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련한 슬픔이 배어있던 비틀스의 노래와 같은 제목이지만 노래와는 달리 영화 ‘예스터데이’의 정조는 음울하고 어둡고 무겁다.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블레이드 러너’ 이래 고정기표화된 어둡고 음울한 무국적 도시의 이미지를 그대로 계승하면서 디스토피아에 던져진 인간의 고통을 드러낸다.
이 영화의 주요 인물들은 고통에 가위눌려 있다. 특수수사대 반장(김승우)은 작전 도중 총에 맞은 어린 아들을 회생시키기 위해 냉동보관하면서 아들에 대한 죄의식과 집착으로 고통받는 인물이며, 사건의 중심인물인 골리앗(최민수)은 유전자 조작에 의해 인간병기로 길러진 자신의 저주스런 운명과 그 운명을 만든 사람들에 대한 복수에 사로잡혀 있다. 신부(전무송)는 원인제공자로서 과거의 죄를 씻지 못해 고통받고, 범죄심리학자이자 수사관인 여성(김윤진)은 지워진 기억과 자기정체성에 대한 의문으로 흔들린다. 이 인물들은 원죄처럼 과거의 어떤 사건에 연루돼 있고 골리앗은 매듭을 풀기 위해 이들을 소환한다.
‘예스터데이(정윤수 감독)’는 제 야심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허덕이는 영화다. 영화는 근미래(2020년)를 배경으로 해 유전자 조작 및 인간복제, 인간병기 등 공상과학영화의 단골메뉴를 흩뜨려 놓고 하나로 꿰지 못한 채 각각의 무게에 짓눌려 있다. 이야기는 중심플롯(현재)과 서브플롯(과거)의 인과관계에 매달리다보니 복잡해지고 각각의 이야기를 나열한 채 추스르지 못했다. 이미지는 강렬하지만 이야기의 얼개가 조밀하지 못해 이미지가 이끌어내는 강력한 정서적 효과를 지탱하지 못한다.
무엇보다도 공상과학영화가 갖는 문제의식이 제대로 발현되지 못했다는 점도 아쉽다. 예컨대 골리앗이 자신을 인간병기로 만들어낸 과학자들에게 복수하는 장면, 특히 신부와 마주하는 장면은 ‘블레이드 러너’에서 복제인간 로이가 자신을 만든 창조주 아버지 타이렐 회장과 대면하는 장면과 유사하다. 창조주 아버지를 죽이는 로이의 행위가 자기정체성에 대한 강력한 환기로 보여지는 것에 비해 골리앗의 행위는 복수 이상의 의미를 획득하지 못한다.
세상을 구원하겠다는 골리앗의 강박관념조차 골리앗에 대한 묘사의 불충분으로 사이코적 망상에 불과한 것으로 비쳐진다. 이것은 반장과 골리앗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 골리앗의 유전자를 복제해서 태어난 반장에게 있어 골리앗은 자신의 근원이자 아버지인 까닭이다.
‘예스터데이’는 감각적으로 그럴 듯한 미래사회를 보여주지만 내러티브의 정교함과 미래에 대한 감독의 철학을 보여주는 데에는 힘이 부친다. 그렇다고 대중적인 코드가 발현되기에는 또 너무 무거워 보인다.
<영화평론가, 수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