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정보통신 연구계를 움직이는 사람들>(22)의료기기

 ‘건강 지킴이의 연금술사들’

 선진국가·복지국가일수록 국민 보건에 대한 관심과 질병을 조기에 정확히 진단해주는 의료기기의 역할은 증대되는 추세다. 특히 암·치매 등 각종 질병에 대한 의료서비스의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의사들의 의료기기에 대한 의존도는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의료서비스의 질은 의료기기에 의해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새 삶을 살게 해주는 의료진의 의술’ 뒤엔 우수한 제품을 개발하고자 하는 의료기기 기술진들의 땀이 물씬 베어있고 숨겨진 노력들이 깊게 자리하고 있다.

 의료기기 산업은 뉴밀레니엄 시대에서 정보기술에 이어 차기 경제성장의 엔진으로 꼽힐만하다. 아직 국내 의료기기 산업은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지만 정부는 2010년께 전자의료기기 산업을 선진국 수준에 진입시킨다는 목표다. 이에 따라 생체신호·의료영상·치료기기 등 다양한 의료기기 분야에서 의료기기 연구진들이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

 제너럴일렉트릭(GE)의 현지 생산법인 GE메디칼시스템코리아의 최영춘 소장 겸 부사장(49)은 기술 이전을 회피하던 GE의 초음파영상진단기 기술을 국내에 이전시킴으로써 초음파진단기 분야를 우리나라 대표 수출 품목으로 일군 공로를 인정받고 있다.

 76년 서울대전자공학과를 졸업, 삼성전자와 GE가 공동으로 지난 84년 설립한 GE메디칼시스템코리아의 전신인 삼성GE의료기기 시절에 수많은 실행착오 끝에 삼성의료원·삼성SDS·삼성기술원과의 기술 협조체제를 구축, 세계 최고 성능의 초음파영상진단기를 97년 개발해 작년 약 1억달러의 수출 성과를 달성하는 데 일조했다. 당시만해도 초음파영상진단기는 선진국들이 기술 이전을 회피하는 분야였다.

 그는 특히 초음파영상진단기에 처음으로 첨단 ASIC 기술을 채용, 크기를 최소화하면서 영상신호처리기술·실시간영상처리기술 등 기초기술은 물론 영상좌표변환·태아발육상태측정 알고리듬 등 초음파기기 개발의 핵심적인 기반기술을 구축했다. 또 초음파 수신신호를 연속적으로 집적시키는 다이내믹포커싱(Dynamic Focusing)·다이내믹애퍼처(Dynamic Aperture)·스페클노이즈(Speckle Noise)를 해상도의 저하없이 선택적으로 제거하는 어탭티브이미지소프트너(Adaptive Image Softener), 진단 중에 필요한 부분을 즉시 확대해볼 수 있는 타임포커싱줌(Time Focusing Zoom) 방식을 최초로 상용화하기도 했다.

 국내 초음파영상진단기 산업의 뿌리격인 메디슨의 배무호 연구소장(39)도 의료기기 연구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는 96년 아날로그 신호를 디지털 신호로 변환시키고 이를 신호처리하는 핵심기술을 처음으로 개발, 관심을 모았다. 특히 서울대 전기공학과 출신인 그는 디지털 빔포밍 기술을 초음파진단기에 실제 적용함으로써 초음파영상진단기 시장에서 현재의 메디슨의 명성을 있게 한 인물로 꼽히고 있다.

 개발 당시 디지털 빔포밍 기술은 기존 초음파영상진단기에서 구현할 수 없었던 신기술·신개념이었다. 특히 디지털 빔포밍 기술은 미국의 몇몇 회사만 갖고 있었던 하이테크 기술로 일본 유명 회사조차 구현하기 힘든 첨단 디지털 초음파기술이었다. 96년 촉박한 신제품 개발일정으로 인해 ASIC 개발과 디지털 빔포밍 연구를 다음으로 미루자는 내부 의견에 배 소장은 강하게 맞섰다. 그는 꿋꿋이 연구를 감행해 결국 첨단기술을 완성시켰고 바로 이것이 메디슨의 기술로서 세계에서 인정받는 계기가 됐다.

 그의 연구덕분에 메디슨은 미국과 독일에 이어 세계에서 3번째로 디지털 초음파진단기를 상용화했으며 고가의 디지털 빔포밍 기술을 저가격대로 실현, 경쟁업체와의 매우 큰 비교 우위를 갖게 되는 발판을 마련했다. 이후 배 소장은 디지털 초음파진단기 SA8800·SA9900·SA6000C 등 첨단제품을 잇따라 개발했으며 초음파진단기용 신호처리 핵심 ASIC을 다수 개발, 선보이기도 했다.

 솔고바이오메디칼의 안세영 소장(59)은 신소재와 신기술을 이용한 첨단 의료기기를 개발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고 있는 인물이다. 서울대 물리과 출신인 그는 임플란트·암치료기·녹내장치료기 등을 개발함으로써 바이오메디컬 분야에서 활발한 연구개발 활동을 벌이고 있다.

