를 띠게 됐다. 이 분야에서는 ‘한게임’을 기획한 NHN 문태식 게임개발본부장(33)과 ‘포트리스2블루’를 개발한 CCR 이득우 개발팀장(27)을 빼놓을 수 없다.

 삼성SDS에서 의료정보시스템을 개발한 바 있는 NHN 문태식 본부장은 모든 온라인 게임이 웹과 상관없이 클라이언트 프로그램을 통해 로그인 과정을 거치던 99년, 웹상에서 로그인은 물론 게임이 자동설치 및 실행되는 기술을 개발해 ‘한게임’을 국내 최고 게임포털사이트 반열에 올려 놓았다.

 고려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한 CCR 이득우 차장은 조작이 간편한 캐주얼 온라인 게임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는 전례를 남긴 개발자다. 그는 슈팅게임 ‘포트리스2블루’ V600과 V700을 통해 온라인 게임 저변을 일부 마니아에서 아동 및 여성까지 끌어들이는 업적을 남겼다. 간단한 마우스 조작으로 쉽게 게임을 즐길 수 있는 ‘포트리스’가 ‘국민게임’으로 격찬받으면서 아류작이 쏟아지기도 했다.

 온라인 게임시장은 지난해 ‘뮤’ ‘라그하임’ 등 3차원 그래픽이 등장하면서 또 다른 변혁기를 맞고 있다. 2D 게임이 개발이 감소하고 3D 게임 개발이 대세로 굳어지고 있는 것.

 3D 온라인 게임 시대를 연 대표적인 개발자로는 나코인터랙티브 한상은 사장(31)과 그라비티 김학규 개발이사(30)를 꼽을 수 있다.

 한상은 사장은 국내 최초의 시점전환이 가능한 3D 온라인 게임 ‘라그하임’을, 김학규 사장은 2D 캐릭터에 3D 배경을 접목한 퓨전게임인 ‘라그나로크’를 각각 선보이면서 일약 스타 개발자로 떠올랐다. 특히 현대전자 통신시스템 본부 엔지니어를 역임한 한 사장이 개발한 ‘라그하임’은 탁월한 클라이언트 압축기술로 업계를 깜짝 놀라게 한 작품이기도 하다. 기존 온라인 게임의 초기 다운로드 필수데이터량이 100∼700MB에 달하던 것을 28MB 이하로 줄였으며 패치되는 데이터도 1MB 이하로 축소한 것. 따라서 ‘라그하임’은 3D 게임이면서도 56k 모뎀을 통해 즐길 수 있는 등 가장 진화된 온라인 게임으로 평가받기도 했다.

 최근 들어 가정용 비디오 콘솔게임이나 아케이드 게임 등 아직 미개척지로 남아 있는 플랫폼에도 국내 게임개발인력들이 속속 출사표를 던지고 있다. 특히 보다 정교한 기술 및 기획력이 요구되는 콘솔게임의 경우 국내 최초 X박스용 게임 ‘화이트스톰’을 개발 중인 디지털드림스튜디오 심경환 게임제작부장(32), X박스용 네트워크 게임 ‘킹덤언더파이어-크루세이더’를 기획 중인 판타그램의 이규환 개발이사(33)가 단연 선두주자로 꼽히고 있다.

 아케이드 게임에서는 지씨텍 권동수 기술이사(45)가 시뮬레이터 기술로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시뮬레이터를 게임화하는데 가장 중요한 기술인 운동판 제어 및 효과 생성기술을 도입한 레이싱 게임 ‘스커드인코리아2002’를 자체 개발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또 유니아나 김동호 연구소장(39)은 그동안 불모지에 가깝던 3D 아케이드 게임엔진 개발분야 연구에 몰두, 국내 최초 3D 체감형 아케이드 게임엔진 ‘프론티어’를 출시하는 성과를 남겼다.

<장지영기자 jyaj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