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강을 넘어 4강으로!
지금 한반도 전역은 월드컵, 한국 축구의 경이로운 선전, 그리고 응원의 열기로 뒤덮여 있다. 4강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는 우리 상대는 스페인. 음악으로 말하자면 라틴음악, 집시음악 등을 빚어낸 20세기 음악의 강국이다.
축구와 음악이 밀접하게 관련돼 있듯 음악이 강한 스페인에서 축구를 빼놓을 수는 없다. 월드컵에서는 상대적으로 불운했다지만 그래도 스페인은 독일·프랑스·이탈리아·네덜란드를 넘어설 정도로 클럽축구가 활성화돼 있는 축구의 나라다.
그리고 그 무수한 스페인의 클럽 팀 가운데 가장 유명한 팀은 뭐니뭐니해도 레알마드리드다. 한국에 패한 뒤 은퇴 얘기가 나돌고 있는 포르투갈의 루이스 피구를 비롯해 프랑스의 지네딘 지단, 브라질의 로베르토 카를로스 등 축구 영웅이 소속된 명문 구단이다. 만약 이 팀에서 선수로 뛰던 유명가수가 있다면 믿을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이것은 엄연한 사실이고 그 주인공은 국내에서도 널리 알려진 ‘라틴음악의 황제’ 훌리오 이글레시아스다.
그는 음악을 시작하기 전인 70년대 레알마드리드에 소속된 직업 축구선수였으며 더욱이 베스트11 멤버로 그라운드를 누볐다고 한다. 부드러운 음성의 노래와는 전혀 딴판의 전력이다. 그는 언젠가 “만약 노래를 하지 않았더라면 계속 공을 찼을 것이고 가수만큼 유명한 축구선수가 됐을 것”이라고 호언한 바 있다.
훌리오 이글레시아스는 ‘헤이’ ‘나탈리’, 그리고 윌리 넬슨과 함께 부른 ‘내가 사랑했던 모든 여인들에게(To all the girls I`ve loved before)’ 등의 노래로 80년대 국내뿐 아니라 전세계 음악계를 호령했다. 83년까지 팔린 앨범만도 무려 1억장. 특히 수려한 외모로 중년의 여성들마저 사로잡아 한 사회학자는 그를 가리켜 “폐경기 여성의 욕구를 자극하는 남자”로 설명하기도 했다.
그는 한국을 두 번이나 방문해 디너쇼를 가졌으며 한국을 잘 아는 스페인 사람 중 한 명이다. 내한 당시 그는 “한국에 대해 아주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수차례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과연 지금 그의 심정은 어떨까.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태어나 더욱이 레알마드리드의 축구선수 출신인 그는 당연히 이번 월드컵에서 조국 스페인을 응원할 것이다. 월드컵에서 매번 우승후보로 꼽히면서도 늘 초반에 탈락한 비운을 딛고 이번에는 8강에 안착했지만 하필 상대는 개최국이자 껄끄러운 한국.
아주리군단을 격침시켜서가 아니라 지난 94년 월드컵에서는 한국과 2대 2로 비겨 한국이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선수 출신인 훌리오 이글레시아스는 그래서 더 속이 탄다. 그리고 지금 한국인들은 그의 음악에 호의를 갖고 있지만 축구에 있어서는 스페인을 향한 전의에 불타고 있다.
임진모(www.izm.co.kr)
<정은아기자 eajung@etnews.co.kr>