 특히 안 소장은 플라즈마와 레이저 기술을 이용한 임플란트 코팅(Implant Coating) 등 소자·소재 물리분야의 정통맨으로 알려져 있다. 이 기술을 이용할 경우 일반적인 임플란트보다 생체 적합성이 뛰어난 제품을 생산할 수 있기 때문에 안 소장은 이를 통해 솔고바이오메디칼의 시장 우위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외에도 퀀텀웰레이저다이오드(Quantum Well Laser Diode)를 이용한 녹내장 치료기를 개발, 임상시험 중이며 의료용 에르븀야그(Er-YAG) 레이저기기 모듈도 개발하고 있다.

 그러나 안 소장은 무엇보다 우리나라 과학기술 교육에 크게 기여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 95년 재미 한인 물리학자협회의 회장직을 맡아 재미 물리학자의 연구진흥사업 등 학제연계사업과 국제공동사업을 미국에서 성공적으로 수행, ‘한국을 빛낸 해외 동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또 비선형플라즈마 분야, 플라즈마 상호작용과 코팅 등 선진국의 플라즈마 기술과 필드이미션디스플레이(Field Emission Display) 등 전자소재 및 재료분야에서 기술을 연구해 한국으로 첨단기술을 이전하는 데 기여함으로써 99년 4월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상했다.

 오스테오시스의 안영복 연구소장 겸 사장(40)은 골밀도 진단기 국산화의 시조라고 불리는 인물이다. 건국대학교 전자공학과 출신인 안 소장은 2000년 7월 초음파 방식의 골다공증 진단장비를 국내 최초로 국산화하는 데 성공, 골밀도 진단기의 국산화 시대를 열었다.

 또 올해 차세대 제품인 엑스레이를 이용한 골밀도 진단기를 개발한 것도 그의 작품이다. 이 제품의 가장 큰 기술은 세계에서 가장 짧은 골밀도 진단시간을 구현했다는 점. 기존 초음파 장비가 평균 50초였던 것에 반해 이 제품은 불과 4초에 불과하다. 골밀도 진단시간은 환자가 엑스선에 노출되는 피폭량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기 때문에 짧을수록 유리하다. 안 소장은 이점을 착안, 상품화한 것이다. 그는 최근 골밀도 진단기 전문업체로 발돋음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바이오스페이스의 차기철 연구소장겸 사장(44)은 지난 96년 체성분 분석기를 처음으로 개발, 의료기기 사업영역을 비만산업으로 확대하는 데 기여한 인물 가운데 한사람으로 꼽히고 있다. 연세대 기계공학과 출신인 차 소장은 체성분 분석기의 생체전기임피던스법을 개발함으로써 경쟁업체보다 정확성이 뛰어난 제품을 개발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

 생체전기임피던스법(Bioelectric Impedance Analysis)이란 인체 내에서 전류가 수분을 통해 흐르는 원리를 이용해 전기적인 방법으로 체수분(body water)을 측정하는 기술로 인체에 전혀 해가 없는 50㎑의 주파수 대역에서 약 1㎃의 미세 교류전류를 인체에 흘린 후 전압을 측정해 체수분 및 체지방 등을 정확하게 측정하는 것이다.

 차 소장은 떠 고령화로 매년 GNP의 7% 이상을 헬스케어 산업에 지출할 것으로 예상하고 심전계·혈당측정기·운동부하측정기 등 진단장비 개발에도 힘을 쏟고 있다.

 아이솔테크놀로지의 이흥규 소장(50)은 세계 자기공명영상진단기(MRI) 분야의 내로라하는 전문가로 평가받고 있다. 서울대 전기공학과 출신인 그는 지난 80년대 중반 대기업 금성(LG)이 1.0테스라급 MRI 개발을 시작한 이후 메디슨이 90년대 중반 1.0테스라를 상용화하는 단계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MRI 개발 역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특히 그는 금성이 MRI사업을 포기하자 미국 UC얼바인대학으로 유학을 떠나 MRI기술을 습득하다가 96년 메디슨이 MRI사업부를 창설했을 때 본부장을 맡으면서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첨단의료기기인 MRI를 상용화하는 데 주역을 맡기도 했다. 또 초고속촬영기법·자기공명분광학기법 등 MRI의 첨단 진단기법을 개발함으로써 우리나라가 고부가품목인 MRI시장에 진출하는 데 기여했으며 골밀도 측정기, CT방식을 이용한 차세대 골밀도 진단기 등을 개발해 주목을 받았다.

 한별메디텍의 임재중 연구소장 겸 사장(43)은 심장박동 등으로 건강상태를 체크할 수 있는 심폐음 진단시스템을 개발, 눈으로 보는 청진기 시대를 열었다. 전북대학교 전자정보공학부 부교수이기도 한 그는 심장진동이나 호흡상태를 일반 청진기보다 10배 이상 정밀하게 측정하고 이를 질환별로 분류·저장된 자료와 비교해 신체상태를 진단, 그래픽으로 나타내주는 기술을 개발했다.

 메디아나의 김응석 소장(30)은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환자감시장치·황달치료기·산소포화도측정기 등 다수의 제품을 개발한 인물. 특히 연대 의용전자공학과 출신인 김 소장은 우수한 성능의 환자감시장치를 개발함으로써 세계적인 의료기기 회사인 미국 타이코(TYCO)가 주문자상표부착방식으로 공급해줄 것을 요청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 환자감시장치를 OEM으로 수출한 회사는 국내에서 메디아나가 처음이었다.

<안수민기자 smah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