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만에 16강 진출이라는 역사적 승전을 이룬 데는 4700만 전국민의 열성적인 격려를 등에 업은 23명 월드컵 대표팀 선수와 거스 히딩크 대표팀 감독의 ‘톱니바퀴 팀워크’가 있었다. 또 이 견고한 팀워크는 19명 코칭스태프의 ‘과학적 분석과 지도’가 뒷받침된 객관적 평가와 설득작업이 함께 이뤄졌기 때문에 가능했다.
히딩크 감독은 학연과 지연에 얽매이지 않고 선수들 각자의 체력과 기량, 실력을 과학적으로 분석·평가하고 이를 보완할 수 있는 객관적 대안을 내놓을 때만이 선수들의 역량을 배가시킬 수 있고 팀워크를 강화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히딩크 감독은 한국으로 올 때 직접 선발한 10여명의 훈련 및 지원팀을 데려왔다. 일명 히딩크사단. 각 선수의 체력과 컨디션에 따른 경기성과를 일일이 관리하는 네덜란드인 트레이너를 비롯해 매 경기를 동영상으로 촬영하고 컴퓨터 프로그램을 활용해 동선과 취약점 등을 파악하는 전담분석가도 있다. 포지션별로 기술고문도 따로 뒀다.
이들은 모두 첨단 정보기술(IT)과 정보통신기기를 접목해 선수들의 체력과 경기방법, 취약점 등을 데이터베이스(DB)화해 함께 공유하고 보완방법을 찾아 말 그대로 IT월드컵 효과를 톡톡히 봤다.
대표팀 경기나 훈련 때 유심히 살펴보면 선수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비디오 카메라에 담는 사람이 있다. 다름아닌 비디오 분석관 아프신 고트비(37). 이란계 미국인인 고트비는 상근 코칭스태프는 아니지만 대표팀의 훈련 장면을 디지털카메라에 담는다. 또 대표팀이 벌이는 모든 국제경기도 비디오로 찍는다. 그러나 고트비의 핵심역할은 여기에 있지 않다. 고트비는 각 경기에서 찍은 선수들의 경기 장면을 다시 노트북PC에 담아 DB화하고 이를 전문소프트웨어로 분석·정리해 히딩크 감독 및 코칭스태프, 대표팀 선수들이 함께 논의할 수 있는 자료를 만든다.
고트비가 사용하고 있는 컴퓨터와 경기 분석 프로그램은 애플컴퓨터의 ‘파워북G4’와 미국 스포츠기술제공업체 스포츠텍(http://www.sportstecinternational.com)의 ‘스포츠코드’.
‘스포츠코드’는 디지털비디오와 각종 데이터를 취합해 경기를 다각도로 심층분석할 수 있도록 고안된 전문프로그램으로 히딩크 감독과 고트비에 의해 국내에 처음 소개됐다. 특히 이 프로그램은 기존 경기 중계방송에 의한 비디오 분석이 공 주변의 움직임만을 포착해 양팀 22명 선수 전체의 경기 모습을 분석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을 보완, 별도로 찍어 둔 선수들의 경기 모습을 입력하면 각종 데이터와 함께 전체 경기 모습을 시뮬레이션할 수 있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또한 사용자가 원하는 부문만을 부분별로 분석·비교할 수도 있다.
고트비는 이를 대용량 동영상의 편집과 멀티스크린 출력이 가능한 ‘파워북G4’에 입력, 장면별로 득점·실점 기회 요인을 분석해 감독·선수들과 공유하고 DVD로 제작해둔다. 이 때문에 히딩크 감독은 ‘스포츠코드’가 장착된 ‘파워북G4’와 경기 모습을 담은 DVD를 훈련 때마다 필수품처럼 챙기고 있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최근 대표팀의 체력이 놀랍게 향상된 이면에는 레이먼드 베르하이옌(32) 체력담당 트레이너의 공이 컸다. 히딩크 감독의 요청으로 지난 3월 스페인 전지훈련에서부터 대표팀 식구가 된 베르하이옌은 태극전사들의 심장을 강철로 만드는 게 주임무.
네덜란드축구협회 소속으로 지난 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도 히딩크 감독과 호흡을 맞췄고 네덜란드 왕립축구학교에서 운동생리학을 강의하기도 한 그는 별도의 스포츠과학 프로그램을 활용해 선수들에게 집중적인 체력강화 훈련을 시도하고 있다.
베르하이옌이 사용하고 있는 체력관리 프로그램의 구체적인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대표팀은 평소 ‘2+2’ 또는‘3+2’ 훈련프로그램(2∼3일 강도 있는 체력훈련을 한 후 이틀은 강도를 낮추는 방식)을 중심으로 필요에 따라 컨디션을 인위적으로 조절하는 ‘과보상(hyper-compensation)’방법이라는 스포츠과학을 이용하고 있다. 과보상은 평소보다 과도하게 훈련함으로써 피로를 누적시킨 뒤 회복기를 갖는 방식으로 회복 후 피로한 만큼 에너지를 더 갖게 돼 운동능력을 높이는 컨디션 조절법이다. 베르하이옌은 선수별로 체력DB를 제작해 이 같은 프로그램을 적용하고 있다.
경기 중에 이뤄지는 선수들의 경기방법을 지능형 기술을 접목해 DB화해 분석하는 기법도 IT월드컵 16강 진출에 한몫했다.
월드컵 경기 시 TV 중계화면을 보면 패스 횟수와 성공률·슈팅수·골키퍼 방어율·공수전환속도 등과 같은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표시되는데 이를 DB화하면 이후 발생 가능한 패턴도 예측할 수 있다. 즉 슛이 가능한 위치가 어디고, 어떤 선수간에 패스가 이뤄져야 성공률이 높은지를 분석할 수 있기 때문에 팀의 전략을 수립하고 경쟁팀 분석하는 것이 가능하다.
월드컵조직위원회(KOWOC)는 18일 이탈리아와 펼칠 16강전을 맞아 국내 스포츠데이터뱅크(http://www.sportsdatabank.co.kr)가 그동안 분석해둔 ‘실시간 축구경기 분석시스템’ 자료를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정지연기자 jyj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