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전국 90여만개 신용카드 가맹점 가운데 30만개에서 전체 거래의 90% 가까운 매출이 발생한다. 만일 30만개 가맹점에서 기존 플라스틱 카드가 아닌 이동전화로 고주파(RF) 및 적외선(IR)인터페이스를 통해 편리하게 결제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한다면, 또 여기에다 이동전화를 버스·지하철의 교통카드 대용으로 쓸 수 있고 자판기나 톨게이트 등 기반 생활시설에도 결제수단으로 광범위하게 자리잡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당장 피부에 와 닿는 편리함은 차치하고라도 산업현장에선 금융시장 구도가 확연히 달라질 것이다.
신용카드에 어떤 신용카드가, 마일리지와 같은 어떤 부가가치서비스가 탑재되느냐에 따라 이동통신업체는 물론 신용카드와 부가가치통신망(VAN) 시장의 질서도 새롭게 재편된다. 사용자들은 보다 많은 서비스와 혜택이 집중된 이동전화에 몰릴 게 당연하기 때문이다.
기존 플라스틱 카드 시대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모바일 지불결제 시장에 관련업계가 사활을 걸고 있는 배경이다.
그러나 카드·이동통신·VAN 등 관련업계의 선점경쟁이 과열되면서 RF·IR를 수용할 수 있는 가맹점 단말기 보급계획은 벌써부터 중복투자의 우려를 낳는 등 부작용도 고개를 들고 있다.
◇시장채비=모바일 지불결제 서비스의 실체는 이동전화에 내장되는 금융칩카드(EMV)와 가맹점 단말기-이동전화간 통신 인터페이스인 IR·RF 기술. 현재 세 싸움을 벌이고 있는 SK텔레콤-비자인터내셔널 컨소시엄과 KTF-LG카드컨소시엄은 각각 다른 칩카드 규격과 IR·RF 기술을 채용함으로써 전면전을 선포하고 있다.
SK텔레콤은 지난달 국제표준 IR 금융규격인 ‘IrFM’을 금융용 스마트카드 표준규격인 ‘EMV’로 구현, 이동전화에 내장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고 비자와 함께 세계표준으로 육성하겠다고 했다. 상용화 목표 시기는 오는 10월이다. SK텔레콤은 이 시점에 맞춰 비자캐시·KMPS·씨씨케이밴 등 협력사와 공동으로 연말까지 3만개 가맹점에 단말기 인프라를 완비하기로 했다. 이어 내년에는 총 30만개에 달하는 신용카드 가맹점으로 IR 지불결제서비스와 휴대폰 바코드 서비스를 확대한다는 구상이다.
KTF는 IR·RF를 동시에 휴대폰 내장형 콤비칩카드로 구현한 솔루션을 다음달중 출시할 계획이다. 상용화 시기는 물론 기술적으로도 SK텔레콤에 앞선다는 점을 내세워 조기에 시장을 선점한다는 전략이다. 이에 앞서 하렉스인포텍, 넥스지텔레콤과 각각 제휴를 맺고 IR, RF를 개별 구현한 단말기를 과도적인 서비스로 다음주 출시한 뒤 곧 콤비카드로 전환하기로 했다.
◇선점우위는=현재로선 양 진영의 시장우위를 점치기 힘들다. SK텔레콤은 내년까지 전국 신용카드 가맹점 가운데 30만곳을 목표로 가맹점 단말기 인프라를 갖춘다는 복안이다. 탄탄한 자금력과 가장 많은 가입자 규모를 내세워 조기에 시장을 정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이에 비해 KTF 진영은 비교적 빠른 상용화 시기와 기술적인 우위, 광범위한 협력사 풀을 통해 선점할 계획이다. 특히 기술적으로도 IR와 RF 인터페이스를 원칩에 탑재함으로써 기존 교통카드 인프라를 그대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게 최대 이점이다.
이와 함께 SK텔레콤은 비자캐시·KMPS·씨씨케이밴 등 비자인터내셔널을 제외한 협력사가 대부분 관계사(지분출자)로 국한된 반면, KTF는 4개 VAN사와 신용카드사, 국내외 주요 솔루션업체가 포진하고 있다는 점에서 세력범위가 넓다.
비자 관계자는 “최근 SK텔레콤이 신용카드사 인수에 나서면서 기존 카드사들이 집중견제에 나설 경우 KTF는 반사이익을 얻는 반면 SK텔레콤 진영은 궁지에 몰릴 수 있다”고 덧붙였다.
◇문제점=그러나 양 이동통신사를 중심으로 카드·VAN·솔루션 업체들이 이합집산하면서 가맹점 인프라에 대한 중복투자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외형상 같은 기능을 갖춘 가맹점 단말기지만, 양 진영이 서로의 기술규격을 배제한채 제각각 투자에 나설 경우 수십만개에 달하는 가맹점에 투입될 낭비는 엄청나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SK텔레콤·KTF가 IR 결제서비스를 독자 제공한다는 방침을 확고히 하면서 그동안 독자입지를 모색해오던 하렉스인포텍은 자사의 특허권 침해소송 여부를 심각하게 검토하는 등 기존 협력사들 사이에도 잡음이 예상된다.
<서한기자 hse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