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분단 후 처음으로 성사된 남북 정상회담과 6·15 남북 공동선언은 남북관계에 새로운 전기를 불어넣었다. 지난 2년 동안 진행된 남북간 교류는 분단 이래 수십년간의 그것과 견줄 정도로 활발했다.
그러나 남북 화해의 기운이 쏠린 곳은 IT를 중심으로 한 민간 차원의 교류·협력이다. 정상회담 이후 IT협력은 수십년 동안의 성과를 훌쩍 넘어서면서 가장 접촉빈도가 높은 유망 분야로 발돋움했다. 최근 남북관계가 주변 정치상황으로 답보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지만 IT분야만큼은 분위기가 확실히 살아나고 있다.
이달 초 평양에서 열린 사상 첫 남북통신회담이 그 단적인 사례다. 정보통신부 고위급 관리 및 KT·SK텔레콤·삼성전자·LG전자·현대시스콤 등 5개 기업 임원들로 구성된 남한측과 북한 체신성 차관급 인사를 대표로 한 북한측은 평양과 남포 일원에서 CDMA와 국제전화 관문국 고도화 사업계획을 공동추진한다는 내용에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이는 통신과 IT분야 경협의 돌파구를 마련한 것은 물론 침체돼 있는 남북경협 전반에도 활기를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된다.
민간 차원의 남북 IT협력은 괄목할 만하다. 지난해 남북 합작 IT개발회사가 처음 문을 열고서 남북한 기술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기술을 개발하는가 하면 남한 전문가들이 북한 기술자를 재교육시키고 있다. 삼성전자·하나로통신이 북측과 소프트웨어·애니메이션을 공동 개발해 선보인 데 이어 남북표준의 정보기술용어사전이 발간됐다. 아이엠알아이가 현지에서 생산한 모니터를 북한 내수시장에 판매하게 됐으며, 남북 기술자들이 함께 IT를 개발하는 남북IT협력단지 설립 작업도 꿈틀대고 있다.
게다가 7월부터는 남한의 교수들이 분단후 처음으로 북측의 대학 강단에 서게 된다. 이같은 성과는 남과 북이 IT를 매개로 서로 힘을 합쳐 ‘통일 IT 코리아’로 나아갈 실마리를 잡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남북관계가 소강상태에 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IT분야만큼은 상대적으로 예외인 것은 IT분야의 교류·협력이 가장 현실적이고 생존적인 접근방법이라는 인식을 남북 모두가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측의 자본력·상용화 기술과 북측의 우수한 기초 기술·인력을 합칠 경우 커다란 상승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점에서 남북의 이해가 맞아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남북 IT협력이 보다 높은 단계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남북이 머리를 맞대고 풀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우선 미국이 주도하는 바세나르 협약이라는 대북 전략물자 반출제한 제도는 남북 IT협력에서 대표적인 걸림돌로 존재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남한 IT기업가들이 방북해 여러 협력사업을 위한 합의안을 탄생시켰지만 바세나르 협약과 같은 국내외 법적·제도적 장벽과 정치여건에 발목이 묶인 채 수개월째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또 컴퓨터상에서 한글(조선글) 문서 한 장조차 호환이 불가능할 만큼 기술적·시스템적으로 막혀 있는 것도 선결해야 할 과제다. 지난 2000년 서명된 투자보장, 이중과세 방지, 상사분쟁 해결절차, 청산결제 등 남북경협 4개 합의서도 1년 6개월이 지나도록 아직 발효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 단계의 IT교류 수준에 걸맞은 공식 또는 비공식 지원체계도 절대 부족하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남북 IT학술교류 및 협력사업 성과들이 지금까지 남북 양측에서 힘을 얻지 못한 채 방치되고 있다. 제도적 지원과 함께 부처간 의견을 조율할 수 있는 상시기구의 설립도 남북 교류확대를 위해 시급한 과제다. 남한 기업간의 과당경쟁이나 중복투자, 한건주의식 투자계획 남발도 지양해야 할 대상이다.
북한의 열악한 통신 인프라와 IT장비도 교류확대에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남한은 세계적인 수준의 인터넷 인프라를 갖추고 있는 반면 북한은 인터넷에 대한 일반인들의 접근이 막혀 있다.
특히 통신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고서는 민간 차원 남북 IT협력의 본격적인 확대와 활성화는 힘들 수밖에 없다. 남북간 통신협력은 북한이 필요로 하는 통신 인프라를 개선해주는 것뿐만 아니라 남북교류를 가로막는 물리적인 문제를 상당부분 해소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남북간 인터넷 교류도 가능해질 경우 다방면에 걸친 남북 교류를 촉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박찬모 통일IT포럼 회장(포항공과대학교 대학원장)은 “앞으로 한 단계 높은 남북 IT협력을 위해서는 북측의 인프라 구축에 남측이 많은 투자를 하고 북측에 인터넷이 도입돼 사이버공간에서 교류와 협력이 활발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남북 관계는 화해협력의 분위기가 되살아날 것인가 아니면 과거의 불신의 구조로 돌아갈 것인가 하는 기로에 서 있다. 하지만 분단 이후 그 어느 때보다 남북 IT교류·협력의 여건이 나아진 지금의 호기를 놓쳐서는 안된다.
남북이 지난 2년간의 IT협력에서 얻은 양적 성과를 발판삼아 질적 성장을 이룰 수 있도록 노력을 배가시켜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남과 북이 공통의 이익 아래 IT협력을 지속한다면 경제적 차원뿐만 아니라 통일을 위한 시금석을 놓는 계기가 될 것이다.
<온기홍기자 khoh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